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20대 마라톤 유망주 왜 죽어야 했나… '가족여행' 약속은 마지막 말이 됐다
선수 뒤 호위 차 없어 무방비로 트럭에 받혀
러버콘, 대회 현수막 등도 설치 안 돼 있어
경찰, 사고 전 위험 인지했지만 막지 못해
사고 운전자와 감찰차 운전자만 검찰 송치
유족 "주최 측, 안전 신경 썼다면 사고 없었을 것"

지난해 11월 10일, 충북 옥천군 동이면 인근 도로를 달리던 마라토너 김종윤(25·청주시청) 선수가 도로에 나뒹굴었다. 흰색 1톤 포터 트럭이 주로를 침범해 김 선수를 뒤에서 들이받은 탓이다. 마라톤 유망주였던 김 선수는 머리를 크게 다쳐 20일 만에 사망했다.
이 사건은 운전자의 나이(80대)와 부주의에 초점이 맞춰져 '80대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로 알려졌다. 하지만 본보가 당시 영상을 입수, 분석한 결과 사고 당시 교통 통제 등 기본 안전관리조차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 선수의 유족은 "선수들이 도로 위를 달리는 경기를 개최하면서도 안전에 신경 쓰지 않은 주최 측에도 책임이 있다"며 문제제기하고 나섰다.
주최 측, 안전관리에 1000만 원도 안 써
18일 본보가 확보한 사고 영상을 보면 김 선수는 '충청일보 제44회 충청북도 시군 대항 역전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출발선을 떠난 뒤 약 1분 동안 경찰차나 호위 차량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도로를 달렸다. 또 주로를 통제하는 러버콘(통행 금지를 알리는 원뿔)이나 마라톤 대회를 알리는 현수막, 깃발 등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운전자들이 마라톤 대회가 진행 중임을 알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부족했다는 뜻이다.
경찰도 사고 가능성을 모르지 않았다.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충북 옥천 경찰서는 대회 전 만든 '교통관리 대책 문건'에 '대회 구간은 차량 통행이 많고 통제 인력 미배치로 교통사고 발생 우려가 있다'고 적었다. 경찰은 또 주최 측에 '경찰 인력이 부족하니 안전관리에 유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충북 경찰청도 '마라톤 대열 전 구간에 오토바이를 탄 안전관리 요원 배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주최 측은 다수 구간에 안전관리 요원을 배치하지 않았다. 감찰 차 한 대만 주자들 뒤와 옆에서 달렸는데 그나마도 선수끼리 배턴 역할을 하는 어깨띠를 전달하거나 교통이 혼잡할 때는 도로 옆 공터에 대기했다. 김 선수가 사고를 당하는 순간에도 선수 뒤에는 호위 차량이 없었다. 경찰도 당일 인력부족을 이유로 당초 계획했던 35명이 아닌 29명(경찰 9명, 모범운전자 20명)만 배치했다.
주최 측은 '그동안 해왔던 대로 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충북육상연맹 관계자는 "대회가 44회를 맞는 동안 안전사고나 교통사고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아 이번 대회도 동일하게 운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충북육상연맹 관계자는 역전마라톤의 특성상 안전사고 가능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반 마라톤은 주말에 열려 해당 구간 도로를 전면 통제할 수 있었지만, 역전 마라톤은 3일에 걸쳐 이어달리기 방식으로 진행되기에 시민이 불편을 호소해 전면 통제가 어렵다"면서 "과거 의무경찰이 있었을 때엔 경찰 인력이 더 배치됐지만 의경이 없어지며 배치 인원이 줄었다"고 털어놨다.

주최 측이 안전에 충분히 신경 쓰지 않았다고 의심해 볼 만한 자료는 더 있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주최 측이 이번 안전 대책에 쓴 비용은 사설 구급차 1대 배치 비용(135만 원)과 보험 가입비(55만 원), 경기를 마친 선수 이송 버스 3대 운영비(585만 원) 등 1,000만 원이 채 안 됐다. 주최 측은 출전 선수 및 관련 기관에 배포한 대회 공문에 "선수가 경기 중 부상 또는 사고를 당한 경우 응급처치는 강구하지만 이후 책임은 지지 않으니 참고 바란다(스포츠 안전재단 보험 가입)"고 적었다. 해당 보험 가입에 따라 선수가 받을 수 있는 최대 보상액은 사망 시 1,000만 원이었다.

