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씨앗은 가볍지 않았다

새해 첫날, 귀한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황석영 장편소설 『할매』다. 책 표지의 팽나무 그림 앞에서 한동안 눈길이 머문다. 오래된 팽나무가 뿜어내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위로 향한 줄기의 끝눈 사이로 슬프고 아린 시간이 툭툭 불거질 듯하다. 이 소설이 품은 굵직한 서사의 깊이를 예감한다.
나는 평소 학생들에게 책장을 넘기기 전, 제목과 표지를 오래 바라보라고 주문한다. 작품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독수리처럼 높이 떠올라 전체를 조망하는 큰 시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본 작품을 깊이 읽기 위한 예열이기도 하다.
『할매』는 한 마리 새의 사체에서 싹터 육백 년의 시간을 건너온 팽나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시베리아의 차가운 눈보라를 뚫고 날아온 개똥지빠귀는 금강 하구의 빈터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 몸속에 품고 있던 씨앗 하나가 틔운 팽나무, 마을의 수호신이 된 '팽나무 할매' 이야기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 전쟁과 개발, 신앙과 망각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낸 나무는 말이 없지만, 모든 것을 기억한다. 황석영은 이 나무를 통해 개인사를 넘어 공동체의 서사, 자연과 인간의 관계사를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소설 속에서 어린 팽나무는 여름의 바람과 햇빛, 물안개와 폭풍을 견디며 자라고, 겨울이 오면 죽은 듯 정지하지만, 그것은 다음 생을 준비하는 침묵의 시간이다. 이는 생명의 리듬을 넘어 인간 삶의 본질을 떠올리게 한다. 멈춤과 견딤, 반복되는 죽음과 재생의 감각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산다'라는 것이 무엇인지 배운다.
이 작품을 위해 황석영 소설가는 새로 사들인 책만 사백여 권, 집필 책상에는 백여 권의 책을 뽑아두었다고 한다. 이 숫자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작가정신의 밀도를 말해준다. 뿌리가 깊을수록 나무가 크듯, 내공이 쌓여야 문장에도 살이 붙는다. 이는 작가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자세이자 창작 윤리다.
나 또한 작가로서 읽기와 쓰기의 비율을 7:3으로 둔다. 많이 읽고 오래 사유하지 않으면 쓸 말은 쉽게 마른다. 『할매』는 나에게 문학은 빠르게 소비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을 견디는 나무처럼 천천히 읽히고 오래 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이 소설은 우리 각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씨앗을 품었는가. 어떤 뿌리를 내릴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다음 세대에 남길 것인가.
흰 눈을 소복처럼 두른 들판 한가운데 육백 년 된 시간을 칭칭 두른 팽나무가 서 있다. 개똥지빠귀의 몸속에서 건너온 작은 씨앗 하나가 하제리 마을에 뿌리를 내렸다. 새와 사람들이 어디서 와 어디로 흩어졌는지, 그리고 무엇을 남기고 갔는지 기억하는 육백 년 된 팽나무다.
대청호 전망대에서 잔잔히 일렁이는 윤슬을 바라보며 해맞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이 소설을 읽으며 새해 첫 주를 보냈다. 대청호 물속에 뿌리를 둔 오랜 나무들의 시간과 묘하게 대비되며 겹친다.
사람은 떠나도 그의 이야기는 남아, 나무처럼 곁눈을 키우며 다음 세대로 건너간다. 군산시 하제리 600년 된 팽나무 할매를 만나러 가야겠다. 두 팔 벌리고 안기면, 우리도 듣게 될까?
"이놈아, 어디 갔다 인제 오냐?"
팽나무 할매가 품은 뿌리의 음성이며 오래 기다린 존재를 향한 환대이다. 올해도 저마다 물고 있는 씨앗들이 이 땅의 봄눈을 틔우는 한 뿌리로 이어지길 두 손 모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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