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배기 아이와 소통해 본 적 있나요? '리틀 아멜리'
[박꽃의 영화뜰]
[미디어오늘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인간은 보통 3살 이전까지는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기억을 담당하는 뇌 기능이 채 발달하지 못해서다. 신비로운 건 기억에 남지 않은 그 3년이 장차 형성될 그 사람의 성격이나 관계 맺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단 거다. 엉엉 울면 어른들이 달려왔는지, 까르르 기뻐하면 어른들도 함께 즐거워했는지, 무언가를 표현하려 끙끙 애쓸 때 어른들이 성심껏 지켜보고 반응했는지에 따라 아이는 본능적으로 세상이 안전하고 믿을만한 곳인지 판단한다. 기억으로 남지 않아도 감각으로 강하게 각인된 순간이 평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태초의 가장 중요한 감각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는 그 3년의 시간을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묘사한 작품이 14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리틀 아멜리'다. 주인공 '아멜리'는 벨기에 사람이지만 외교관 아버지로 인해 일본의 한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게 된다. 세상에 나와보니 이미 오빠와 언니가 있고, 셋째이자 갓난아기인 자신을 호기심과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가족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멜리'는 그 모든 관심에도 무표정하다. 기분이 좋은 건지, 웃고 싶은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싶은 건지 전혀 알 수 없어 보인다.

'아멜리'가 그런 자신을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여기는 게 이 작품의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의 영아가 아니라, 세상 모든 이치를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가족들의 호들갑에 무감각할 뿐인 절대자라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그 발상이 좀 더 귀엽게 느껴진다. 이제 막 목을 가누고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을 정도가 되려면 영아는 적어도 생후 6개월은 돼야 한다. 시각이 발달하고, 곁에 있는 보호자를 인식하고, 그를 바라보며 의미 있는 미소를 지을 줄 아는 단계까지 이르는 것을 대개 '원활한 발달 과정'으로 본다. 그러나 '아멜리' 입장에서 어른들의 이런 발달 운운은 전부 웃긴 얘기일 뿐이다. '아멜리'는 웃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는 걸을 줄도 말할 줄도 알지만, 자신을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 취급하는 가족들의 태도가 못마땅해서 그 능력을 감쪽같이 숨기고 있을 뿐이다!
영원히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지 않을 것만 같던 아멜리가 세상에 번뜩, 반응하기 시작한 건 머나먼 벨기에에서 비행기를 타고 찾아온 할머니와 만나고 나서부터다. 챙이 큰 모자에 양장을 차려 입고 립스틱을 바른 멋쟁이 할머니는 두 살이 넘도록 걷지도 말하지도 않는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믿고 바라봐준다. 특히나 할머니가 가져온 벨기에산 화이트초콜릿의 맛은…! '아멜리'를 각성시킨 건 조건 없는 강력한 믿음을 보여준 든든한 어른이었고, 그 어른의 기분 좋은 상징처럼 남아버린 달콤한 초콜릿의 맛이다.

또 다른 어른은 '아멜리'를 살뜰히 돌봐준 일본인 유모 '니시오'다. 할머니가 혈연으로 묶인 애정이 전제된 존재라면 '니시오'는 그 어떤 연결점도 없는 타인이다. 작품 배경이 1960년대 일본인 걸 고려하면, 패망한 일본의 국민으로서 연합국 측에 섰던 벨기에 사람들은 가까이 대하기에는 껄끄러운 상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니시오'는 그 모든 조건을 접어두고 '아멜리'를 한 명의 가치 있는 존재로 대한다. '아멜리'의 이름을 발음할 때 들리는 '아메'가 일본어로 비(雨)를 의미한다며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글자 쓰는 법을 알려주고, 때로는 세상이 자기 발밑인 줄 아는 귀여운 착각에 빠진 '아멜리'에게 일본 전설에 등장하는 '무례한 인간을 잡아먹는 요괴' 이야기를 들려주며 훈육한다. 그것은 자연히 '아멜리' 자신이 누구인지 탐구하게 하고, 스스로가 세상과 어떻게 화합해야 하는지 알게 하는 과정이 된다.
작품이 말하는 건 아마 한 아이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태초 3년 동안, 주변 어른이 과연 얼마만큼 성의 있는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봐주고 있느냐일 것이다. 그 주체가 결코 생물학적 부모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건 새겨볼 만한 얘기다. '리틀 아멜리'에서 엄마, 아빠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다. '아멜리'를 세상에 나오게한 건 부모지만 그를 한 뼘 성장하게 하고 세상과 교감하도록 이끈 건 진솔한 애정을 품은 주변의 다른 어른들이었다. 언젠가는 소중한 사람과 이별해야 한다는 슬프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진실까지도, '아멜리'는 그렇게 체득한다.

돌이켜보면 객석에 앉은 관객 모두 '아멜리'와 같은 시간을 거쳐 지금의 어른이 되었다. 상냥하고 때로는 엄한 어른들 사이에서 성장한 우리가 이 세상의 또 다른 세 살배기들과 지금 이 순간 얼마만큼 교감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떠오르는 장면들이 거의 없다면 그건 좀 슬픈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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