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는 하는데 지상파·종편은 못하는 것
[이주의 미오픽] 꼰대심의와 규제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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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나 종편에서 흑백요리사를 방영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요?
1. 모수, 미슐랭(미쉐린), 팔선 등은 땡수, 땡슐랭, 팔땡이라고 부른다.
2. 나폴리맛피아의 문신은 가린다.
3. 편의점 미션, 특정 브랜드 냉장고가 대대적으로 등장하는 미션은 내보내지 못한다.
4.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엔 술 빚는 장면 내보내지 못한다.
이번주 리포트 주제는 '꼰대심의와 규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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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방송에선 상표 말 못할까
'미쉐O'. 지난해 안성재 셰프가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해 미쉐린에 대한 얘기를 나눴는데 방송에선 음성 일부를 묵음 처리하고 자막을 '미쉐O'으로 내보냈습니다. 지난 14일엔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최현우 마술사가 “아니 요즘 마술사에겐 너튜브가 최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외에도 초록창, 인별그램, 너튜브처럼 상표나 상호, 서비스 이름을 방송에선 제대로 말 못하죠.
심지어 프로야구 선수를 초청해놓고선 소속팀 이름조차 제대로 말 못하는 상황도 벌어집니다. '유퀴즈 온더 블록'은 매년 프로야구 우승팀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요. '챔피언 기X타이거즈.' '기X 대 삼X.' '엘X' 이라는 자막을 냈습니다. 모두가 무엇인지 잘 아는데 말은 못하는 황당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tvN 유퀴즈는 왜 '기아' '삼성' 야구팀 이름도 말 못할까]
왜 이러는 걸까요. 방송사에선 “상표 얘기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지금은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받는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2024년 11월 SBS 시청자위원회에서 이 지적이 나오자 최태환 편성국장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특정된 상호명 등을 (광고효과를 우려해) 방송에서 사용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방심위에 얘기 좀 해주셔서 변화가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방심위는 특정 상표 언급을 금지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심의규정상 '광고효과' 조항에 “상품 등 또는 이와 관련되는 명칭·상표·로고·슬로건·디자인 등을 과도하게 부각하거나 반복적으로 노출하는 내용”은 '광고효과'를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제재 대상이 되는데요. 과도하지 않으면 규정상 괜찮습니다. 하지만 '과도하게'의 기준은 뭘까요?

방심위는 “사안별로 노출의 정도, 방송 프로그램의 유형 및 노출의 맥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심의를 수행하고 있다”는 입장인데요. 사후규제기구로 사전에 명확한 가이드를 주지 않다보니 방송사 입장에선 과하게 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차라리 누군가 나서서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미슐랭'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못을 박아버리면 좋겠습니다.
왜 방송에선 문신 가려야 할까
SBS '골목식당'에 래퍼 우원재가 출연했을 때 목에 파스(?)를 하고 있자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목은 왜 삐끗했어요?”라고 물어봅니다. 출연자들은 빵 터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우원재가 목에 문신을 하고 있어서 덮은 것이었죠.
여기서 문제가 되는 조항은 '품위 유지' ,'수용 수준'입니다. 특히 '품위유지'는 불쾌감·혐오감 등을 유발해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을 금지한다는 내용입니다. '상표 상호 언급 못하는' 사례와 달리 이번에는 명백한 심의 사례가 있어 방송사들이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2011년 엠넷(Mnet)에 방영된 '비틀즈코드'에서 이주노가 문신을 드러낸 모습이 장시간 노출돼 '권고' 조치를 받았습니다. 2014년 엠넷 '네가지쇼'에서 가수 박재범의 문신이 지속적으로 노출돼 '권고' 조치를 받은 사례도 있습니다. 이 심의 사례가 판례처럼 작용한 것이죠. 2018년엔 타투를 콘셉트로 한 현대자동차 광고에 박재범의 문신이 반복적으로 나온 점이 문제가 돼 광고를 내보낸 tvN 등 4개 채널이 격론 끝에 '의견제시'를 받았습니다. '의견제시'는 행정지도 가운데 가장 낮은 단계지만 문제는 있다는 판단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쇼미더머니' 래퍼 문신 노출하면 왜 심의 받을까]
댕댕이, 핵인싸 등 신조어도 안 된다?
