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그린란드 이누이트족 피부색에 담긴 생존 전략
차가운 북극의 심장, 그린란드가 뜨겁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극과 그린란드를 안보와 국가 전략의 핵심 축으로 거론하며 이 섬을 국제 경쟁의 전면에 올려놓았다. 변방에 있던 그린란드는 미·유럽·중·러가 맞붙는 최전선이 되었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빠르게 녹으며 희토류와 각종 광물이 노출되고, 부산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북극항로가 현실이 되면서 그린란드는 각국의 전략 요충지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 거대한 변화 속에서 종종 빠지는 질문이 있다. ‘그린란드에는 누가 살고 있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은 어떤 역사와 몸을 가지고 이 땅에 살아왔는가’이다.
그린란드 인구 5만6000명의 대다수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이누이트(Inuit)족이다. 과거에는 에스키모로 불렸지만, ‘날고기를 먹는 사람’이라는 야만적인 의미가 담겼다는 인식 때문에 오늘날에는 이누이트로 바뀌었다. 이들은 오랫동안 오해의 대상이었다. 햇빛이 귀한 고위도 지역에 살면서도 유럽인처럼 피부가 희지 않고, 오히려 동아시아인과 닮은 얼굴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질문은 시대를 거듭해 되풀이되었다. ‘햇빛이 거의 없는 곳에 사는데 왜 피부가 하얗지 않을까’. 이것은 진화에 대한 단편적인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이누이트의 조상은 유럽인이 아니다. 이들은 서기 1000년 무렵 시베리아에서 캐나다 북부를 지나 그린란드로 이동한, 극동에서 기원한 집단의 후예다. 인류가 아시아에서 베링해를 건너 아메리카로 확산한 머나먼 이주의 마지막 갈래에 그들이 있었다. 이누이트의 얼굴과 피부는 ‘현재의 위도’가 아니라, 오랜 세월 환경에 적응하며 형성된 진화의 자취다.
이누이트의 피부는 왜 북유럽인처럼 밝아지지 않았을까? 그 답은 비타민 D와 식단에 있다. 수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호모 사피엔스는 북쪽으로 확장해 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생존 문제에 부딪혔다. 바로 자외선 부족이다. 농경을 시작한 유럽에서는 음식으로 비타민 D를 충분히 섭취하기가 어려웠다. 이때 선택된 진화적 해법이 바로 멜라닌 감소, 즉 밝은 피부였다. 새하얀 피부는 미적 기준이 아니다. 자외선을 더 많이 흡수해 피부에서 비타민 D를 합성하기 위한 처절한 생존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누이트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에서 그들은 물개 고래 생선을 주식으로 삼았다. 이 식단은 비타민 D와 오메가-3가 극도로 풍부했다. 햇빛에 의존하지 않아도 충분한 비타민 D를 섭취할 수 있었기에, 굳이 멜라닌 색소를 줄일 필요가 없었다. 피부를 밝게 만드는 대신 음식으로 해결한 것이다. 동일한 문제에 유럽인과는 전혀 다른 길을 찾았다. 피부색은 우열이 아니라 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축적된 진화의 흔적이다. 불행히도 이 생물학적 차이는 과거 덴마크 식민지 시기, 인종 차별의 근거로 악용되었다. ‘하얗지 않다’는 이유로 이누이트는 사회적 낙인을 감내해야 했다. 과학적으로 피부색은 가치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자외선 식단 유전자가 수만 년에 걸쳐 빚어낸 정교한 환경 적응의 결과다. 이누이트의 구릿빛 피부는 북극이라는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성공의 증거다.

현재 그린란드는 갈림길에 서 있다. 전통 해양 식단이 사라지고 가공식품 섭취가 늘면서, 이누이트 사회에서는 비타민 D 결핍과 비만·제2형 당뇨 같은 대사 질환이 증가하고 있다. 급격한 기후변화는 전통 사냥 문화를 위협하고, 강대국들은 그들의 터전을 군사와 경제적 이해의 관점에서만 계산한다. 그린란드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사람이다. 이누이트의 몸에 새겨진 피부색은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남아 온 기록이다. 얼음이 녹고 세계의 이해관계가 몰려드는 지금, 이 얼음 섬은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다시 성찰하게 한다. 부산항을 출발한 배들이 북극항로를 따라 그린란드를 지나갈 때, 그들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야말로 인류가 과거의 무지와 차별을 얼마나 극복했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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