[K스토리] 상실을 얼리고 감정을 그리다…사진가 조선희가 전하는 삶과 죽음의 미학
(서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사진가 조선희(55)는 오랫동안 인물사진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상업사진부터 패션, 영화, 셀럽 사진까지 섭렵해온 작가였지만, 이번 개인전에서 그가 응시하는 대상은 살아 있는 얼굴이 아니다. 뮤지엄한미 삼청별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프로즌 게이즈'(FROZEN GAZE)는 작가가 수년간 천착해 온 '삶과 죽음의 경계'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자리다. 카메라는 기록의 도구라기보다, 멈춰 선 감정을 그려내는 연필에 가깝다.
전시의 출발점은 작가가 작업실 앞에서 마주한 죽은 참새였다. 조선희는 그 순간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고, 감히 받아들이지 못한 상실의 감정을 '얼림'(frozen)이라는 행위로 붙잡기 시작했다. 죽은 새를 얼음 속에 고정한 채 촬영하는 연작 'FROZEN GAZE'는 그렇게 태어났다.
얼어붙은 새의 시선은 곧 멈춰버린 감정의 은유다. 작가는 언어로 설명되지 않고 이미지로도 완전히 포착되지 않는 '감정의 잔여물'을 끝까지 응시하려 한다.
그가 선보인 작업은 연출을 넘어 '수행'에 가깝다. 로드킬로 죽은 새를 수차례 냉동하고 해동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균열과 기포, 물결 무늬는 의도되지 않은 우연의 흔적이다. 정수와 수돗물, 온도와 시간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화면은 매번 달라진다.
얼음 속에 봉인된 새는 숨결까지 함께 굳어버린 듯 보이며, 사진은 점차 회화적인 질감을 띤다. 작가가 이 작업을 '사진을 찍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이 지점에서 분명해진다.
전시 공간 역시 감정의 흐름을 따라 설계됐다. 조선희는 "뮤지엄한미 삼청별관의 아래층을 어둡게 연출해 감정의 침전과 정체를 상징한다"며 "자연광이 스며드는 위층은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감정과 회복의 국면을 암시한다"고 설명했다.
관람객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정지와 순환, 상실과 회복 사이를 이동한다. 이는 작가 개인의 기억을 넘어, 각자의 상실 경험을 환기하는 구조다.
조선희는 이번 전시의 사진이 결코 죽음을 미화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대신 사라짐의 순간을 응시함으로써 삶의 감각을 되묻는다. 얼어붙은 새, 시든 꽃, 썩어가는 과일 등 덧없음의 오브제는 '끝'이 아니라 '머무름'의 상태로 제시된다. 그 앞에서 관람객은 죽음을 통해 오히려 삶의 밀도를 느끼게 된다.
상업사진과 인물사진으로 쌓아온 기술과 감각은 이 연작에서 절제된 형식미로 작동하며, 감정의 깊이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전시와 함께 발간된 동명 사진집에는 작가 노트와 기획·비평 글이 함께 실려 조선희의 작업 세계를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게 한다.
'FROZEN GAZE'는 화려한 이미지 소비에 익숙한 관객에게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는 시간을 요구한다. 빠르게 지나치는 사진이 아니라, 응시를 통해 감정의 결을 더듬게 하는 사진이다. 조선희는 이번 전시를 통해 사진이 여전히 사유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조용히 증명한다. 삶과 죽음 사이,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이 사진 속에서 얼어붙은 채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전시는 25일까지.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내레이션 : 유세진, 영상 : 김정민>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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