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만에 독일서 돌아온 덴마크 ‘국보급’ 그림…양국 화해의 상징 됐다 [슬기로운 미술여행]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6. 1. 17.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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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미술여행 - 51] 덴마크 국립 미술관

코펜하겐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덴마크 국립 미술관 옆에는 담벼락이 붙어있는 미술관이 하나 더 있습니다. 외스트레 안레그(Østre Anlæg) 공원의 막냇동생 같은 미술관이죠. 이 ‘미술관 옆 미술관’은 코펜하겐에서 가장 작고 아담한 크기를 자랑합니다.

덴마크 국립 미술관과 담벼락이 붙어 있는 히르슈슈프룽 컬렉션. 쪽문을 찾아서 지름길로 두 미술관을 오갔다. 2층 지붕 아래 미카엘 앙케르의 [해변의 산책]이 창문에 장식되어 있다. ©김슬기
국립 미술관 옆에는 담벼락이 붙어있는 작은 미술관
P.S.크뢰이어 [히르슈슈프룽 가족] ©Hirschsprung Collection
1911년 개관한 히르슈슈프룽 컬렉션(Den Hirschsprungske Samling)은 담배제조업자 하인리히 히르슈슈프룽의 이름을 딴 미술관입니다. 일찌감치 미술품을 수집해 컬렉션을 설립한 그는 1908년 사망 전에 수집품을 유산으로 기증했고, 미술사학자 에밀 하노버의 감독으로 미술관이 조성되어 1911년 문을 열었습니다. 예술가의 집에서 가져온 가구로 장식되어 아늑하고 집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곳이죠.

이 곳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덴마크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카겐 화가들의 작품과 당시의 유명 예술가 및 부르주아 계층의 일상생활을 담은 그림을 소장하고 있어 ‘덴마크 황금시대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그런데 스카겐 화가는 뭘까요? 19세기 말 발트해와 북해가 만나는 덴마크 최북단 작은 어촌 마을 스카겐에 모여 활동한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예술가 그룹을 말합니다.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 미카엘 앙케르, 안나 앙케르, 로리츠 턱센 등이 대표인물입니다.

발트해와 북해가 만나는 스카겐의 풍광은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젊은 화가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이들은 아카데미의 규범에서 벗어나 야외에서 빛을 직접 관찰하며 그리는 ‘외광파’ 화가로 변신했죠. 실제로 만난 덴마크의 여름 바다는 한눈에도 보는 이를 홀리더군요. 비록 연중 짧은 시기만 만날 수 있는 온화한 날씨였지만, 스카겐에서 바다에 매료된 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컬렉션에는 스카겐 화파 외에도 C.W. 에커스베르크, 크리스텐 쾨브케, 빌헬름 함메르쇼이의 걸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장품은 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세기 덴마크의 풍경과 인물들을 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이 시대를 깊이 들여다보고픈 호기심을 자아내더군요.

스카겐 화가들을 매혹시킨 블루 아워
미카엘 앙케르 [해변의 산책], 1896 ©Hirschsprung Collection
안나 앙케르 [바느질하는 소녀] ©Hirschsprung Collection
덴마크는 바다의 나라입니다. 마치 식물의 잎맥이나, 나무의 뿌리처럼 뻗어 나온 구불구불한 해안선은 작은 국토 크기에도 길이가 무려 8000㎞에 달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해안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덴마크의 사연이 많은 해안선에서는 예술이 탄생했습니다.

이 미술관에서는 덴마크 미술을 소개하는 <해변에서의 하루 : 1830~1910>(2025년 6월 20일~2026년 1월 11일)이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20세기 바다를 바라보는 덴마크 예술가들의 시각을 조명하는 파노라마 전시였습니다. 이 그림들은 해변 생활의 주요 변화를 반영합니다. 해안에 떠밀려온 시신부터, 해변 소년들까지도요.