1000명 미만 대회엔 안전계획 수립 의무 없어
경찰이 이번 사건을 부실하게 수사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찰은 사건 발생의 책임을 물어 사고 트럭 운전자 A씨와 감찰 업무 담당인 B씨 등 2명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을 적용해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주최 측의 더 윗선에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 선수 누나인 김지유(35)씨는 "주최 측이 선수 안전에 조금만 신경 썼더라도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인 만큼 단순히 80대 운전자의 과실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동생의 죽음에 책임있는 사람 모두에 책임을 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본보 취재 결과 경찰은 주최 측의 안전 관리 관련 내용은 검찰에 제출하지 않았다.
안전 관리 책임을 다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 B씨는 홀로 처벌받을지 모를 상황에 놓인 것을 억울해했다. 그는 대회 기간인 3일간 단기 고용된 감찰 담당 10명 중 한 명이었다. B씨는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 "김 선수 뒤를 따라가다가 심판원이 도로 상황이 혼잡하니 1차로로 빠지라고 해 공터에 대기하고 있었다"면서 "경찰에도 충분히 소명했는데 대회 전반의 안전관리책임이 있는 안전관리자로 지목돼 송치됐다"고 주장했다. 복수의 대회 관계자들도 "충북육상연맹 부회장이 안전관리계획서 전반을 관리했고 경기위원장이 대회 전반을 관리했다"며 B씨를 안전관리책임자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부회장, 심판장 등에 대해서도 입건을 검토했지만 B씨에게 안전 교육을 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역전 마라톤을 포함해 상당수 마라톤 대회가 이런 수준으로 안전 관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충북육상연맹 측은 이번 사고가 대회 첫 사망사건이라고 주장하지만, 2016년을 끝으로 중단된 경부역전마라톤에서도 전라남도 대표로 출전했던 선수가 워밍업 중 교통사고로 숨진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충북육상연맹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역전경기대회 운영 및 진행 방법은 중앙경기단체(대한육상연맹)의 경기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으로는 이런 대회 운영을 막을 방법이 없다. 국민체육진흥법은 1,000명 미만이 참가하는 체육행사에는 안전관리계획 수립 의무 등을 법적으로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 선수가 숨진 대회도 참가 인원이 362명 규모라 법망을 피할 수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홈페이지에 공개한 '자주 묻는 질문'에 '1,000명 미만 인원 밀집 행사의 법적 의무사항'에 대해 '1,000명 미만인 행사는 법에서 규정하는 적용 대상은 아니지만 안전한 체육행사를 위해 필요한 안전 관리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고 돼 있다.

"'달리면 답답한 속이 시원해진다'던 속 깊은 동생"
체육계에서 마라톤은 '돈 없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엘리트 스포츠'로 불린다. 유족에 따르면 김 선수는 초등학생 때 축구 선수를 꿈꿨으나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체육복과 운동화만 있으면 되는 중·장거리 달리기와 마라톤으로 운동 종목을 바꿨다. 유족은 "동생에게 왜 하필 그 힘든 마라톤이냐고 물었더니, '달리면 답답한 속이 시원해진다'고 했다"면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체육특기자로 중·고교에 진학해야 학비나 식비 걱정 없이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국군체육부대(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친 김 선수의 꿈은 소박했다. 기업 소속 마라톤 선수가 돼 세 남매를 홀로 키워낸 청각장애인 아버지와 어린 시절 자신을 업어 키웠던 누나에게 경제적 보탬이 되는 것이었다.
김 선수가 누나에게 남겼던 마지막 말은 "우리 한 번도 가족 여행을 간 적이 없었잖아, 이번 대회만 끝나면 꼭 아버지 고향(전북 남원)에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해당 대회는 김 선수가 실업팀인 코오롱과 입단 계약을 목전에 뒀던 시점에 열렸다.

유족의 바람은 단 하나다. 김 선수가 겪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김 선수 사고 소식을 듣고 당시 대회에서 함께 달린 선수나 육상 종목 선수들이 보내온 탄원서도 100여 장 에 이른다. 사고 대회에서 김 선수와 함께 달렸다던 한 선수는 "선수들끼리 '언젠간 일어날 사고였는데 종윤이가 당한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면서 "당장 2월에 대회가 열리는데 아직까지 나갈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유족은 조만간 대회 주최 측을 상대로 탄원서와 함께 고소장을 제출할 계획이다. 유족은 "장례식 내내 동생의 빈소를 함께 지켜준 수십 명의 동료 선수들을 보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해 법적 대응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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