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서 ‘뉴 달러’ 구해온 이명박…‘립서비스’만 받아온 이재명

김기훈 경제전문기자 2026. 1. 1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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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의 생각]
환율안정 위해서는 대규모 신규 달러 필요
베센트 美재무장관 구두개입은 효과 없어
“李대통령, 당장 외화벌이 나서 외환보유액 늘려야”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최근 한국의 원화 환율이 과도하게 상승하는 것을 우려하는 이례적인 구두 개입을 했다. 하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사진은 베센트 장관이 작년 12월 17일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로이터 연합뉴스

환율 수렁에 빠진 이재명 정부가 결국 미국에 SOS를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실탄을 주지 않고 덕담만 했다. 외환시장 반응은 싸늘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가 지난 1월 12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과 만났다. 그리고 베센트 장관이 매우 이례적으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의 과도한 상승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베센트 장관의 구두 개입 이후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 환율은 1달러당 10원 넘게 급락해 1464원까지 밀렸다. 하지만 곧 저가매수세가 유입되면서 1월 19일 현재 1475원을 기록중이다. 외환전문가는 “환율 안정 능력이 한계에 다다른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에 SOS를 요청했지만 과거 대통령과 달리 시장에 영향을 줄만한 실질적 지원을 얻지 못한 셈”이라고 풀이했다.

한국정부가 외환위기를 당한 후에 미국에 도움을 요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7년 제1차 외환위기와 2008년 제2차 외환위기 당시에도 환율이 급등했고, 환율 안정 능력이 한계에 도달한 정부는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미국은 이번과 달리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면서 위기를 해결했다. 미국은 어떻게 한국의 외환위기를 해결하고 환율을 안정시켰을까?

제1차 외환위기

1997년 11월 21일 임창열 경제부총리는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이후 12월 3일 임 부총리와 미셸 캉드쉬 IMF 총재는 583억달러의 구제금융 패키지를 단계적으로 집행하기로 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IMF 210억달러, IBRD(세계은행) 100억달러, ADB(아시아개발은행) 40억달러 등 제1선 지원자금 350억달러와, 미국·일본 등 주요국들의 제2선 지원자금 200억달러 등 총 583억달러를 단계적으로 받기로 하는 내용이었다. 지원액은 우리 정부가 요청한 560억달러보다 많았다.

정부 당국자들은 합의가 예정대로 이행되면 외환보유액이 계속 늘기 때문에 외환위기는 사실상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화 환율은 더욱 가파르게 올라갔다. 11월 21일 구제금융 신청 당시 1달러당 1139원이던 환율은 양해각서를 체결한 12월 3일 1240원으로 상승했다. 그리고 고공행진을 계속하면서 12월 15일 다시 1737원으로 뛰었다. 그 사이 IMF 지원 자금 1차분 56억달러가 들어왔지만 소용이 없었다. 외국은행들이 “한국에 달러가 들어올 때 빨리 돈을 빼내자”며 만기자금 회수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달러 공급 속도가 수요에 못 미친 것이다. 가용외환보유액은 계속 줄어갔고 환율은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에 1달러당 1964원으로 최고점에 도달했다.

제1차 외환위기 때인 1997년 12월 3일 정부 세종로청사에서 임창열 경제부총리(앞줄 왼쪽에서 두번째)와 미셸 캉드쉬 IMF(국제통화기금) 총재(세번째)가 IMF 긴급자금지원 최종협상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조선일보DB

그날 밤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은 IMF와 미국·일본 등 G7(주요 7개국) 국가들이 내년 1월 초까지 100억달러를 앞당겨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외국은행들의 외채 만기연장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 루빈 장관이 달러를 조기 공급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환율 상승세는 꺾였다. 12월 말 1415원으로 마감했다. 미국의 달러 조기 지원으로 달러 공급량이 수요량보다 많아지고 외환보유액이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라는 인식이 시장에 퍼졌기 때문이다. 당시 임 부총리는 “현재 가용외환보유고가 87억달러이지만 조기 지원 등에 힘입어 내년 1월에 150억달러, 2월 170억달러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등이 한국 가용외환보유액(11월말 72억달러)의 무려 8배에 달하는 대규모 자금을 신속하게 공급하겠다고 밝히면서 제1차 외환위기는 정리 수순에 들어갔다.

