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얼굴 10cm 넘게 찢어져…에스컬레이터에 무엇이 없었나?

■ 악몽으로 변한 영화관 나들이 …아이 붙잡고 "살려주세요"
사고는 지난해 7월, 경남 양산의 한 대형 쇼핑몰에서 발생했습니다. 6층 영화관으로 가기 위해 일가족이 함께 5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중이었는데요. 에스컬레이터 너머로 1층까지 뻥 뚫린 바깥을 내려다보기 위해 잠시 손잡이 밖으로 고개를 내민 순간, 12살 초등학생의 머리가 손잡이와 상부 구조물 사이에 끼었습니다.
학생의 어머니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차마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아이의 몸을 붙잡은 채 버틸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주변에 직원이나 다른 이용객이 없었던 데다 자칫하면 에스컬레이터 바깥으로 아이가 추락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붙잡고 있으면서 이대로 잘못되면 어쩌나, 눈을 다쳐 시력을 잃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당시를 설명했습니다.

■ 안전 보호판 떨어진 채 한 달 이상 방치…점검도 안 해
이 사고로 학생은 왼쪽 눈 옆 얼굴이 13cm, 두피가 15cm 찢어졌고, 눈 주변 뼈가 부러졌습니다. 피해를 키운 원인은 따로 있었습니다. 사고 지점에 '안전 보호판'이 없었던 겁니다. 에스컬레이터 안전 기준에 따라 손잡이와 건축물 사이 틈에는 부드러운 재질의 안전 보호판을 반드시 설치해야 합니다. 이용자가 손잡이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라도 머리나 신체가 끼어 다치는 걸 막기 위한 장치입니다.

하지만 사고 당시 현장에는 보호판이 떨어져 나간 채 고정장치만 남아있었는데요. 이 철제 고정장치는 끝이 비교적 날카로워 보호판이 없을 경우 오히려 위험 요소가 됩니다. 행정안전부 승강기사고조사위원회가 CCTV를 확인한 결과, 안전 보호판은 최소 한 달 이상 떨어진 상태로 방치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더 큰 문제는 안전 점검 과정이었습니다. 에스컬레이터 유지관리업체는 사고 전 승강기안전종합정보망에 안전 보호판 설치 상태를 '양호(A)'로 입력했는데요. 조사위원회가 CCTV를 확인한 결과, 실제 점검은 없었습니다.

■ "예방 가능한 사고"…유지 관리·관리 감독 모두 문제
사고조사위원회는 이번 사고를 두고 "피해자가 손잡이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등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더라도, 안전 보호판이 설치돼 있었다면 이번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단순히 이용자 부주의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안전 보호판 미설치와 형식적인 점검, 관리·감독 부실이 겹친 '인재'라는 겁니다.
또 "쇼핑몰 측이 에스컬레이터 관리를 유지관리업체에 위탁했더라도, 쇼핑몰 안전관리자는 법적으로 유지관리업체의 자체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사고조사위원회는 유지관리업체가 있는 부산시에 '유지관리업 등록 취소 또는 6개월 이내의 사업 정지' 대상임을 기관 통보했습니다. 또 행정안전부에는 에스컬레이터 자체 점검자의 거짓 점검 사실을 통보했습니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쇼핑몰 안전관리자와 유지관리업체 관계자 등 2명을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송치했고,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이번 사고에 대해 쇼핑몰 측은 "에스컬레이터 안전 관리 책임이 유지관리업체에 위탁돼 위험을 사전에 인지하기가 어려웠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사고와 관련해 피해자에게 죄송하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 “내 아이와 비슷한 사고 없었으면…” 어머니의 호소
사고 이후 아이는 얼굴에 큰 흉터를 안게 됐고, 성장 과정에 맞춰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족이 더 걱정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상처입니다. 아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외출할 때면 모자를 쓰게 됐고 에스컬레이터나 승강기를 탈 상황이 되면 쉽게 위축된다고 합니다. 가족 역시 사고 장면을 떠올리며 불안과 불면을 겪어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2020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에스컬레이터 중대 사고는 133건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2명이 숨지고 136명이 다쳤습니다.
피해 학생의 어머니는 취재에 응한 이유에 대해 "우리 아이의 상처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던 만큼, 비슷한 사고로 다치는 사람이 더는 없었으면 한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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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위지 기자 (allway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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