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에 내린 ‘기본소득’ 마법일까 마수일까 [전국 인사이드]

박누리 2026. 1. 1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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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4일 충북 옥천군청 앞마당에서 ‘농어촌 기본소득사업 선정 범군민 축하대회’가 열렸다. ⓒ옥천군

기적이라 부를 만하다. 가파른 인구 감소의 비탈길에 서 있던 충북 옥천군에 한 달 사이 1000여 명이 몰려들었다. 4만8000명 선을 가까스로 유지하던 인구는 순식간에 4만9000명을 넘어섰고, 이제 5만명 고지 탈환이 눈앞이다. 비결은 하나. 내년부터 옥천군 모든 군민에게 매달 15만원(연 180만원)을 지역상품권으로 지급하는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이다. 탈락의 고배를 들었던 1차 결과를 뒤집고 극적으로 추가 선정되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옥천으로 주소를 옮겼다. 숫자만 놓고 보면 ‘지방 소멸의 만병통치약’이 발명된 것만 같다.

하지만 환호작약하는 군청 앞 현수막 뒤편으로, 서늘한 질문이 꼬리를 문다. 이 ‘철새 인구’는 시범사업이 끝나는 2년 뒤에도 옥천에 머물까? 우리는 이미 수많은 지자체가 쏟아부은 출산장려금의 허망한 결말을 알고 있다. 돈이 사람을 잠시 불러모을 순 있어도, 척박한 삶의 토양을 바꾸지 못하면 곧 썰물처럼 빠져나간다는 사실 말이다. 기본소득 역시 마찬가지다. 링거를 꽂는다고 괴사한 조직에 새살이 돋지는 않는다. 2년이 지나고 옥천의 인구 그래프는 어디를 가리키고 있을까.

가장 뼈아픈 모순은 농촌 내부에서 발생한다. 기본소득은 지역상품권으로 지급된다. 지역 안에서 돈이 돌게 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옥천의, 아니 대부분의 농촌 면 지역은 돈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공간이다. ‘식품 사막’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면 지역 주민이 15만원을 쓰려면 지금으로서는 차를 타고 읍내로 나가야 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기본소득 제도는 기본적으로 사용처를 거주지인 ‘면’ 단위로 묶어두었다. 옥천의 경우 안경점·학원 등 일부 읍내 상권만 예외적으로 허용했을 뿐이며, 주민 입장에서 가장 시급하다 할 수 있는 병의원 사용은 여전히 ‘논의 중’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고 읍내에서 지역상품권을 쓸 수 있는 업종을 확대하면 ‘농촌 내부의 중앙집권화’를 가속화할 위험이 커진다. 면 지역에 뿌려진 재화가 읍내 상권으로 빨려 들어가는 ‘빨대 효과’가 발생하고, 읍과 면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읍으로 모인 돈은 다시 주변 대도시나 대기업 금고로, 거대한 자본의 흐름 속에 흡수돼 빠져나간다. 면으로 묶어두면 쓸 곳이 없고, 읍으로 범위로 확장하면 기본소득의 상당부분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딜레마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동권이 취약한 노인들에게 이 15만원은 ‘그림의 떡’이거나 ‘고단한 숙제’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읍내로 나가려면 별도의 교통비와 체력, 혹은 동행자가 필요하다. 결국 자녀에게 카드를 맡기는 대리 소비가 일상화될 공산이 크다. 옥천군이 이를 보완하겠다며 ‘찾아가는 만물상 트럭’ 운영을 검토 중이라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트럭은 ‘이벤트’일 뿐, 주민의 일상을 지탱하는 단단한 ‘인프라’는 아니다. 트럭의 등장은 역설적으로 그 지역에 구멍가게 하나 유지될 수 없다는 시장 실패를 증명한다. 더 아프게 말하자면, 마을 생태계가 이렇게 무너지기까지 행정과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않고 방치했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현금 링거’ 맞기 위해 미래 체력 깎아먹어

재정의 지속가능성도 뇌관이다. 옥천군은 이 사업을 위해 청년 주거 정책과 같은 미래 투자예산 수십억 원을 삭감했다. 당장의 ‘현금 링거’를 맞기 위해 미래의 체력을 깎아먹는 꼴이다.

지금 충청권은 대전과 충남을 합치는 ‘대충특별시(행정 통합)’ 논쟁으로 뜨겁다. 몸집을 불려 수도권에 대항하겠다는 거대 담론이다. 하지만 정작 그 거대 도시의 뿌리가 되어야 할 농촌의 말단, ‘면’ 단위의 삶은 붕괴 직전이다. 상점도, 병원도, 학교도 없는 곳에 돈만 뿌린다고 ‘기본사회’가 오지 않는다. 읍이나 도시로 나가지 않아도 기본적인 삶이 영위되는 생활권의 복원, 아플 때 기댈 수 있는 공공의료와 돌봄 서비스망, 원할 때 움직일 수 있는 이동권, 그리고 안전한 주거와 질 좋은 교육. 이 ‘생활 근육’이 붙지 않은 농촌에 현금만 주입하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사람을 어디로 모을 것인가’가 아닌, ‘사람이 어디서든 존엄하게 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물어야 할 때다.

옥천의 실험이 ‘반짝’ 하고 끝나지 않으려면, 이제는 권리와 환경이 촘촘히 보장되는 농촌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거대 담론인 ‘특별시’를 꿈꾸기 전에, 소멸해가는 ‘면’의 밭고랑부터 살피는 세밀함이 필요하다. 15만원이라는 숫자에 취해 있을 시간이 없다.

박누리 (충청 로컬 저널리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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