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의 위기, 대형마트 시대의 종언? [권상집의 논전(論戰)]
고객 맞춤형 서비스로 돌아간 월마트에서 교훈 찾아야
(시사저널=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동네마다 구멍가게, 시장, 슈퍼마켓이 존재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 옛날 정서와 추억이 담긴 해당 장소들은 1989년 서울 송파구에 세븐일레븐이라는 편의점이 주목받으면서 일대 쇼크를 맞았다. 대기업이 유통업에 눈을 뜨며 주요 입지에 진입하기 시작했고 4년 후 1993년 이마트가 서울 도봉구 창동에 자리를 튼 후 편의점과 대형마트 전성시대가 문을 열었다. 편의점은 구멍가게를 대체했고 이마트는 시장과 슈퍼마켓을 대체했다.
편의점과 마트의 성공 요인은 간단하다. 깔끔하고 세련된 실내 디자인과 서비스 마인드로 중무장한 점원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은 모든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유통업에 진출한 기업에선 수많은 서비스 교육이 이뤄졌고, 내부에서는 고객 만족을 넘어 고객 감동으로 나가야 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대기업이 곳곳에 편의점과 마트를 설립하면서 유통업의 핵심은 부동산 장악으로 변질됐다.

부동산 노린 편의점·마트의 무한 확장
온라인이 없던 시절, 이마트의 경쟁력은 압도적이었다. 번화가에 자리를 잡고 전국에 대형 매장을 얼마나 출점하느냐에 따라 성과가 좌우되던 시절, 국내 최대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는 2015년 무려 5조원을 담보대출로 충당하며 7조2000억원을 투입해 홈플러스 지분 100%를 인수했다. 홈플러스 인수가의 69%를 대출로 충당한 이유는 간단하다. 대형마트의 핵심인 부동산을 장악하면 그 이상의 수익을 챙길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코로나19 때문에, 누군가는 쿠팡 때문에 마트가 내리막길을 걸었다고 말하지만 그 전부터 마트 쇠락의 전조 현상은 있었다. 고객 만족과 감동이 이내 사라지면서 부동산을 장악해야 한다는 논리로 유통기업들은 편의점을 무차별 확장했다. 그 결과 2013년 편의점 수는 2만5000개에 육박했다. 오프라인 영토를 놓고 확장만 거듭한 회사의 욕심에 다수의 가맹점주는 문을 닫았고 소비자는 대체재를 탐색하며 눈길을 돌렸다.
2014년 쿠팡의 로켓배송은 소비자들이 부동산에 치중한 편의점과 마트의 공격적 확장을 외면하면서 찾아낸 돌파구일 뿐이다. 2014년 쿠팡이 로켓처럼 소비자에게 빠르게 다가가 원하는 시간에 배송하겠다고 외쳤음에도 1년 후 MBK가 5조원의 대출을 동원, 홈플러스를 차지하고 오프라인 공략에 머무른 건 그만큼 소비자와 대형마트의 간극이 크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 결과 쿠팡은 지금도 고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홈플러스의 몰락은 대출이 아닌 본질에 대한 경영진의 둔감함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쿠팡이 등장한 이후 2015년 마켓컬리가 나타나며 소비자들은 더 이상 번화가의 매장을 번거롭게 방문해 상품을 고를 이유가 사라졌다. 첨단기술은 온라인에서도 상품과 서비스의 경험 기회를 고객에게 부여했고 하루 또는 3시간 만에 주문한 물건이 문 앞에 도착하자 부동산에 집착한 마트의 문 앞에는 소비자의 경고만 날아들었다.
필자가 기업의 경영진과 임직원을 만나면 반드시 던지는 질문이 있다. "귀하가 속한 기업의 경쟁사는 어디입니까." 경쟁 상대를 어디까지 고려하느냐에 따라 기업이 바라보는 변화와 본질에 대한 경계선을 가늠할 수 있어서다. 과거에는 CU, GS25, 세븐일레븐 간 경쟁이 있었고 대형마트 업계는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의 3파전으로 시장을 분석했다. 쿠팡, 마켓컬리, 올리브영은 안테나의 경계선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특정 산업이라는 경계선이 지금은 모든 영역에서 사라졌다. 이마트는 편의점, 쿠팡, 네이버, 올리브영, 마켓컬리와 경쟁해야 한다. 모두가 온라인을 기반으로 소비자에게 빨리 다가서기 위해 공습을 감행하고 있다. 테무는 지금도 물건 가격이 저렴하다며 소비를 과감히 질러 달라고 온라인에서 호소한다. 오프라인에서는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하며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한 팝업 스토어가 나타났다.
경험과 가치라는 본질로 돌아온 월마트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선이 무너졌고 모든 기업이 고객 만족과 감동을 위해 각종 전선을 무너뜨리고 이곳저곳에 침투하며 창조적 파괴에 집중하는 세상이다. 식품을 팔던 기업이 온라인에서 생활용품, 의류, 전자기기로 라인업을 늘려 나가자 부동산에 집착한 대형마트의 프레임은 올드한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홈플러스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고 이마트와 롯데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좌절의 시기를 보냈다.
급기야 MBK는 빌린 돈을 갚기 위해 홈플러스 매장을 팔기 시작했다. 신세계는 SSG닷컴을 통해 온라인 업체의 공습에 대응, 오프라인을 벗어나 온라인으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다들 유통 업계의 패러다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갔다고 얘기한 탓이다. 전문가들은 오프라인을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홈플러스 등 마트의 위기는 사실 온라인이 아닌 고객 만족과 감동에서 멀어지면서부터 시작됐다.
미국의 주요 경영대학원(MBA)에서는 여전히 최고의 사례(Best Practice) 중 하나로 월마트를 언급한다. 이커머스에서 아마존의 영향력은 독보적이지만 전체 유통 산업의 1인자 자리는 지금도 월마트의 몫이다. 월마트 역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아마존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 이커머스 기업을 인수하며 정면승부를 펼쳤지만 오프라인에 최적화된 월마트는 온라인에 최적화된 아마존의 상대가 되기엔 역부족이었다.
월마트는 부활을 위해 오프라인 매장의 경쟁력으로 돌아갔다. 대형마트, 즉 오프라인 매장의 본질은 이커머스와 다르다. 이커머스는 빠르고 편리하다는 장점을 제공할 수 있지만 고객에게 구체적인 경험과 가치까지 제공하지는 못한다. 고객의 가치와 경험 극대화 그리고 차 트렁크에 상품을 싣는 서비스 등 오프라인 맞춤형 서비스에 주력하며 월마트가 다시 본질에 집중하자 이를 지켜본 소비자들은 성과로 화답했다.
대형마트의 쇠락, 오프라인의 종말은 쿠팡 때문이 아니다. 본질에서 멀어질수록 고객은 본질을 열망한다. 시대가 변한다고 본질까지 모두 변하는 건 아니다. 변했다고 착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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