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우리술 이야기)술은 최고 약이자 최고의 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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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
술이 약주가 되는지, 독주가 되는지는 습관이다.
술은 모든 약 중에서 으뜸일 수 있다.
술은 백 가지 약중에서 으뜸일 수 있지만 백 가지 독 중에서도 으뜸일수 있고(酒乃百毒之長) 모든 병 중에서도 으뜸일수 있다(酒乃百病之長)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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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
영화 '카사블랑카'(1942)에서 릭(험프리 보가트)이 일사(잉그리드 버그만)에게 건네는 유명한 대사다. 영어 원문은 "Here's to looking at you, kid". 당신의 눈동자라는 말은 없었지만 기가 막히게 멋진 번역을 한 바람에 더 유명해진 말이다.
카사블랑카의 주인공을 맡았던 험프리 보가트는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알아주던 술꾼이었던 모양이다. 프랭크 시나트라, 딘 마틴 등 당시의 헐리우드의 술꾼들과 모임을 만들었는데 모임의 창립목적이 '동이 틀 때까지 버번위스키를 마시는 것'이었다('이성주의 건강편지'에서 발췌). 하지만 '술에 장사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는 결국 57세에 식도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느닷없이 영화의 대사 이야기를 하는 건 아무리 술을 잘 마신다 하더라도 결국 탈이 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연말연시 이어진 술자리로 몸이 축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술이란 게 묘하다. 과음이 건강에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분위기에 빠지면 또 부어라마셔라 하게 되는 게 술이다. 술이란 삶에 윤활유가 되기도 하지만 자칫 정신을 놓으면 술에 노예가 되는 것 또한 시간문제일 뿐이다.
술을 마시는 습관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술에 관한 경고는 예전부터 있었다.
'술은 사람에게 단 한 가지도 유익하지 않다. 나도 젊을 때에는 술을 많이 마셨는데, 나중에 와서 아주 끊어 버렸다. 내가 죽거든 제사에 예(禮)만 쓰고 술은 쓰지 말라. 술이란 정신을 어지럽히는 것이 걱정될 뿐 아니라, 재정에도 손해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익(李瀷)이 1760년에 쓴 책인 성호사설에 실린 내용이다. 그 이전인 1614년 이수광이 지은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적 저서인 지봉유설에도 술의 폐해에 대한 글이 있다.
'소주는 원나라 때 시작되어 본래 약용목적으로 쓸 뿐 함부로 먹지 않았다. 그래서 세속에서는 작은 잔을 '소줏잔(燒酒盞)'이라고 하였다. 근세에는 사대부들이 호사스러워져서 마음대로 마신다. 여름이면 소주를 큰 잔으로 많이 마시고 잔뜩 취해야만 그만두니 별안간 참혹하게 죽는 경우가 많다'.
술의 독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도 언급했다. '평소 내섬시(內贍寺)에서 술을 빚는 방 위에 덮은 기와는 쉽게 상해서 몇 년마다 계속 바꾸어 주어야 했다. 까마귀와 참새가 감히 그 위에 모이지 못하니, 술기운이 연기처럼 올라가기 때문이다'.
일본사람의 눈으로 본 조선인의 음주풍속도 흥미롭다. 1915년 조선에 주둔한 제8사단의 군의부장(軍醫部長)인 사카모토 타케시게(坂本武戊)가 쓴 『조선인의 의식주 및 기타 위생』(朝鮮人の衣食住及其の他の衛生)'에서도 술을 많이 마시는 풍경이 묘사되어 있다.
'조선인은 일반적으로 술을 좋아하여 술을 마시는 일이 많고, 대체로 그 양도 역시 많은듯하다. 그래서 말싸움 끝에 부상자가 발생하는 일도 종종 듣게 된다. 또 손님에게 접대할 때는 술잔을 돌려가며 마시는 풍습이 있고, 대부분은 차갑게 마신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객주옥(居酒屋, 이자카야, 선술집)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수요자가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술이 약주가 되는지, 독주가 되는지는 습관이다. 퍼마시느냐, 즐기느냐의 차이다. 옛날 선조들도 이 사실을 간파했다. 술은 모든 약 중에서 으뜸일 수 있다. 주내백약지장(酒乃百藥之長)이란 말로 표현한다. 동의보감에도 술은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약재의 약효를 빨리 흡수해 확산시켜 준다고 했다.
반면 한 글자만 바꾸더라도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 술은 모든 독 중에서 최고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술은 백 가지 약중에서 으뜸일 수 있지만 백 가지 독 중에서도 으뜸일수 있고(酒乃百毒之長) 모든 병 중에서도 으뜸일수 있다(酒乃百病之長)는 말이다.
수백년을 이어온 경고문구다. 명심할 일이다.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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