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아니고 책임은 혼자? 예술인 산재보험 기만 프레임 바꿔야"
[토론회] 가입률 2% 유명무실, '안영재 없는 안영재 법' 안 되려면
'전국민 산재보험' 국정과제지만…"현장이 정책 참여해야"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실효성 있는 예술인 산재보험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가 현장 당사자들을 포함하는 노사정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행 예술인 산재보험이 현장에선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오히려 예술인의 노동자성을 박탈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지적이다.
안명희 문화예술노동연대 정책위원장은 지난 16일 '제대로 된 예술인 산재보험,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예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제대로 된 산재보험을 위해서는 법제도 적용 당사자인 예술인이 의견 수렴의 대상이 아닌, 정책결정자로서 실제 논의에 참여하고 제도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이용우·민영배, 조국혁신당 김재원, 진보당 손솔 의원실과 문화예술노동연대 등 주최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3간담회실에서 열렸다.
정부 '전국민 산재보험' 국정과제지만
…“안영재 없는 안영재 법 될라”
세종문화회관 공연 리허설 중 무대장치에 깔려 하반신이 마비된 안영재 성악가가 지난해 10월21일 숨졌다. 그의 죽음은 문화예술노동자들이 일하다 다치고 사망해도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권과 안전망의 실태를 드러냈다. 안씨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 놓여 노동자성과 산재를 인정 받지 못했고, 억대 병원비를 홀로 책임져야 했다.
현행 예술인 산재보험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지 오래다. 가입하려면 예술인 복지법상 예술 활동을 '증명'해야 하고, 예술인이 보험료를 전액 부담하는 임의가입 형식이다. 이탓에 직업예술인의 수가 날마다 늘어도 가입자는 극소수다. 2021년 3.5%이던 가입 비율은 2024년 2%로 더 줄었다(문화체육관광부 예술인 실태조사). 예술인으로 '증명'되지 않은 예술인을 포함하면 가입률은 더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재명 정부는 국정과제로 전 국민 산재보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직종별 단계적 추진을 하겠다'고 밝혀 현장에선 우려하고 있다. 안명희 정책위원장은 “2022년 (중단됐던) 노사정 논의 당시에도 정부는 '몸을 많이 쓰거나 위험한 장비를 다루는 직종에 우선 적용하고 비교적 위험도 낮은 창작자엔 나중에 도입하자'고 했다. '사고(많은 직종)'부터 적용하고 '질병(많은 직종)'은 나중에 적용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했다. 이어 “같이 촬영을 나가는데 스태프엔 적용하고 작가에겐 적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말 안 된다. 이렇게 직종별로 일부만 적용한다면, 돌아가신 안영재 님도 적용 받지 못하는 '안영재 없는 안영재 법'이 될 수 있다”며 당연가입과 전면적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행 산재보험, 예술인 노동자성 부정하는 기만 프레임”
현행 예술인 산재보험이 예술인을 노동자 아닌 자영업자로 취급하도록 해 오히려 노동권을 박탈하는 도구로 활용된다는 비판도 나왔다. 예술인들의 산재보험 가입은 2012년 예술인복지법과 산재보험법상 '중소기업 사업주 등에 대한 특례'가 시행되며 가능해졌는데, 이 '특례'는 예술인의 지위를 자영업자로 분류한다. 또한 산재보험을 적용 받으려면 예술인복지법상 예술인으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이 예술인 지위도 '근로자 아님'을 전제한다.
성악가인 심형진 예술인연대 사무총장은 “무대 사고 시 예술가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고통”이라며 “행정당국과 근로복지공단은 예술인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예술인복지법을 근거로 예술인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고 판단하며, 억대 병원비와 사고 수습 책임을 홀로 감당케 한다”고 했다. 뮤지컬 앙상블 배우들이 노동자성을 인정 받은 소송 사건을 대리했던 천지선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도 재판 당시를 떠올리며 “근로복지공단 직원이 '예술인 복지법을 적용받고 있으니 근로자가 아니다'라고 주장을 했다”고 했다.
다수 참가자는 예술인 산재보험이 실효성을 찾으려면 근로기준법과 산재보험법을 전향적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신하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장은 “현행 예술인 산재보험은 예술인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기만적인 프레임 안에 갇혀 있다”며 “산재의 책임은 마감과 작업 분량을 결정하고 수익을 취하는 사업주에 있다”고 했다. 사회비평가이자 프리랜서 작가인 박권일 작가도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은 분명 사회에 가치를 보태는 활동이다. 하지만 그 노동에 따른 고통과 부담은 오직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며 “프리랜서가 자신의 건강을 해칠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그저 구조적 착취의 결과다. 이것이 노동자성 인정과 산재보험이 필요한 이유”라고 했다.
노동부 “필요성 인식하지만 사회적 합의 먼저”…
노동자들 “쿠팡도 피하는데…정부가 노사정 이끌어야” 반박
이 과정에는 현장 당사자가 참여하는 노사정 대화가 필수적이다. 안 정책위원장은 “현장에 맞는 산재보험을 만들려면 당사자가 정책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며 “노사정 논의가 2022년에 7개월 간 진행됐는데 현장 요구를 말할 형식적 인원 배치도 부족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마치 떼를 쓰는 것처럼 답변이 돌아왔다”고 했다. 이어 “예술인 산재보험 적용은 결국 권리다. 현장이 참여하고, 적어도 노조 추천 전문가가 들어가야 최소한의 모양새가 갖춰진다. 정부와 국회가 달라진 태도로 구체적 논의를 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원주 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장은 “산재보험을 예술인에 적용해야 한단 필요성은 확실히 인식하는데, 어떻게 적용하고 보험료 부담을 어떻게 낮추고 정부가 어떻게 지원할지 같이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문화예술노동자에 산재보험을 당연가입·전면 적용하는 데엔 '사회적 합의'를 선결 조건으로 내걸었다. “노사가 조성하는 보험이기에 정부가 결단하기보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측면이 있다”며 “택배노동자는 쿠팡을 뺀 택배사 사업주가 사회적 합의에 따라 보험료를 다 부담하는 구조”라고 했다.
이를 두고 일부 패널이 정부가 문화예술계 노사정 논의를 이끌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김원중 언론노조 서울경기출판지부 사무국장은 “왜 정부가 노사정 합의에 나서서 중재할 생각 하지 않는가”라며 “택배노조 사회적 합의는 조직된 노동자들이 힘 있는 목소리를 냈기에 이뤄졌다. (출판은) 대한출판문화협회 등 사용자단체가 사용자임을 인정하지 않고 만나지도 않는다”고 했다. 천지선 공감 변호사도 “쿠팡은 정부가 적극 개입해 합의하려 하는데도 피한다고 알고 있다. 정부가 나서도 사용자가 피하면 피할 수 있는 상황에, 우리끼리 모인다고 합의가 이뤄지기 어렵다. 예술인 보호를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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