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는 선택이다"… 산티아고 순례에서 말하는 삶

하영란 기자 2026. 1. 18.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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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창 ] 조정자 수필가
사유와 기적의 길, 7번의 여정
고도의 지성·책임 따르는 선택
오만과 자랑 경계한 사실의 기록
자유·해방의 에너지를 일상으로
조정자 수필가의 여섯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토마린 미뇨강 다리 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꿈꾼다. 꿈만 꾸다가 마는 사람이 많다. 실행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하다. '천재는 용기다'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상상력과 용기와 실행에서 나온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자라도 용기가 있어야 주장도 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펼칠 수 있다.

"절대적으로 혼자가 됨으로써 섬세하게 쪼개져 있는 나를 보게 됐고 거기서 발산하는 감정과 감각들을 밀어내거나 억제하지 않고 직시해 관찰했다. 매우 혼란스럽고 감당하기 힘든 그 무엇이 무질서하게 요동쳤고 그 지점을 도망가지 않았다. 길 위에서 자지러지게 웃어도 보고 가장 좋은 것이 어떤 것인가도 맛보았다. 펑펑 울어도 보고 못 견디게 그리운 날도 있었다. 무엇이 이토록 열렬하게 했을까, 무엇이 이토록 충만하게 했을까, 무엇이 이토록 평온하게 했을까, 과도한 상상이나 오만은 아닌지 수없이 묻고 또 물으며 그 길을 가고 또 갔다."(조정자,「산티아고 순례길 사유와 기적의 길」서문에서)

병오년에 만나고 싶은 첫 번째 인물은 조정자 수필가다. 책을 통해서 조정자 수필가를 만났다. 7번의 산티아고 순례를 했다는 대목에서 흥미가 당겼다. 책은 술술 읽혔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무엇보다도 솔직한 마음을 드러낸 부분이 좋았다. 순례 몇 번 했다고 성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인간적인 면모에 끌렸다. 책 소개보다 작가의 생생한 생각을 들어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다음은 조 작가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첫 번째 순례길 부르고스를 지나 온타나스로 가는 길.

운이 좋다. 생애를 통틀어 90%는 운인 것 같다. 모든 결과가 노력의 결실이라면 나는 아마도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살고 있지 않을까. 때로는 위험이 벼락처럼 내리친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가만히 있다. 그 기다림이 벼락보다 더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다 보면 마지막 남은 품위마저 잃는다. 인간에게 품위는 매우 소중하다.

담담한 편이다. 모든 일은 일어날 수 있다. 마음은 늘 흔들린다는 자체를 인식한 뒤에는 주변에 대한 집착이 사그라들었다.

용기는 선택인가요?

결론적으로 용기는 선택이다. 매 순간이 반드시 용기가 담보돼야 할 만큼 무겁지는 않다. 우리 마음속에서 두 가지 이상의 가치가 충돌할 때 비로소 용기의 스위치가 켜진다. 여기에 두려움과 위험이 따른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일상이다. 무섭고 떨리고 피하고 싶은 심정 앞에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사안과 직면해 불확실한 가운데 결과적으로 실패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익보다도 더 소중한 가치 즉, 진실과 의무, 가치관에 나의 각본을 내거는, 이것이 용기다. 용기는 고도의 지성과 노력, 책임이 수반된 선택이다.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 팜플로냐로 향하는 길.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온 사람들을 많이 부러워하는데, 주저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주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적어 보면 결국은 시간이다. 경제력과 체력, 정보와 자신감을 다 갖추고도 시간이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건강한 사회인이 일상에서 40여 일의 시간을 뺀다는 건 목숨 건 일이다. 목숨을 걸 정도로 그 시간이 필요했다는 건 사실 부러워할 게 아니라 같이 울어줘야 할 거다.

인간은 같이 웃어줄 사람보다 같이 울어줄 사람이 더 절실하다. 내가 부러웠다면 나는 그 길을 잘못 다녀왔다. 책도 세상에 나오지 말아야 한다. 8일째 되었을 때 한 마을의 담벼락에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먼지, 진흙, 태양 그리고 비 이것이 산티아고 가는 길/ 수많은 순례자 그리고 수많은 세월. 순례자여, 누가 당신을 불러내었는가,/어떤 신비로움이 그대를 이끄는가, 들판의 별도 웅대한 대성당도 아니다./ (…) / 나를 움직인 그 힘, 나를 끌어낸 그 힘/ 나는 설명할 수가 없다. 오직 저 위에 계신 분만이 알리라'
여섯 번째 순례길 공사가 끝난 후의 산티아고 대성당을 방문한 모습.

주저한다는 것은 책임감 때문이다. 언젠가 반드시 꼭 가리라고 맘먹었다면 우선 비용을 줄이는 방법은 항공권 마일리지가 적립되는 카드를 이용하면 좋다. 왕복 항공권은 마일리지로 해결하고 그 외 경비는 유럽 9박 10일 패키지 여행 경비 정도면 한 달간 다녀올 수 있다.

순례를 1번 다녀온 것도 경이로운데 7번을 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 길에서 에너지를 퍼 올려 일상에 사용한다. 에너지가 고갈되면 또 간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니 7번을 갔다. 거기서 퍼 올린 에너지는 황홀하다. 우선 자유와 해방이다. 평소에 보이지 않는 사슬에 칭칭 감겨 있었다. 남편의 사회적 영역이 확장되면 될수록 아이가 성장하면 할수록 마음껏 팔을 펼칠 수도, 큰소리를 낼 수도 하물며 목젖이 보이도록 웃지도 못했다. 도덕과 양심, 겸손의 껍질이 그랬다. 인성이 이렇게 세팅돼 있지 않아 이런 생활은 내 의식을 비틀어 몸도 신경도 갑갑하고 불편했다. 어느 날 남편이 내 말 한마디에 속아 넘어갔다. 그 내용은 책 첫머리에 있다.