제2차 외환위기

뉴욕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9월.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긴급 금융시장 점검회의를 소집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전광우 금융위원장,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박병원 경제수석 비서관이 모여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 파산에 따른 대책을 논의했다. 당시 외환보유액은 2400억달러였다. 강 장관은 외환보유액으로 기업과 금융회사의 단기외채(1895억달러)를 상환하고 남는다고 보고했다. 현대건설 CEO(최고경영자) 출신인 이 대통령의 감각은 남달랐다. 그는 현대건설 시절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위기 때는 현금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10억달러의 외국환평형기금 채권 발행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주요국 중앙은행과 시행하고 있는 통화스왑(통화교환)을 한·미간에도 적극 추진하라고 말했다. 신규 달러(new dollar) 확보 지시를 내린 것이다.

제2차 외환위기가 닥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위기 때에는 현금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며 달러 구하기에 나서라고 지시했다. 사진은 국민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는 이명박 대통령./조선일보 DB

미국 재무부는 실무진 협상에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신흥국 수준이어서 통화스왑이 어렵다고 말했다. 강만수 장관은 2008년 10월 11일 워싱턴 D.C. IMF(국제통화기금) 본부 빌딩에서 열린 임시 G20(주요 20개국)재무장관회의에서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과 벤 버냉키 미국 연준 의장을 만났다. 그러나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강 장관은 비공식 채널을 뚫기 시작했다. 사흘 뒤인 10월 14일 오전 10시 10여년전 제1차 외환위기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었던 로버트 루빈 씨티은행 고문과 만났다. 평소 친분이 있던 윌리엄 로즈 씨티은행 부회장이 자리를 주선했다. 루빈 전 장관은 동석한 로즈 부회장에게 통화스왑의 실질적 결정권을 갖고 있는 티모시 가이트너 뉴욕 연방은행 총재에게 강 장관의 입장을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그날 오후 2시 30분 로즈 부회장이 가이트너 총재와 오찬을 한 뒤 강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가이트너가 당신의 견해에 동의했다. 한·미 통화스왑은 100% 가능하다.”

보름 뒤 미국 연준이 300억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스왑을 발표했다. 그 여세에 힘입어 중국과도 300억달러 통화스왑을 맺었다. 30억달러, 50억달러를 제시하던 일본도 중국 때문에 마지못해 300억달러에 합의했다고 강 장관은 말했다.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소비하면서 방어에 나서도 계속 상승하던 환율은 미국이 통화스왑을 통해 달러 공급 계획을 밝힌 이후 급속히 하락하며 안정세를 찾아갔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중·일 3국에서 확보한 900억달러는 외환보유액 2400억달러의 38%에 달했다.

제3차 외환위기

외환정책 당국자들은 두 차례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급등하는 원화 환율을 안정시킬 방법은 수요를 압도하는 대규모 신규 달러 공급이라는 점을 절감하게 됐다.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단기간에 대규모 달러를 공급하는 방안은 ①금리 인상을 통한 한·미 금리 격차의 정상화 ②국민연금·기업·개인투자자가 보유한 달러의 강제 징집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금리 인상은 기업 도산 가능성과 기존 통화정책의 책임 문제 때문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반대하고 있다. 또 국민연금에서 이미 시작된 달러 강제 징집을 개인투자자로 확대하는 조치는 서학개미들의 반발을 불러온다. 올해부터 시작해 2년마다 선거를, 특히 2028년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할 총선을 치러야 하는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해외주식 투자소득의 투자수익률을 낮추어 달러를 강제로 환류시키는 조치를 시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외환시장 기대심리의 쏠림 현상을 제어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정책 수단은 외환보유액 증액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고환율이 장기화하면서 제3차 외환위기가 벌어지고 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선거를 앞두고 재정자금을 잔뜩 풀면서 환율위기를 가속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뉴스1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①고환율 용인 후 국내 외환시장에서의 달러 매입 ②해외에서 달러 채권 발행 ③외국과의 통화스왑 등 3가지이다.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외국과의 통화스왑 확충이 장점이 많다고 강조한다. 미국이 한국의 실질적인 외환보유액 확충 계획을 보증해주면 외환시장의 환율 상승 기대감이 꺾이면서 외환보유액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시장이 안정되는 효과를 봤던 과거 경험을 근거로 든다. 이러한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의 최근 구두개입은 환율안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한국 외환보유액 4280억달러에 신규 자금(new money)을 1달러도 보태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3차 외환위기를 빨리 끝내려면 이명박 대통령처럼 이재명 대통령이 외환보유액을 대폭 확충할 수 있는 대규모 신규 외화벌이에 당장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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