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를 가장한 공포 마케팅: 이지스자산운용 매각 논란의 진실 [논설실 Pick]
국힘, “중국계 자본” 안보공세
근거로 제시한 우려 모두 사실무근
결국 ‘코리아디스 카운트’ 조장만

듣기만 해도 섬뜩한 이 시나리오는 과연 실재하는 위협인가, 아니면 대중의 반중 정서에 기댄 허상인가. 팩트를 하나씩 뜯어보면, 이 ‘안보 우려’가 빈약한 사실관계 위에 서 있다는 게 드러난다.
첫째, ‘디지털 영토’ 침탈의 핵심 근거로 거론된 하남 데이터센터는 이미 힐하우스의 영향권 밖이다. 국민의힘은 힐하우스가 이지스를 인수하면 하남 데이터센터가 넘어간다고 주장했으나, 이지스는 이미 2024년 7월 해당 자산을 맥쿼리인프라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맥쿼리인프라는 호주계 자산운용사가 운용하지만, 코스피 상장 펀드로서 투자자의 90%는 국내 기관과 개인이다. 하남 데이터센터는 소유와 통제 어느 측면에서도 힐하우스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설령 이지스가 향후 또 다른 데이터센터를 투자해 보유하게 된다고 해도, ‘백도어’나 ‘킬 스위치’ 주장은 논리가 빈약하다. 데이터센터 산업을 이해하면 나오기 힘든 주장이다. 자산운용사(건물주)는 전력과 냉방 등 시설을 제공할 뿐,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 등 IT 인프라는 카카오나 네이버 같은 임차인이 통제한다. 건물주가 물리적으로 잠긴 임차인의 서버 랙(Rack)을 열고 암호화된 데이터에 접근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를 허용할 임차인이 누가 있겠나. 이게 가능하다고 하면 어느 기업이 해당 데이터 센터에 입주하겠는가. 이는 전기를 공급하는 한전이 가정집 냉장고 속 음식물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둘째, 식량 안보 위협으로 거론된 부산항 신항 양곡부두 역시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해당 사업은 민간이 시설을 지어 국가에 기부채납하고 운영권만 갖는 BTO(수익형 민자사업) 방식이다. 시설의 소유권은 대한민국 정부(해양수산부)에 있으며, 유사시 정부는 운영권을 회수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진다. 무엇보다 이지스는 이 사업의 운영 주체가 아니라, 1350억 원 규모의 선순위 대출을 제공한 ‘돈줄(대주)’에 불과하다. 은행이 대출해 줬다고 해서 그 공장의 기계를 맘대로 끄거나 영업비밀을 빼낼 수 없는 것처럼, 재무적 투자자가 항만 운영 데이터나 물류 흐름을 통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셋째, 에너지 인프라를 볼모로 한 블랙아웃 공포 역시 과장됐다. 이지스가 투자한 제주 한림 ESS나 도봉 연료전지 등의 설비는 전체 전력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미할 뿐만 아니라 모든 전력은 전력거래소(KPX)의 중앙 통제하에 운영된다. 더욱이 멀쩡한 설비를 세워 막대한 페널티를 물고 투자금을 날릴 ‘경제적 자살행위’를 할 투자자는 없다.
마지막으로 ‘힐하우스=중국 공산당 하수인’이라는 등식도 재고해야 한다. 힐하우스는 예일대 기금이 초기 자금을 댄 싱가포르 법인으로,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등 서구권 연기금이 주요 출자자(LP)다. 미국 대학 기금과 연기금이 중국 스파이 노릇을 할 펀드에 돈을 맡길 리 만무하고 미국 정부가 이를 용납할 리도 없다. 싱가포르 법인인 힐하우스에 중국 정부가 국가정보법을 적용해 스파이 활동을 강요한다는 주장은 국제법적 관할권을 무시한 비약이다.
안보는 타협할 수 없는 가치다. 그러나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공포 마케팅’은 오히려 국익을 해친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르는 자본을 막연한 출신 성분이나 거짓 정보로 배척한다면, 한국 시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정부는 이미 외국인투자촉진법과 산업기술보호법 등 촘촘한 안보 심사 그물망을 갖추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힐하우스를 ‘트로이의 목마’에 빗대는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냉철한 법적·경제적 검증이다. 정치가 경제와 안보의 눈을 가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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