스카겐 화가들의 리더는 미카엘 앙케르(Michael Ancher)이었습니다. 너그러운 성격으로 유명했던 앙케르와 함께 작업을 하기 위해 화가들은 이 마을로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아내인 아나 앙케르도 어촌 마을의 이모저모를 다루기 어려운 도구였던 파스텔을 활용해 그림으로 남겼죠.

스카겐의 영웅적인 어부들과 그들의 바다에서의 극적인 경험을 사실주의 화풍을 그렸던 앙케르는 안나와 결혼 후 자연주의 양식을 결합하는 화풍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앙케르는 당시 덴마크 최고의 화가로 꼽히던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를 이곳으로 초청했죠. 크뢰위에르는 미술관 설립자인 폴린과 하인리히 히르슈스프룽과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그가 이 가족의 초상화를 그린 이유입니다.

크뢰위에르는 14세에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할 만큼 신동이었습니다. 기술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묘사력을 자랑했고, 당대 덴마크 사교계의 유명 인사이기도 했습니다. 반면 내면은 불안정했죠. 명성이 정점에 이른 1893년 정신적 붕괴의 전조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P.S.크뢰위에르 [스카겐 해변의 여름 저녁], 1893 ©Hirschsprung Collection
그가 앓았던 조울증은 작품 세계에도 투영됩니다. 밝고 화사한 낮의 풍경보다는, 멜랑콜리하고 신비로운 ‘푸른 시간(Blue Hour)’에 천착하게 된 이유입니다. 푸른 시간은 해가 진 직후나 해가 뜨기 직전, 하늘이 짙은 청색으로 물드는 짧은 시간을 의미합니다. 북위 57도에 위치한 스카겐의 여름밤은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죠.

1892년 크뢰위에르의 집을 찾은 손님들은 해변으로 내려가 산책을 하며 여름밤을 즐겼습니다. 이날 만난 푸른 시간의 바다를 그는 1909년 사망할 때까지 끈질기게 반복해 그립니다. 이런 이유에서 <스카겐 남쪽 해변의 여름 저녁>(1893)은 단순한 풍경화를 넘어 북유럽 인상주의의 정점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힙니다.

그림 속 두 여인은 공동체의 중심인물이었던 안나 앙케르와 그의 아내 마리 크뢰위에르(왼쪽)입니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를 연상시키는 두 여인의 뒷모습은 관람객을 그들의 산책에 동참시키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대화나 내면에는 접근할 수 없게 만드는 심리적 거리를 형성한다. 동시에 파도에 휩쓸려 지워질 발자국은 인생의 덧없음(Vanitas)을 상징하고 있죠.

그의 아내 마리는 ‘코펜하겐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불린 16세 연하의 여성 화가였죠. 남편의 재능과 명성에 짓눌려 그녀는 스스로 붓을 놓았습니다. 그녀는 “나는 우리의 대의를 믿고 싶지만, 때로는 너무나 극복하기 힘들다”며 자괴감을 토로했을 정도였죠. 작품 속에서 그녀는 화가가 아닌, 남편의 캔버스 위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피사체’로만 존재합니다.

그림 속 그녀의 시선은 먼 바다를 향하고 있는데요. 결혼 생활의 균열을 암시하듯 보입니다. 1902년, 그녀는 결국 스웨덴 작곡가 휴고 알벤(Hugo Alfvén)과 사랑에 빠져 크로이어를 떠나게 됩니다. 덴마크의 가장 성공한 화가의 삶은 이처럼 불행으로 가득했습니다.

반면 그녀와 팔짱을 낀 안나 앙케르는 여성 화가로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됩니다. 남편과 예술적으로 동등한 관계를 유지한 데다, 가사 노동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빛과 색채의 세계를 구축했죠. 따라서 이 그림은 두 여성 예술가의 엇갈린 운명을 한 화면에 담아낸 이중 초상화이기도 합니다.

