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통해 삶을 묻다] 삶이란, 잔치국수 고명처럼 얹어지는 것

하영란 기자 2026. 1. 18. 21:5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정수 시인의 시 '구포국수에 관한 명상'
궁핍한 가계 속으로 출렁이던 힘살들
낮은 곳 시린 바닥을 일비추던 얼룩들
박정수 시인

'국수가 삶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별미로 먹는 국수가 궁핍한 시절에 주식이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어느 집에서는 주식처럼 먹고 버티고 있을 것이다. 저렴한 국숫집을 찾는 이들도 여전히 있다. 라면 한 개에 국수를 넣어서 양을 불려서 먹기도 하고, 거기에 김치까지 넣어서 더 푸짐하게 양식을 불렸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집에서 얼마든지 맛있는 국수를 삶아서 먹을 수 있다. 국수는 국물맛이다. 멸치, 다시마, 파 뿌리 등을 넣고 참치 액젓을 넣어 팔팔 끓이면 맛있는 육수가 된다. 고명할 것이 없으면 김치를 얹고, 거기에 좀 더 맛을 더하려면 달걀 지단이나 부추나물, 숙주나물, 김가루 뿌리기 등 입맛에 맞게 하면 된다.

고명을 색색으로 맛있게 얹으면 한결 풍미가 더하고 먹는 즐거움도 크다. 이것은 어쩌면 마음의 여유도 들어가야 하고, 만드는 사람의 정성, 맛을 더하려는 노력 등이 필요하다. 인생도 어쩌면 그렇지 않을까. 맛있는 육수만 있어도 되지만, 여유에 따라서 고명이 달라진다. 고명에 따라서 국숫집의 국수 가격도 다르다.

박정수 시인의 시 '구포국수에 관한 명상'에서 '삶이란, 잔치국수 고명처럼 얹어지는 것'을 통해 시적 화자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궁핍함을 버티게 하는 국수, 육수는 기본값이고 그 위에 더해지는 것(고명)이 삶이라고 하는 것일까. 허기는 국수의 기본값인 육수만으로 달랠 수 있다. 그 위에 얹어지는 고명으로 삶이 좀 더 빛나 보일 수도 있고, 삶의 맛을 더한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여유가 생기면, 정성을 더하면 국수 위에 얹어지는 고명을 달리할 수 있다. 가난할수록, 버티고 있는 삶일수록, 팍팍할수록 필요하지 않을까.

'궁핍한 가계 속으로 출렁이던 힘살들', '낮은 곳 시린 바닥을 얼비추던 얼룩들', '일평생 버팀목 될 줄 몰랐다'. 이렇게 국수는 허기진 삶의 버팀목이었다. 아직도 그렇다. 허기진 자를 버티게 한다. 설령 버티고 있는 삶이라 할지라도 이리저리 생각도 바꿔보고, 화려한 꿈도 꿔보고, 긍정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국수 위에 얹어지는 고명이 아닐까. 고명은 삶을 맛깔나게 한다.

꼭 국수가 아니어도 당신을 버티게 하는 그 무엇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 조금의 상상력을 가미해 삶의 맛을 변화시킨다면, 권태로운 삶의 오후를 조금은 벗어나지 않을까.

구포국수에 관한 명상

국수가 삶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허기진 둑방길에 하얗게 건조되어
궁핍한 가계 속으로 출렁이던 힘살들

말라버린 눈물샘 간간하게 적시며
무너진 바람벽 틈새로 스며들어
낮은 곳 시린 바닥을 얼비추던 얼룩들

연약한 뼈대로 구부러진 탄성들이
기울어 가는 가세를 똑바로 세우고
일평생 버팀목 될 줄 까마득히 몰랐다

삶이란, 잔치국수 고명처럼 얹어지는 것
구겨진 골목길에 은빛 햇살 뿌려지면
국숫집 면발 빛나는 권태로운 오후에
-박정수 시집 「생의 후면을 겉도는 삽입곡처럼」(2025, 문학세계사)에서

Copyright © 경남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