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수직도시 전쟁' 서울 초고층, 방콕보다 적어
50층·200m 이상 빌딩
방콕 39개, 두바이 161개
서울은 23개에 불과해
마천루는 도시 자존심인데
한국은 가성비 우선 개발
설계기술의 축적 어려워
허가 절차도 까다롭고 길어
규제 피하는 49층만 급증

서울과 방콕 중 200m 이상 '초고층 빌딩'이 더 많은 도시는 방콕이다.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CTBUH)의 집계에 따르면 서울은 23개, 방콕은 39개이며 '마천루 전시장'으로 불리는 두바이와 뉴욕은 각각 161개, 120개에 달한다. 왜 주요 도시 중 서울만 초고층이 유독 적은 걸까. 이에 초고층 구조설계 전문가인 정광량 CNP동양 대표(67·사진)는 "한국은 49층짜리 고만고만한 건물만 짓고 있다"며 "주요 선진국이 수직 도시화되고 있는 흐름에서 뒤처져 있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정 대표는 서울 여의도 파크원, 부산 해운대 LCT와 아이파크 등 국내 초고층 빌딩 순위 상위 10개 중 6개 프로젝트를 도맡아온 구조설계 전문가다. 이런 전문성을 인정받아 CTBUH 펠로,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등으로 활동하며 기술 교류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최근 펴낸 저서 '초고층'에서 한국에 세계적인 고층 건물이 탄생하지 못한 배경을 문화·기술·제도적 관점에서 진단했다.
정 대표는 '가성비'가 우선되는 개발 환경이 설계 기술 축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징성이나 기술적 특색이 있는 건물을 고려하기보다 빨리빨리 짓기만을 선호하게 된다는 의미다. "현행법상 50층·높이 200m를 넘으면 '초고층 건축물'로 분류됩니다. 그러면 사전재난영향평가를 받아야 하고 소방·피난·대테러 대책을 세워야 하죠. 면적 활용과 공기 등 손해 보는 게 많으니 '돈이 얼만데'라는 마음이 앞서게 됩니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서 49층의 역설도 생겨난다. 정 대표는 "서울은 전 세계에서 49층이 제일 많은 도시"라며 "안전 규제를 다 피해 간 49층 건물이 가장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렇다 할 건축 프로젝트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국내 구조설계 기술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는 "한국 건설사는 시공 능력만 있을 뿐 설계 원천 기술은 아직 떨어진다"며 "한마디로 제너럴리스트만 있을 뿐 스페셜리스트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초고층 설계에는 바람, 소음, 지반 조건 등에 대한 특수 기술을 가진 전문가의 협업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 분야는 미국 SOM 등 소수 글로벌 설계사가 주도하고 있다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한국과 달리 해외에서는 초고층 건물이 기술과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담는 그릇으로 진화하고 있다. 정 대표는 "건축물은 그 시대의 최신 기술이 집약되는 전시장이자 도시가 미래를 실험하는 플랫폼"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흐름의 대표적 사례가 2023년 완공된 뉴욕의 '스타인웨이 타워'다. 폭 18m, 높이 435m로 마치 연필 같은 외관으로 화제를 모았다. 정 대표는 "보통 건물의 세장비(細長比·바닥 폭과 건물 높이 비율)가 1대7 정도였는데, 이 문법을 완전히 파괴해 1대24를 구현해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는 최근 현대자동차의 글로벌비즈니스콤플렉스(GBC) 계획이 49층짜리 3개 동으로 변경된 것에 아쉬움을 내비쳤다. 정 대표는 "코엑스 인근은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100층 이상 초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땅"이라며 "기술뿐만 아니라 사람과 자본이 몰리는 핵심 입지는 이제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새천년으로 들어가는 문을 형상화한 지름 200m의 고리형 건축물 '천년의 문'이나 인천 송도에 지을 예정이던 '151층 송도타워' 등 실험적인 프로젝트가 무산된 것도 마찬가지 사례로 들었다. "금융위기나 정치적 견해차, 공공기여금 부담 등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국내 건축사를 다시 쓸 기념비적 프로젝트가 무산됐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큽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구조기술사'에 대한 오해도 풀고 싶다고 했다. '구조'라는 단어가 의미를 다양하게 갖고 있어 그 중요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사람들에게 구조기술사라고 말하면 으레 아파트 평면도부터 떠올리며, 세월호 참사 때는 '요새 구조 때문에 바쁘시겠어요'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는 "건축가와 구조기술사는 명품에 비유한다면 디자이너와 공방 장인 같은 관계"라며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명품을 만드는 디테일은 공방 장인의 손끝에서 태어난다"고 설명했다. 장인이 명품의 완성도를 결정짓듯, 구조기술사는 건축물의 안전과 경제성을 조화시키는 중추적 역할을 한다.
"무려 13년에 걸쳐 공사를 한 파크원은 시공사도 시행사도 모두 바뀌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체되지 않은 것은 오직 구조설계사뿐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뼈대를 든든히 잡는 구조기술사들의 땀방울이 오늘도 안전을 짓고 있습니다."
[박태일 기자 / 사진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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