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만 열리는 ‘시간의 길’…얼음 위를 걷다
유네스코 지질공원 지정…부교따라 8.5㎞
직탕폭포~순담계곡 구간 12~3월에 개방
돌기둥 촘촘 ‘송대소 주상절리’ 자연의 걸작
산자락 덮은 거대한 빙벽 앞에 탄성이 절로
현무암 협곡 장쾌한 풍경 보며 추위도 잊어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워 꽁. 겨울바람 때문에.”
손발이 꽁꽁 얼 만큼 추운 1월, 매서운 한파가 살 속 깊이 파고든다. 하지만 따뜻한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있자니 답답함이 밀려온다. 이 얼음장 같은 날씨가 오히려 여행을 재촉하는 신호다. 이한치한(以寒治寒)이라 했다. 추위를 추위로 이겨내며 이 짜릿한 계절을 온몸으로 느껴보자.
얼어붙은 한탄강 위를 걸어보는 특별한 겨울 명소, 강원 철원 ‘한탄강 물윗길’을 12일 찾았다. 한탄강 물윗길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강 일대에 만든 도보여행길이다. 강변과 강 위 부교를 따라 걸으며 주상절리를 포함한 자연의 걸작들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
이 길은 해마다 11월께 일부 구간을 임시 개방하는데, 12월 중순이면 직탕폭포에서 순담계곡까지 이르는 8.5㎞ 전 구간을 개방한다. 이듬해 3월까지만 운영되며, 봄철 수위가 높아지면 부교를 철거한다. 그래서 물윗길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겨울 한가운데서만 열리는 ‘시간의 길’이다.
한탄강 상류부터 태봉대교, 은하수교, 승일교, 고석정, 순담 매표소, 다섯곳에서 물윗길에 진입할 수 있다. 입장료는 1만원이지만 5000원은 철원사랑상품권으로 돌려준다.
여정의 들머리인 태봉대교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물윗길로 들어섰다. 인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여는 순간, 칼바람이 볼을 스쳤다. 기온은 영하 6도,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내복을 껴입고 두꺼운 양말로 단단히 무장했건만, 차디찬 삭풍에 얼굴은 금세 얼얼해졌다. 목도리를 둘러야 했나? 후회도 잠시 마음을 다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차가운 공기에 몸이 익숙해질 무렵, 부교 아래로 하얀 얼음이 어른거렸다. 강 하류 쪽으로 20분쯤 걷자, 우르르 쏟아질 듯한 돌기둥이 촘촘히 박힌 거대한 절벽이 나타났다. 송대소 주상절리다.
높이가 30m에 이르는 현무암 절벽 앞에 서니 장엄함이 밀려온다. 몸을 웅숭그리고 서둘러 걷던 탐방객들도 이곳에서는 발걸음을 멈춘다. 주상절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이들의 얼굴엔 미소가 번진다. 경기 광명에서 온 박두영씨(67)는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현무암 절벽을 이곳에서 만나 놀랐다”며 “절경 그 자체”라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송대소를 지나 은하수교에 오르자 시야가 확 트인다. 동송읍 장흥리와 갈말읍 상사리를 잇는 이 다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얼어붙은 강과 물윗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폭의 그림처럼 담긴다. 경기 용인에서 가족과 함께 온 윤지예양(11)은 “은하수교에서 아래를 볼 땐 무서웠지만, 풍경이 정말 멋졌다”고 말하며 수줍게 웃는다.
잠시 뒤, 진눈깨비가 흩날리더니 ‘쩍-’하는 굉음이 강가를 갈랐다. 두꺼운 강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다. 모두가 놀라더니 이내 웅장한 자연의 울림에 탄성을 자아냈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발걸음을 옮기자, 산자락을 덮은 거대한 빙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폭포가 흐르다 삽시간에 얼어붙은 듯하다. 얼음기둥 위로 햇빛이 반사되며 반짝였다. 승일교 인근에 있는 이 빙벽은 축제를 앞두고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곳은 25일까지 열리는 ‘철원 한탄강 얼음트레킹 축제’의 중심지로, 강변에선 눈썰매장 조성과 지역 농특산물 판매장터 준비가 한창이었다.
물윗길을 계속 따라가니 우뚝 솟은 15m 높이의 바위와 그 옆 정자가 시선을 끌었다. 고석정이다. 고려·조선 시대 문헌에도 등장하는 철원의 명소로, 의적 임꺽정이 이 일대에 은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수려한 경관 덕분에 드라마 허준·선덕여왕을 비롯한 여러 사극의 촬영지로 쓰였다.
고석정에서 순담계곡으로 향하는 길은 물윗길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구간이다. 오랜 세월 화산활동과 침식이 빚어낸 현무암 협곡이 이어지며 장쾌한 풍광을 이룬다. 물 위를 걷기에 볼 수 있는 절경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일부 구간은 살얼음이 얼어 미끄럽지만, 탐방객들은 조심스레 발을 내디디며 강 위를 따라 나아간다. 이윽고 순담 매표소에 닿자 8.5㎞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차례! 맛집으로 소문난 ‘철원막국수’로 향했다. 철원의 명물 막국수 한그릇은 이한치한의 백미다. 살얼음이 둥둥 뜬 새콤한 육수를 들이켜고 메밀국수를 베어 물면 시원함에 정신이 번쩍 든다. 고소한 녹두전을 한점 곁들이면 금상첨화. 맛집임을 인증하는 ‘블루리본’을 10년간 획득한 이곳은 주말이면 대기 줄이 길지만, 평일 오후에 찾으면 여유롭다.
이번 주말, 얼어붙은 한탄강 위를 걷고 차가운 막국수를 먹으며 버성겼던 동장군과 좀더 친해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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