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30년… 거주지·생활권 일치하는 주민이 '지역 애착'도 더 높다[여론 속의 여론]

2026. 1. 1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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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 읍면동 또는 동일 시군구 내
응답자 70% 생활권·거주지 일치
시도·시군구 벗어난 경우는 26%
서울시내 어린이공원 풍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우리나라의 민선 지방자치는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2025년,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30년을 맞은 지금까지 지방정부의 권한과 역할은 제도적으로 꾸준히 확대되어 가고 있고, 지역의 자율성과 특성을 토대로 주민의 일상을 구성하는 제도로 정착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는 지방자치가 주민들의 일상과 인식 속에서 어떻게 체감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관점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지방자치는 제도와 행정의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 환경과 경험을 통해 실질적으로 작동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 아래 전북대학교 공공갈등과 지역혁신연구소(소장 행정학과 하동현 교수)와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팀은 2023년 이후 지방자치에 대한 국민 인식을 지속적으로 조사해 오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주민들이 일상을 영위하는 ‘생활권’에 주목하여, 생활권의 특성이 지방자치와 지역사회에 대한 인식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본 조사는 지난해 11월 21일부터 24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행정구역을 넘는 일상, 달라진 생활권의 모습

그동안 우리나라는 자치입법권 등 자치권의 확대, 재원 이양, 주민참여 활성화, 지방의회의 역할 강화 등 자치 구현을 위한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고자 노력해 왔다. 이러한 분권 제도의 확대와 함께 주민들의 삶의 방식 또한 빠르게 변화해 온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주민들의 일상은 더 이상 기존의 행정구역 내에서 완결되지 않는다. 메가시티, 5극 3특 등 초광역권의 형성이 국가적 의제로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거주지와 직장, 여가 공간이 서로 다른 지역으로 분산되었고, 온라인을 통한 소통과 활동이 일상화되면서 주민이 체감하는 ‘지역’의 범위 역시 과거와는 뚜렷이 달라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주목하여 본 조사에서는 주민들의 주된 생활권이 어디에서 형성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주된 생활권은 상당 부분 거주지와 인접한 행정경계 내에 형성되어 있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거주하는 읍면동 내에서 생활하는 비율이 39%, 동일 시군구 내 타 지역에서 활동하는 비율이 31%로, 전체 응답자의 70%가 주거지와 생활권이 일치하는 양상을 보인다. 한편, 행정경계를 벗어나 일상을 영위하는 응답자도 적지 않다. 거주 시군구 밖이지만 동일 시도 내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15%, 거주 시도를 넘어 다른 시도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11%로, 전체의 약 4분의 1은 생활권이 행정경계와 일치하지 않는다. 아울러, 온라인·비대면 활동 및 기타 응답은 4%로 규모는 작으나 변화하는 생활양식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본 분석에서는 이를 토대로 생활권이 거주지와 인접한 경우를 ‘행정경계 일치’, 거주지를 벗어난 경우를 ‘행정경계 불일치’ 그룹으로 재구조화하여 인식 차이를 비교하였다.

시각물_생활권 행정경계 일치여부 그래픽=이지원 기자
'소속감' 국가 → 시도 → 시군구
행정계층 낮아질수록 줄어들고
생활권 일치 집단이 상대적 높아

실제로 주요 분석 항목에서 생활권과 행정경계의 일치 여부는 단순한 공간적 차이를 넘어, 지역사회에 대한 정서적 인식 차이로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지역 소속감은 국가, 광역 등 상위 계층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고 행정 계층이 낮아질수록 대체로 감소되는 경향을 보인다. 즉 국가 단위에서 가장 높은 소속감을 보이면서 기초가 광역에 비해, 동네(읍면동)가 기초에 비해, 소속감을 느낀다는 응답 비율은 낮다. 행정계층의 위계와 심리적 강도에 차이가 나타난다.

다만, 동일한 행정 단위 내에서는 생활권이 행정경계와 일치하는 응답자들이 불일치한 응답자들에 비해 일관되게 더 높은 소속감을 보인다. 국가 수준에서는 두 집단 간 차이가 크지 않으나 광역, 기초자치단체 및 동네 수준에서는 생활권 일치 집단의 소속감이 상대적으로 높고, 이러한 차이는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하게 확인된다.

