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미 월드컵 불참하자”…선 넘은 트럼프에 유럽 ‘일치단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갖겠다며 ‘관세 압박’ 카드를 꺼내자, 유럽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이번엔 안 당해준다’는 반응이다. 맞불 관세부터 미국 개최 월드컵 불참까지 거론된다. 강경 대응의 배경에는 미국이 실제로 관세를 올리거나 무력 침공에 나서기 어렵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르몽드·가디언 등 보도를 보면, 유럽 각국은 17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방침 발표 이후 일제히 “단호한 대응”을 약속하고 나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엑스(X)에 “관세 위협은 용납할 수 없다”며 “그것이 현실화하면 유럽은 단일하고 조율된 방식으로 응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이날 성명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집단 안보를 위해 노력하는 동맹국들에 관세를 부과하는 건 전적으로 부적절하다”고 반발했다. 독일, 스웨덴, 핀란드 등 지도자들 역시 덴마크에 대한 지지와 유럽의 공동 대응을 강조하는 성명을 각각 냈다.
그린란드 자치정부 광물자원부 장관 나아 나타니엘센은 “표적이 된 나라들의 첫 대응에 놀랐다. 감사를 표하며, (무력보다) 외교와 동맹이 우선하게 되리라는 희망에 고무된다”고 화답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 등 유럽 8개국에 대한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미국의 그린란드 매입 요구에 맞서 최근 병력을 보낸 나라들이다. 미국이 그린란드를 완전히 매입하는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 이들 나라에 내달 1일부터 10%, 6월1일부터는 25% 관세를 매기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은 선언했다.
이에 유럽 정치권에선 좌우 진영을 막론하고 반발이 터져나왔다. 프랑스 좌파 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장뤼크 멜랑숑 대표는 “비굴함은 언제나 더 많은 도발과 복종을 낳을 뿐”이라며 강경 대응을 촉구했다. 친트럼프주의자를 자처해온 영국 극우 개혁당의 나이절 패라지 대표도 “이번 관세는 우리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며 이례적으로 비판했다.
유럽이 만지작거리는 대응 카드는 대규모 무역제재다. 베른트 랑게 유럽의회 국제통상위원장은 최고 수위 무역 방어 수단인 ‘통상위협대응조치’(ACI)를 발동하라고 요구했다. ‘무역 바주카포’로 불리는 이 조치는 경제적 위협을 가하는 제3국에 서비스나 외국인 직접투자, 금융서비스 등의 무역 제한을 가한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기존 타결한 관세 협정을 뒤엎어, 미국산 수입품에 보복 관세를 매기는 방법도 있다. 지난해 7월 체결한 협정에서 미국은 유럽연합산 제품에 15% 관세를 부과하고, 유럽연합은 미국산 공산품·농산물 일부를 무관세로 수입하기로 했다. 유럽의회가 이 협정 비준을 미뤄 미국산에 무관세 혜택을 없던 일로 하는 것이다.
유럽의회 최대 의석을 가진 유럽국민당(EPP)의 만프레드 베버 대표는 “미국산에 대한 0% 관세는 중단돼야 한다”고 했다. 사회민주진영(S&D)의 캐슬린 판 브렘트 통상 담당 부대표도 “이런 조건에선 어떤 무역 협정도 없다”고 못 박았다.
올해 미국·캐나다·멕시코가 공동 개최하는 북중미 월드컵에 불참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독일 집권 기독민주당(CDU)의 외교 담당 대변인 위르겐 하르트는 독일이 월드컵을 보이콧해 “그린란드 문제에서 트럼프가 이성을 찾도록 할 최후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고 했다. 독일 빌트의 최근 여론조사에선 미국이 그린란드를 병합하면 월드컵을 보이콧하자는 물음에 47%가 찬성, 35%가 반대한 바 있다.

이는 지금까지 유럽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여온 ‘저자세’와는 뒤바뀐 분위기다. 미국이 지난해 4월 유럽연합에 20%의 상호 관세율을 일방 통보했을 때, 유럽연합은 맞불 조처를 강구하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 요구를 일부 수용해 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데 만족했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영토 포기를 뼈대로 한 우크라이나 전쟁 ‘평화안’을 내밀었을 때도, 유럽은 미국 쪽 초안에 기초한 새 제안을 내놓는 식으로 그의 눈치를 살폈다.
반면 이번 관세 부과는 ‘선을 넘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 영토 주권을 위협할 첫 수단을 꺼내 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유럽 8개 나라만 콕 집어 관세를 인상한 것도 유럽연합의 무역 원칙을 깨는 ‘도발’로 여겨진다. 유럽연합에선 집행위원회가 전체 회원국에 적용될 통상 협정을 체결하며, 개별 회원국이 외국과 협상할 순 없다.
미국 싱크탱크인 대서양협의회의 찰스 리치필드는 르몽드에 “이제 유럽은 보다 공격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에는 통상위협대응조치 같은 수단이 있으며, 이를 통해 ‘GAFAM’(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에 더 많은 세금을 물리거나 특정 사업활동을 차단하는 식으로 비대칭적인 대응이 가능하다”고 짚었다.
미국의 추가 관세 인상이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관측도 유럽이 목소리를 높이는 배경이다. 이미 유럽산 수입품에 15% 관세가 적용되는 상태에서, 향후 최대 25% 관세를 추가로 매기면 “사실상 미국 시장에서 유럽산을 전면 봉쇄하는 셈”이라고 리베라시옹은 지적했다. 철강 등 원자재 수입에서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치솟는 수입 물가를 안정시켜야 하는 트럼프 행정부로선 유럽 교역을 끊을 여유가 없다.
그렇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무력으로 점령할 여력도 없다는 게 유럽의 중론이다. 미군이 유럽 동맹군과 전쟁하는 건 미국 여론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1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이 군사력을 동원해 그린란드를 가져야 한다’고 응답한 미국인은 4%에 그쳤다.
덴마크 국제문제연구소(DIIS)의 미켈 룬게 올레센 선임연구원은 영국 스카이뉴스에 “미군이 그린란드 땅에 상륙하는 광경은 결코 보게 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단지 협상 전략”이라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국힘, 오늘 ‘이혜훈 청문회’ 보이콧…민주, 단독 개최 불사
- [단독] 신천지, 고양시 종교시설 무산되자 신도들에 “국힘 당원 가입”지시
- ‘관저 공사’ 현대건설 뇌물 혐의 국수본 이첩…윤석열도 피의자 적시
- 이 대통령 지지율 53%…“여권 공천헌금 의혹 영향” [리얼미터]
- “지진 같았다”…스페인 고속열차 탈선 뒤 정면충돌, 최소 21명 사망
- “윤석열 사면” 또 꺼낸 서정욱…“천년만년 민주당이 다수당 하겠냐”
- [단독] 다카이치 측근, 통일교 ‘한학자 보고’에 등장…“에르메스 선물”
- 출근길 곳곳 ‘블랙 아이스’ 조심…오전 전국에 눈·비
- 미, 두 달 만에 반도체 ‘뒤통수’…“미국에 공장 안 지으면 관세 100%”
- ‘꿀 먹은’ 나경원…“윤 체포는 불법” 샤우팅 하더니 징역 5년엔 침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