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 빨 시간에 다른 일 하는게 이득…오로지 ‘키친타월’만 쓰는 미국인 [홍키자의 美쿡]

홍성용 기자(hsygd@mk.co.kr) 2026. 1. 1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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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의 한 아파트. 한국에서 온 방문객이 주방 선반을 보고 다소 놀랍니다. 그 아파트에는 코스트코에서 산 12롤짜리 묶음 두 개가 선반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냉장고 옆에는 24개들이 생수병 박스가 쌓여 있었죠.

“이게 다 종이타월이에요? 언제 다 써요?” 라는 질문에 주인은 “이거요? 한 달이면 다 써요”라고 답합니다. 한국에서는 기름 튈 때나 쓰는 얇은 종이타월 한 롤로 몇 달을 가는데, 미국에서는 12롤짜리 두 묶음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시간의 가치’가 다르다…내 비싼 시간을 계산하는 미국인들
코스트코 키친타월.
사실 답은 간단합니다. 미국의 종이타월(키친타월)은 일회용 행주입니다. 질감이 뻣뻣하고 두꺼워서 행주 대용으로 모두가 씁니다.

아이가 우유를 엎질렀을 때, 음식이 쏟아졌을 때, 조리대를 닦을 때, 손을 닦을 때 그냥 쓱 뜯어서 닦고 버립니다. 미국 가정의 화장실에는 손님용 종이타월이 비치돼 있기도 하죠. 한국에서는 호텔이나 백화점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지만요.

행주를 빠는데 내 시간을 쓰는 대신, 그 시간을 아껴 다른 것을 한다는 생각입니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025년 12월 현재 미국의 평균 시급은 약 37달러입니다. 맨해튼 중산층 직장인의 경우 시급은 50달러를 훌쩍 넘어갑니다.

행주를 빨고, 짜고, 말리는 데 5분. 하루에 두 번이면 10분, 한 달이면 5시간입니다. 시급 50달러로 환산하면 250달러. 코스트코 종이타월 두 묶음은 50달러입니다.

물론 이같은 계산이 늘 명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미국 사회 전체가 “내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는 전제 위에서 작동합니다. 미국에서 노동력이 투입되는 모든 것은 비싸죠. 결국 자신의 노동력조차 아끼려는 경향이 강한 겁니다.

브루클린에 사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톰의 대답이 이같은 태도를 관통합니다.

“주말에 빨래 개고, 행주 삶고, 청소하는 데 시간 쓰고 싶지 않아요. 그 시간에 아이들이랑 공원 가거나, 책 읽거나, 그냥 쉬고 싶어요.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돈으로 사는 게 맞죠.”

실제로 미국인들은 연간 1인당 약 24㎏의 종이타월을 소비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미국 전체로는 연간 130억 파운드(약 590만t)으로, 미국 가정은 평균 2주에 1.52롤을 사용합니다. 연간 종이타월에만 120~180달러를 지출합니다.

생수병이 정수기를 이겼다…준비 과정의 제거
이 논리는 종이타월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코웨이가 정수기 렌털 사업으로 시장을 석권할 때, “생수를 사 먹다니, 말이 돼?”라는 반응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 가정의 90% 이상이 정수기를 사용합니다.

미국은 정반대입니다. 생수 시장은 2000년 약 60억 달러에서 2024년 소매 포함 약 11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정수기를 생각하면 6개월 마다 필터 갈아야 하고, 물때 생기면 청소해야 하고, 물병도 자꾸 씻어야 한다는 점이 성장을 막은 것이죠.

준비 과정의 제거. 이것이 핵심입니다. 물병을 씻고, 필터 상태를 점검하고, 냄새나 물때를 신경 쓰는 모든 과정을 없앤 것입니다.

심지어 미국 사무실의 직원들은 회사가 정수기를 제공하는데도 개인 생수병을 책상에 둡니다. 정수기까지 걸어가는 30초가 아깝기도 하고, 집중력도 끊긴다는 게 이유죠.

일회용 컵도, 대용량 휴지 36롤 세트도 같은 논리입니다. 설거지 과정을 생략하고, 쇼핑 빈도를 줄입니다. 도심이 아닌 지역에서는 코스트코까지 차로 30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미국 기업들의 혁신 전략은 준비 과정을 없애고자 하는 미국인들의 생활 방식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구글 검색 엔진은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까지 도달하는 클릭 수를 줄이는 데 집중합니다. 한 번의 클릭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경쟁 제품으로 넘어가니까요.

2010년대 배달앱의 폭발적 성장도 같은 맥락입니다. 음식점을 찾고, 전화하고, 메뉴를 주문하고, 픽업하러 가는 과정을 모두 없앴습니다.

넷플릭스는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DVD를 빌리고 반납하는 번거로움을 없앴습니다. 달러 셰이브 클럽은 “면도날이 떨어졌나?” 확인하고 매번 사러 가는 수고를 제거했습니다.

아마존 프라임은 무료 배송을 위해 최소 주문 금액을 맞추거나 배송비를 매번 계산하는 번거로움을 없앴습니다. 핵심은 ‘구매 결정을 반복하는 번거로움’을 줄인 것입니다.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캐피털리스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friction(마찰)’을 줄이는 회사에 투자합니다. 사용자가 목표 달성까지 거쳐야 하는 단계가 몇 개인지 세어봅니다. 그 단계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면 투자 가치가 있습니다”라고요.

번거로움과의 전쟁, 70년 넘게 이어진 문화
브루클린의 한 부부는 주말마다 청소 대행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한 번에 150달러에 달합니다. 비싸긴하지만, 토요일에 4시간씩 청소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입니다. 그 시간에 아이들이랑 박물관 가거나 가족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이죠.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과소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적 배경이 다릅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중산층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1950년대 광고의 주요 메시지는 “시간을 절약하세요!”였습니다. TV 디너, 일회용 기저귀, 종이컵이 모두 이 시기에 보편화되었습니다. 70년 넘게 이어진 문화입니다.

물론, 환경 문제는 여전히 숙제입니다. 종이타월 1t을 생산하려면 17그루의 나무와 2만 갤런의 물이 필요합니다. 미국에서만 연간 종이타월 생산에 약 1300억 갤런의 물이 사용됩니다. 포틀랜드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슬로우 라이프’ 운동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여전히 효율성을 향합니다. 챗GPT가 글쓰는 시간을 줄이고, 자율주행차가 운전하는 수고를 없애고, 스마트홈이 집안일 관리를 자동화합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많은 과정이 생략됩니다.

미국 사회를 이해하려면 이 번거로움과의 전쟁을 먼저 들여다봐야 합니다. 맨해튼 아파트의 주방 선반에 쌓인 종이타월. 거기에는 단순히 닦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니라, 70년간 이어진 효율성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미국에 살아봐야 보이는 진짜 미국. 뉴욕특파원 홍성용 기자가 직접 경험하고 해석한 미국의 돈 이야기. “미국 월세는 왜 이렇게 비싸고, 중고차는 어떻게 사며, 왜 신용크레딧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걸까?” 직접 체험한 미국살이의 모든 것을, 한국인의 시선으로 깊이 있게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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