시각물_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소속감은 그래픽=이지원 기자

이러한 경향은 지역 애착과 정주 의향에서도 유사하게 확인된다. 두 항목 모두 행정경계가 일치하는 집단이 상대적으로 높은 값을 보이며, 두 집단 간 차이는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하다. 이는 주된 생활권이 분산된 경우, 비록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라 하더라도 해당 공간을 장기적인 삶의 터전보다는 일시적으로 머무는 거점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시각물_거주지에 대한 애착 그래픽=이지원 기자

반면, 행정서비스 평가나 제도 운영에 대한 인식에서는 차이가 크지 않거나 일관되지 않은 양상이다. 광역·기초지자체 행정서비스 만족도(긍정 66~68%), 주민대표의 의견 반영 정도(긍정 34~36%), 행정 대응에 대한 평가(각 27%)는 두 집단 간 유의미한 차이가 거의 없다. 이는 생활권이 행정경계와 일치하지 않더라도 행정서비스 자체에 대한 평가는 비교적 균질하게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생활권의 일치 여부는 행정의 성과 평가보다는 지역에 대한 감정적 유대와 정체성 형성에 더 밀접하게 작용하고 있다. 주민들이 체감하는 지역성은 행정의 효율성이나 제도 설계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렵고, 일상을 보내는 공간 경험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역 이슈 소통 · 대인 신뢰 수준도
행정경계 일치 집단이 높게 나와

생활권이 행정경계와 일치하지 않는 집단에서는 지역 공동체에 대한 인식 역시 전반적으로 낮은 경향을 보인다. 지역사회의 뉴스를 접하거나 주변 사람들과 지역 이슈를 이야기하는 정도, 일반적인 대인 신뢰 수준에서는 두 집단 간 평균 차이가 크지 않으나, 전반적으로 행정경계 불일치 집단이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관찰된다. 특히 정치적 견해가 다른 주민들에 대해 느끼는 정서적 거리에서는 행정경계 일치 집단의 인식이 더 긍정적이며, 이 차이는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하다.

시각물_사람들과 지역사회 이슈 소통 그래픽=이지원 기자
시각물_일반화된 신뢰 그래픽=이지원 기자
시각물_정치적 관용도 그래픽=이지원 기자

이러한 결과는 지역 공동체에 대한 인식 차이가 단순히 제도나 참여에서 비롯된다기보다, 일상에서 지역과 맺는 접점과 생활 경험 차이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행정경계를 넘어 출퇴근하고, 소비와 여가를 다른 지역에서 해결하는 생활이 반복될수록, 주민으로서 해당 지역과 관계를 형성할 기회 자체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는 지방자치의 성과를 제도적 장치나 형식적 참여 여부만으로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주민이 ‘어디에 거주하는가’보다 ‘어디에서 일상을 살아가는가’가 지역사회 인식과 공동체 감각 형성에 점점 더 중요한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이 '어디에 거주하는가' 보다
'어디에서 일상을 살아가는가'가
공동체 인식에 점점 더 중요해져

생활권이 행정경계와 일치하는 주민일수록 지역에 대한 소속감과 애착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는 점은, 지역사회에서 심리적·정서적 연결을 보완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특히 아직은 소수이나, 향후 확대 가능성이 있는 온라인·비대면 활동 중심의 응답자 집단은 중요한 문제의식을 던진다. 재택근무, 원격 소비, 온라인 커뮤니티가 일상화되는 흐름 속에서, 지역성과 공동체 의식은 물리적 공간만으로 설명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지방자치가 ‘어디에 사는가’를 넘어 ‘어떻게 연결되는가’의 문제로 확장될 필요성을 보여준다.

최근 새로운 인구개념으로 ‘생활인구’가 등장하였다. 이는 단순히 주민등록상의 정주 인구에 한정하지 않고, 지역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내며 소비하고 체류하는 등 지역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는 인구까지 포함하는 범주이다. 이러한 생활인구 논의가 단순한 이동 인구 파악을 넘어, 지역과 맺는 관계의 방식까지 포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행정경계와 생활권의 괴리를 줄이기 어렵다면, 그 틈을 메우는 것은 결국 지역에 대한 경험, 참여, 서사의 설계일 것이다. 앞으로의 지방자치는 행정경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넘어, 분절된 일상 속에서도 주민들이 지역과 관계를 맺고 의미를 축적할 수 있도록 하는 ‘관계의 기술’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하동현 전북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부설 공공갈등과 지역혁신연구소 소장 황지은 한국리서치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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