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순검서 경찰부장까지… 19년째 강도 퇴치하는 老형사[송종훈의 백년前 이번週]

2026. 1. 1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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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10년 이상 한길을 걸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특별하다.

"종로 경찰서 사법계에 19년 동안을 한결같이 형사로 지내온 분이 있으니 그는 김택권. 금년 46세의 노형사랍니다. 그는 28세 때 즉 융희 2년(1908년) 5월 26일에 한국 경시청 제2과 근무 별순검(別巡檢·대한제국 때 제복을 입지 않고 비밀 정탐에 종사하던 하급 관리)으로 들어가서 경술년(1910년)에 경무총감부 보안과 사법 경찰계 근무로 조선 총독부 순사보(巡査補·헌병 보조원)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경기도 경찰부로, 고양 경찰서로, 다시 본정(本町) 경찰서에 근무하다가, 1923년 4월에 현 종로 경찰서 모리(森) 서장이 종로 경찰서로 올 때 그를 따라와서 종로 경찰서 사법계에 근무를 하게 된 것이랍니다. 그는 작년 7월 상순까지도 순사로 있다가 7월 하순에야 부장으로 승차(陞差)하였답니다. '사법계에 김 부장 말이요? 그와 더불어 예전에는 큰 불한당도 많이 잡아 보았으며 의병 토벌도 해 보았지요' 함은 모리 서장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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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훈의 백년前 이번週

예나 지금이나 10년 이상 한길을 걸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특별하다. 1926년 1월 22일 동아일보에 실린 19년 동안 형사로 지내온 사람의 사연을 들어보자.

“종로 경찰서 사법계에 19년 동안을 한결같이 형사로 지내온 분이 있으니 그는 김택권. 금년 46세의 노형사랍니다. 그는 28세 때 즉 융희 2년(1908년) 5월 26일에 한국 경시청 제2과 근무 별순검(別巡檢·대한제국 때 제복을 입지 않고 비밀 정탐에 종사하던 하급 관리)으로 들어가서 경술년(1910년)에 경무총감부 보안과 사법 경찰계 근무로 조선 총독부 순사보(巡査補·헌병 보조원)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경기도 경찰부로, 고양 경찰서로, 다시 본정(本町) 경찰서에 근무하다가, 1923년 4월에 현 종로 경찰서 모리(森) 서장이 종로 경찰서로 올 때 그를 따라와서 종로 경찰서 사법계에 근무를 하게 된 것이랍니다. 그는 작년 7월 상순까지도 순사로 있다가 7월 하순에야 부장으로 승차(陞差)하였답니다. ‘사법계에 김 부장 말이요? 그와 더불어 예전에는 큰 불한당도 많이 잡아 보았으며 의병 토벌도 해 보았지요’ 함은 모리 서장의 말입니다.”

김 형사는 형사 생활 초기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처음 별순검으로 배명(拜命·관직에 임명됨)할 때는 상투도 그대로 두었었습니다. 시내에 8개 서(署)가 있었고 그때 내가 처음 근무하던 경시청 제2과란 지금으로 치면 경찰부 형사과와 같습니다. 그때는 도난계란 것이 없었고 그저 별순검들이 슬쩍 다니다가 수상하게 보이면 데려다가 취조를 해 보아서 범죄가 결정되었었답니다. 각 서로 말하면 끔찍이 무력했지요. 경찰서에서는 범인을 잡으면 모두 그대로 경시청 제2과 심문과로 넘겨 그곳에서 취조를 하던 까닭에 각 서에서는 사건을 만들어 보지 못했답니다.”

이어 김 형사는 본격적인 범죄 체포 사례를 들려주었다. “그때는 마음대로 고문(拷問)을 하였답니다. 그래서 별별 끔찍스러운 형벌이 다 많았었지요. 옛날이야기 한마디 할까요? 지금 모리 서장이 경시청 감독으로 있을 때 그의 지휘로 13도로 횡행하는 불한당 ‘먹바지패’의 변학수, 일명 윤경오 이하 70여 명의 대강도단을 잡은 일이 있었는데, 그들의 동지는 800여 명으로 경성 광화문통을 집합 장소로 정하고 몇십 명씩 모여들어서 생각나는 대로 아무 데나 들이쳐 금품을 강탈하던 때였답니다. 그때 체포된 70여 명 중 사형도 많이 받았고, 변학수는 지금도 어느 감옥에 있다나 보지요. 어찌했던 그 패 손에 사람도 많이 살해를 당하였었으니까요. 황해도 서흥 놈으로 신장이 9척(약 272㎝)이나 되고 기운이 장사라 순검 8명을 한 팔에 둘러메치고 진행 중의 차를 뛰어 내리고 뛰어 타며 10여 명의 인명을 살해한 불한당 두령 황익보란 놈 이하 8명도 잡아 보았습니다. 1912년경에는 일본인 산전(山田)이란 강도 3범, 절도 3범의 전과자를 추적해 경인선 오리역 부근에서 격투 끝에 육혈포질까지 하면서 체포한 일도 있었지요. 그게 1913년이던가? 일진회(一進會) 회장 이용구 씨의 친산(親山·부모의 산소) 해골을 파다 놓고 그때 돈 2천 원을 가지고 와서 찾아가란 사실을 탐지하고 그 돈을 가지고 변장을 하고 경기 광주 이배재 고개 부근 산속에 가서 묘구(墓寇·무덤을 파헤쳐 그 안에 든 물건을 훔쳐가는 도둑) 배선호 외 3명도 내 손으로 잡아 보았답니다.”

19세기발전소 대표

※ 위 글은 당시 지면 내용을 오늘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옮기되, 일부 한자어와 문장의 옛 투를 살려서 100년 전 한국 교양인들과의 소통을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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