개인사에 남을 기록은 심사숙고 후 중대한 결심이 빠지지 않는다. 나는 그 반대다. 영혼 없는 한마디에 멋들어지게 속은, 7번의 산티아고 순례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 미미한 시작이 내 인생을 이렇게 뒤집어 놓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네 번째 순례길 마지막 목적지로 찾은 산티아고 대성당.

산티아고 순례에서 생긴 에피소드 하나 소개해주세요.

이 순례길은 전 세계인을 같은 공간에서 가장 많이 만난다. 목적이 같아, 묻지 않아도 통하는 면들이 많아 쉽게 친숙해진다. 만남이 축복이다. 내 곁이 가까이 둔 친구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최고다. 더 좋은 사람이 있었다면 그도 곁에 뒀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매력이 많았다.

숙소 주방에서 혼자 요리하기 위해 양파를 손질하다가 겹 사이에 미끌미끌한 얇은 막이 배수구를 막아 손 집게로 꺼내느라 애를 쓰는데 뒤에서 지켜보던 한 남자가 테이블 위에 티슈를 한 장 톡 뽑아 배수구 위에 살짝 얹어 놓고는 휭 가버렸다. 그 뒷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가슴이 콩닥거리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매력은 사람을 홀리게 할 뿐 아니라 벌떡 일으키게 하는 힘이 있다. 걷다 보면 이런 경험을 자주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사유와 기적의 길』 책을 내게 된 배경이 있나요?
두 번째 순례길 문어 요리로 유명한 멜리데 마을.

처음 다녀왔을 때 그 길은 신세계 같았다. 서둘러 원고를 정리해 책을 내려고 했는데 다 써 놓고는, 지명과 사진을 연결하지 못했다. 두 번째는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갔다. 귀국해서 써 놓은 원고를 보고는 그대로 덮었다. 세 번째 갔을 때는 내가 쓰고자 한 그 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서 그 길이 읽히기를 바랐다.

보통 50일을 계획하고 떠난다. 가는 날과 오는 날 각각 이틀씩 4일과 걷는 기간 35일을 더하면 대략 40일이 걸린다. 남은 날은 여행이나 쇼핑을 하지 않고 독방에서 두문불출하다가 귀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 숙고의 시간이 걷는 날만큼이나 의미가 깊다.

여섯 번째 갔을 때다. 산티아고공항에서 말라가로 날아가 삼위일체 수도원에서 며칠을 지냈는데 그때 거기 계신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기다려라. 하느님은 반드시 나에게 어떤 일을 맡기실 것이다." 남들은 한 번도 오기 힘든 걸 여섯 번이나 오게 된 사연을 그렇게 해석해 주셨다. 7번째 다녀온 뒤 문득 사명을 유기하고 있다는 생각에 책을 내게 됐다.

평소 수필가로서, 작가님이 정의하는 수필이란 무엇인가요?

내 이름으로 낸 책은 등단한 지 15년 만에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 책은 모두 공동 저자다. 첫 책을 내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 것은 내 책을 읽고 있을 독자의 시간에 대한 예의다. 내 책을 읽는 그 순간이 적어도 그 시간에 해야 할 일 중 최고이냐, 가장 가치 있는 것 중 하나인가를 고민했다. 읽히지 않는 책은 쓰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고민이다.

수필은 자칫하면 오만과 자랑질이 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장르다. 독자들이 '왜 수필을 멀리하느냐'면 나를 이해시키는 힘. 나를 알아가게 하는 힘, 나를 성장시키는 힘. 나의 심미를 아름답게 가꿔 주는 힘, 나아가 감동과 시대를 견인하는 힘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사실을 이렇게 채우기에는 여러 가지 장애가 많다. 수필은 사실이다.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속살을 드러내고 말았다. 어떤 외과 의사도 들여다볼 수 없는 곳까지 스스로 드러냈다. 스스로 발밑으로 들어가 납작하게 깔렸다. 짓뭉개지고도 한켠에서는 새순이 돋는, 강인한 생명력보다 수려한 미소가 보이는 그런 수필을 쓰고 싶다.

"문득, 돌아보니 내게는 평범하지 않은 이력이 즐비해 있었다. 법원 가사, 민사 조정위원에다가 검찰청 형사조정위원까지 하고 있다. 별생각 없이 철학과 대학원에 들어갔다. 하나같이 제가 설계한 제 생의 각본이 아니다. 옆에서 부추기고 거들어 된 것들이다. '인생 참 희한하다.' 그저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날부터 이것이 착착 필요했다. 이 일을 맡기기 위해 10년, 아니 15년 전부터 훈련했단 말인가, 나의 사유는 이런 토대 위에 있다. 한순간도 헛된 날은 없다"고 조 작가는 말한다.

조정자 수필가 프로필
△창원대학교 대학원(서양철학 전공)

△2015년 한국수필 신인상 등단
△3인 수필집 『한번만 멈추면 아름다워진다』
      『파란, 찬란』
△묵상집 11인 공저 『시편, 그 얼을 읽다』

△2019~2023년 가톨릭문인회 편집장
△현 가톨릭문인회 회장
 창원법원 가사·민사 조정위원

△산티아고 순례 7회
 (2012, 2015, 2016, 2017, 2018, 20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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