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M]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 "넷제로는 재앙적 이데올로기" | 기후인사이트 16

김승환 2026. 1. 1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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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2015년 12월 12일 파리에서 열린 COP21이라는 당사국 총회가 끝날 무렵, 기후에 대한 협약이 합의되던 시점에 일어났다. 총회와 관련해 진짜 충격적인 것은 대표단이 결정한 내용이 아니다. 중대한 사실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협약을 완성하고 손뼉을 치고 있던 12월의 그날, 서명국들은 만약 각국의 근대화 계획을 계속 진행해 간다면 그들이 희망하는 발전을 모두 담보할 행성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점을 경고처럼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계획을 위해선 여러 개의 행성이 필요했다. 하지만 행성은 오직 하나뿐이다."

몇 개의 지구가 필요한가? [자료: Global Footprint Network]

이것은 신기후체제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인류학자, 철학자인 브뤼노 라투르(1947~2022)가 2016년 11월 트럼프가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계기로 쓴 그의 저서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 (2017)>에서 가설과 픽션 형식으로 주장한 충격적 내용의 일부입니다.

라투르는 파리협약보다 훨씬 이전인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 어느 시점, 지구의 엘리트들은 이미 이 불가능성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조용히, 그러나 체계적으로 자신들만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실행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라투르가 말하는 '엘리트'는 누구일까요? 책에서 그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명시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여러 단서를 통해 추정할 수는 있습니다. 이들은 막대한 부와 정치적 영향력으로 기후변화의 파국적 결과를 피할 수 있는 부를 가지고 안전한 곳으로 도피할 수단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라투르는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의도적으로 진실을 숨기고 공동의 미래를 배신하는 집단을 '진실을 흐리는'(obscurantist) 엘리트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 엘리트 집단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막대한 재산과 안녕을 지키는 데 엄청난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들 모두가 (지구의 귀환에서 오는) 위협적인 경고를 들었다고 생각해 보자. 이어서 다음과 같이 추정해야 한다. 이 엘리트들은 경고가 맞는다는 것을 완벽히 이해했지만, 수년간 점점 더 반론의 여지가 없이 공고해진 증거를 가지고도, 그들 스스로 지구가 등을 돌릴 때의 대가를 아주 비싸게 치러야 할 거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대가는 자신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치를 것이라는 의미). 그들은 경고를 인지할 만큼은 깨어 있었으나, 그 결과를 대중과 공유할 만큼 깨어있던 것은 아니었다고."

여기서 '지구의 귀환에서 오는 위협적인 경고'는 주로 기후변화로 요약되는 위험을 가리키며, 이는 지구가 인간의 과도한 개발과 소비에 반응해 나타내는 과학적·환경적 신호들(예: 기상이변, 생태계 붕괴, 자원 고갈 등)을 뜻합니다.

라투르는 1990년대 이후 엘리트들이 이 경고를 가장 먼저 인지했으나, 이를 대중과 공유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 보호하려는 결정을 내렸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지구가 보내는 경고에서 두 가지 결론을 도출했으며, 그런 결론이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까지 이어졌다고 가정해 보자고 말합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두 가지 결론은) 첫째, 이 격변에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는 말은 맞지만, 파괴된 것에 대해서는 분명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둘째, 신기후체제에 대해 더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는 진실과 관련해, 우리는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할 것이다."

라투르는 이 두 개의 결론을 통해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세 가지 현상이 설명된다고 말합니다.

"만약 가정이 맞는다면, 이것들은 모두 단일한 현상의 부분들이다. 엘리트들은 모든 사람을 위한 미래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확신해서 가능한 한 빨리 연대의 부담을 모두 없애기로 했다. 탈규제가 여기서 나온다. 그들은 격변에서 생존할 (적은 수의) 사람들을 위해 으리으리한 요새가 건설되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따라서 불평등이 폭증했다. 그리고 함께 사는 세상에서 빠져나오려는 터무니없는 이기심을 감출 목적으로, 그들은 황급한 탈출의 기원이 되는 위협 그 자체를 거부해야만 했다. 이로 인해 기후변화가 부정됐다."

라투르는 이런 상황을 타이타닉 호가 침몰할 당시 상황에 빗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시 일등칸에 탄 사람들은 난파가 확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한 구명보트를 마련하고 악단에 자장가를 계속 연주하도록 하면서, 선박 안의 다른 계층 사람들이 위험을 알아차리기 전에 어둠을 틈타 빠져나왔다! (엘리트들은) 자신이 편안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꿈에서라도 지구를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해했다."

왜 엘리트들은 기후변화를 적극적으로 부정할까요? 라투르의 답변은 명확합니다. 기후변화를 인정하는 순간, 공동의 지구라는 물질적 현실을 인정해야 하고, 그러면 모두가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윤리적 압력에 직면하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를 부정하면 책임을 회피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없다면 해결할 필요도 없다."

브뤼노 라투르

라투르는 기후변화 부정과 불평등 심화, 고립주의가 우연히 동시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이들은 하나의 일관된 전략, 즉 '외계적(Out-of-This-World)' 태도의 세 가지 얼굴이라고 말합니다. 라투르가 말한 외계적 태도란 지구의 물질적 한계와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의존성, 공동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지난해 12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국가안보전략(NSS)을 발표했습니다. NSS는 미국의 외교·국방·경제 등 국가 안보의 큰 방향을 제시하는 최상위 정책 문서로 세계 질서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NSS는 기후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유럽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미국을 위협하며 적대국에 보조금을 주는 격인 재앙적인 '기후변화' 및 '넷제로(Net Zero)' 이데올로기를 거부합니다."

이전 바이든 행정부(2022 NSS)에서는 기후변화를 "공유된 위협"으로 규정하며,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국제 협력과 재생에너지 전환을 안보 우선순위로 삼았지만 2025 NSS는 기후변화와 넷제로(Net Zero)를 '재앙적인 이데올로기'로 규정하며, 과학적 현실이 아닌 정치·경제적 부담으로 재프레임했습니다. 이는 기후 문제를 안보 위협의 원인이 아닌, 오히려 기후 정책 자체를 미국의 경제·안보를 약화시키는 '위협'으로 보는 관점의 반전입니다.

미국 국가안보전략(NSS 2025)

라투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첫 당선 이후 미국의 선택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미국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기후변화의 정도와 책임의 방대함을 인정하고 마침내 현실을 직시하여 세계를 심연에서 구해 내거나, 아니면 자유세계를 부정의 늪에 더 깊게 빠뜨리는 것이다. 트럼프 뒤에 숨은 사람들은 미국을 몽상 속에서 몇 년 더 헤매도록 하여 땅에 내려오는 것을 막으면서, 다른 나라들은 심연 속에 빠뜨리기로 결정했다."

2026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세계는 달라진 미국의 모습에 요동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석학이 세운 단지 하나의 가설일 뿐일까요? 라투르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후변화와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문제를 전면에, 핵심적으로 내세우지 않는다면 지난 50년간의 정치에 관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가설이다" "나는 정치학의 권위자가 아니기에, 이 책의 역할은 독자에게 내 가설이 틀렸음을 증명하고 더 나은 것을 찾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데 그칠 것이다."

브뤼노 라투르

라투르는 자신의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사람들이 증명해 주기를 원한다고 밝혔습니다. 음모론에서나 볼 법한 이런 가설을 세계적인 석학이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정도로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세계의 모습은 낯설고 섬뜩합니다. 라투르는 지정학적 이슈의 핵심에 기후변화가 있다고 말합니다. 기후변화는 지정학을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요?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


《뉴스인사이트팀 김승환 논설위원》

김승환 기자(cocoh@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794285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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