P.S.크뢰위에르 [스카겐 해변의 여름 저녁 - 화가와 그의 아내], 1899 ©Hirschsprung Collection
1899년 그린 동일한 구도의 <스카겐 해변의 여름 저녁 - 화가와 그의 아내>는 안타깝게도 관계의 파국을 어렴풋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리의 시선은 먼 곳을 향해 있고, 크로이어는 그녀가 떠나가지 못하도록 팔을 붙잡고 있는 듯한 불안정한 모습으로 묘사됐죠. 1893년의 푸른 시간에는 낭만이 남아있었으나, 1899년의 푸른 시간은 고립과 단절의 시간으로 변질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의 외부에도 놀라운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스카겐 남쪽 해변의 여름 저녁>은 1895년, 뮌헨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독일의 전설적인 오페라 가수 릴리 레만(Lilli Lehmann)에게 5000 크로네에 판매됐습니다. 80년 가까이 대중을 만날 수 없어 꽁꽁 숨겨졌던 이 그림은 시끌벅적하게 돌아옵니다. 1978년, 레만의 후손들이 이 작품을 코펜하겐의 브룬 라스무센(Bruun Rasmussen) 경매에 내놓으면서 작품은 다시 세상에 나왔죠.

스카겐 뮤지엄은 이 ‘잃어버린 보물’을 되찾기 위해 기금을 모았으나, 경매가는 예상가를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결국 독일의 언론 재벌 악셀 슈프링거가 천문학적인 금액인 52만 크로네에 작품을 낙찰받았고 덴마크는 다시 국보급 작품을 독일에 넘겨주게 됩니다.

반전은 악셀 슈프링거 사후에 일어납니다. 1986년, 슈프링거의 미망인 프리데 슈프링거는 이 작품을 스카겐 박물관에 기증하겠다고 발표합니다. 기증의 이유는 단순한 자선이 아니었죠. 1943년 10월, 덴마크 국민들이 보여준 유대인 구출 작전에 대한 보답이 명분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덴마크 내 유대인을 검거하려 하자, 덴마크 저항군과 시민들은 어선들을 동원해 7200명 이상의 유대인을 중립국인 스웨덴으로 탈출시켰던 놀라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 인류애적 사건에 대한 보답으로, 덴마크의 국보급 그림을 되돌려준 것이었죠. 이 그림이 덴마크와 독일의 역사적 화해를 상징하는 작품이 된 사연입니다.

뉘하운에 숨어 있는 샬로텐보리 미술관
뉘하운에 숨어 있는 샬로텐보리 미술관. ©김슬기
뉘하운(Nyhavn)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가장 유명한 항구입니다. 형형색색의 건물들과 운하, 배가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합니다. 동화 작가 안데르센이 18년간 거주했던 곳으로 유명한 뉘하운은 과거에는 선원들의 거리였지만, 지금은 레스토랑과 카페, 바가 즐비한 명소가 되었습니다.

뉘하운의 한편에는 작은 미술관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샬로텐보리 미술관(Kunsthal Charlottenborg)의 역사는 18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뉘하운에 자리잡은 이 작은 궁전은 지금은 아담한 규모의 동시대 미술 기획전을 여는 현대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더군요. 샬로텐보리 미술관은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의 시각 예술 학교에 속해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초여름 이곳에서는 석사 학위(MFA) 졸업 전시가 열리고 있더군요. 왕립 덴마크 미술 아카데미 시각예술학교의 28명의 학생들을 통해 차세대 예술가들의 면면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름을 읽어나가기도 쉽지 않고 난해한 작품들이 많았지만 이렇게 힙한 거리 한가운데 미술관이 학생들의 전시를 펼쳐 보인다는 점은 부럽기도 했습니다.


런던에서 1년간 만나고 온 ‘유럽 미술관 도장 깨기’를 서울에서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일경제신문 김슬기 기자가 유럽의 미술관과 갤러리, 아트페어, 비엔날레 이야기를 매주 배달합니다. 뉴스레터 [슬기로운 미술여행]의 지난 이야기는 다음 주소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https://museumexpress.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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