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 크리스 밀러 “러시아의 기대는 순진하고, 정책은 환상과 착각 위에 세워져 있었다” [김용출의 한권의책]

푸틴은 이후 매년 극동경제포럼을 열면서 지속적으로 극동 개발과 북극항로 개척 등을 강조했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선 “역사상 가장 좋은 시기”로 묘사하며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고, 우크라이나전쟁에 대규모 지원 병력을 파병한 북한과는 2024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21세기 차르의 아시아로의 전환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이제 막 깨닫기 시작하기만 하면, 우리의 돌파구, 우리의 부, 우리의 대양이 미래의 아시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유럽에서 우리는 들러리이자 노예였지만, 아시아에서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 소설가 도스토옙스키가 1881년 행한 국가주의적 선언은 과연 실현될 것인가.

표트르 대제를 비롯해 근현대 러시아 지도자들 역시 대외정책을 유럽적 렌즈를 통해서만 바라보지 않았다. 서구를 통해 자신들을 강대국으로 인식하는 정체성을 형성해왔음에도, 심지어 19세기 초 나폴레옹과의 전쟁이나 제2차 세계대전의 파괴적인 전쟁에 연루됐음에도. 러시아 지도자들은 유럽과 아시아라는 양극 사이에서 진자처럼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며 주기적으로 방향을 전환해왔다.

러시아가 동아시아와 태평양을 영토 확장과 상업적 진출, 지정학적 경쟁의 공간으로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알렉산드르 1세 시대(1801~1825)에 이르러서였다. 이때 러시아는 캄차카반도를 넘어 알래스카로 진출했고, 놀랍게도 한동안 캘리포니아와 하와이를 식민지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베리아의 모피 거상 그레고리 셸리호프와 러시아령 아메리카의 초대 총독 알렉산드르 바라노프 등을 중심으로 한 ‘태평양 제국’이라는 장대한 계획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영국과 미국의 견제로 실패했다. 미국에 캘리포니아 포트 로스를 매각한 뒤, 30년 후에 다시 알래스카까지 팔아야 했다. 러시아는 이후 쿠릴열도와 사할린, 아무르강 유역 등 동아시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먼저 제2차 아편전쟁(1856~1860)으로 청 제국이 흔들리는 틈을 타서 아무르와 우수리 유역의 영토를 제국에 편입시켰다. 하지만 크림전쟁 패배 후 차르의 관심이 유럽과 흑해 방향으로 집중되면서 이 거대한 극동 영토는 방치됐다.

동아시아는 냉전시대에 러시아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지정학적 공간으로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스탈린은 김일성의 남침 계획을 승인해 한국전쟁을 초래했고, 후루쇼프는 평화공존이라는 정책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소프트파워 사회주의’를 행사하려 했다. 고르바쵸프는 냉전의 끝자락에 인도 및 중국과 아시아 내 ‘삼각 협력체’를 구상했다가 이해관계 충돌과 소련의 해체로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저자는 러시아의 아시아 회귀 정책은 대체로 과도한 주관적 낙관주의로 시작되고 진행되는데다가, 근본적으로는 국가적 역량을 초과했기 때문에 실패해 왔다고 분석한다. “많은 기대는 처음부터 순진했고, 또 일부는 아시아의 기회나 러시아 자신의 역량을 근본적으로 오해한 데 기반을 두었다.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대외정책은 영속적인 국익보다는 환상, 꿈, 그리고 착각 위에 세워져 있었다.”(40쪽)
책은 근현대 러시아의 동진 역사를 들려주는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 푸틴의 ‘아시아로의 전환’ 구상과 중국 및 북한과의 밀착, 우리에게도 큰 관심사인 북극항로 개발의 역사적 뿌리를 추적하면서 오늘날 급변하는 유라시아 지정학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제공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푸틴 정부의 신동방정책 ‘아시아로의 전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책은 마지막에서 푸틴 정부의 ‘아시아로의 전환’ 미래도 논한다. 푸틴이 추진하는 북극항로가 경제적 잠재력은 크지만, 여전히 막대한 인프라 비용과 환경적 위험이라는 ‘과거의 실패 패턴’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푸틴이 가장 존경하는 표트르 대제의 사례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트르는 암스테르담 및 런던과의 관계, 흑해와 발트해에서의 전쟁, 유럽 문화의 수용, 서구 정치의 모방으로 기억된다. 반면, 임종의 자리에서 꾸었던 아시아 영향력에 대한 그의 꿈은 오늘날 거의 잊혔다.”(522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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