뿜뿜, 댕댕이, 핵인싸, 멘붕, 빼박캔트, 'SO 당황' 'This is 뭉클'. 이 표현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방심위 심의에서 행정지도나 제재를 받은 표현입니다. 2014년 제가 처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출입할 때 “빼박캔트”라는 표현을 심의하고 나서서 충격을 받았는데요. 이후 후배가 출입할 땐 “SO 당황”, “멘붕”을 심의해 황당하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엔 SBS '런닝맨'에선 “글러 먹은 근본”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됐고, '배성재의 텐'에서 나온 “야한 꿈 꾸세요” 등 표현도 심의를 받았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상은 많이 바뀌었는데, 변함 없는 심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윤석열 정부 때인 2023년 10월 방심위는 <부적절한 방송언어 바로 잡는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습니다. “예능오락 프로그램에서 무분별한 비속어신조어, 과도한 줄임말 사용 등으로 인한 우리말 훼손이 심각하다고 판단”된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강도 높은 모니터링을 예고”했습니다. 신조어나 줄임말을 무조건 나쁜 표현이라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고요. 비속어에 대해선 논의할 필요는 있겠지만 이를 두고 사실상의 행정기구가 집중 모니터까지 나서야 할 사안일까요?
[관련 기사: '배성재의 텐' 중징계 피했다… 제작진 “방송언어 각별히 신경 쓸 것”]
[관련 기사: '댕댕이' '핵인싸' 신조어 쓴다고 제재해야 할까]
[관련 기사: 'SO 당황' 'This is 뭉클' 신조어에 법정제재, '꼰대'심의?]
[관련 기사: '뿜뿜' '멘붕' 등 신조어가 중국인 비하보다 심하다?]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 의미 있나요?
한국 방송은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몇시인지 아시나요? 지상파 기준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오후 1시부터 10시까지입니다. 사실상 하루종일인데요. 이 기준에 근거해 이 시간대에 들어갈 수 있는 광고 품목이 제한되고요. 음주 장면 역시 제재가 이뤄집니다. 방송에서 음주를 금지하는 건 아니지만 '청소년보호시간대'에 방영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E채널 '노는언니'(2021년)과 SBS '미운우리새끼'(2018년) 등은 중징계인 법정제재까지 받았습니다. 본방은 문제가 없었는데 하필 재방송을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에 내보내는 바람에 심의를 받은 사례도 있습니다.
특정 시간대를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로 규정하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대가 너무 길다는 지적이 있고요. 매체환경 변화도 고려해야 하겠죠. 청소년들이 이 시간에 과연 실시간 TV방송을 시청하고 있을까요? 더구나 유튜브나 틱톡에선 더한 장면도 쏟아지다시피 하는데 이 규정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관련 기사: 심의에 묶인 런닝맨·1박2일·놀면뭐하니…넷플릭스 상대 어렵다?]
정치심의도 문제지만‥
미디어오늘은 심의 관련 보도를 할 때 주로 정치심의 문제를 다뤘습니다만 시대에 맞지 않는 이른바 '꼰대심의' 문제도 심각합니다. 이는 어느 정부가 들어서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선진국에선 사실상의 국가기구가 나서서 방송을 심의하는 사례 자체를 찾기 매우 어렵습니다. 이와 같은 심의나 규제가 지속돼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이는 불공정 경쟁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방송사들이 혁신을 못한다는 지적도 일리 있지만 OTT 환경에서 일방적으로 규제를 받는 방송사들이 제약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이를 '비대칭규제'라고 하죠. OTT와 방송 콘텐츠는 형식상 같아 보이지만 규제 환경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상파나 종편의 '규제완화' 소원수리를 해주자는 건 아닙니다. 특히 공적 영역에는 강한 원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관련 기사 : 지상파 규제 풀어주면 넷플릭스와 경쟁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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