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정위 감시망 피하려 이랜드건설 지분 ‘핑퐁 거래’ 했나

이석 기자 2026. 1. 17.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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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0년간 이랜드건설 내부거래율 66%…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박성수 회장 최대주주인 이랜드월드 대신 자회사에 지분 넘기면서 리스크 회피 의혹

(시사저널=이석 기자)

이랜드그룹은 2022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폭탄'을 맞았다. 지주회사인 이랜드월드의 자금난 해소를 위해 이랜드리테일을 편법적으로 끌어들인 게 문제가 됐다. 요컨대 이랜드리테일은 2017년 이랜드월드 소유 부동산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가격의 84%에 이르는 560억원을 계약금으로 지급했다. 해당 부동산의 근저당 설정액(260억원)까지 더하면 토지 매매대금(670억원)을 상회한다. 그럼에도 이랜드리테일은 이사회 의결조차 거치지 않았다. 

ⓒ시사저널 최준필

변칙적 방법으로 계열사 지원했다 '덜미'

공정위 조사에서 그 이유가 밝혀졌다. 이랜드월드는 당시 500억원 이상의 채무를 긴급히 상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신용등급 하락으로 신규 차입은 불가능했다. 이랜드월드는 이랜드리테일과 보유 부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가 6개월 후 취소하는 변칙적인 방법을 썼다. 이랜드리테일이 잔금을 지급하지 않은 게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계약 해지에 따른 위약금도 청구하지 않았다. 덕분에 이랜드월드는 이자 한 푼 내지 않고 6개월간 560억원을 융통할 수 있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었다. 

이랜드월드는 2014년 토종 의류 브랜드인 스파오(SPAO)도 이랜드리테일로부터 넘겨받았다. 양도 대금은 511억원. 2024년 말 기준으로 스파오의 매출이 6000억원대이고, 이랜드월드 패션부문 매출의 17%를 차지한 점을 감안할 때 헐값 매각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이랜드리테일은 양도 대금을 3년 분할로 쪼개면서 지연 이자도 받지 않았다. 심지어 이랜드리테일은 양도 대금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산부터 넘겼다. 누가 봐도 계열사 밀어주기였다. 

결국 공정위는 변칙적인 방법으로 모회사에 자금을 지원한 이랜드월드와 이랜드리테일에 시정명령과 함께 각각 20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 측은 "계약 자체가 자금난을 겪고 있는 이랜드월드를 지원할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상한 거래가 적지 않았다"면서 "1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받은 이랜드월드는 겨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공정위 제재 직후 이랜드월드는 또 한 번의 수상한 거래를 단행했다. 이랜드월드가 보유한 이랜드건설 지분 32.8%를 이랜드리테일에 양도한 것이다. 이랜드건설의 최대주주는 이랜드월드(49.8%)에서 이랜드리테일(50.2%)로 바뀌었다. 박성수 회장→이랜드월드→이랜드리테일·이랜드건설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박성수 회장→이랜드월드→이랜드리테일→이랜드건설로 바뀐 것이다.

이랜드그룹 측은 그 이유를 "전략적 판단이었다"고 밝혔다. 그룹 관계자는 "당시 이랜드리테일이 중간 지주사 역할을 하도록 이랜드킴스클럽과 이랜드글로벌 등을 법인으로 분리했다"면서 "이랜드건설 역시 이랜드리테일이 보유한 부동산을 직접 개발하기 위해 건설 계열사를 자회사로 편입했다. 다른 유통회사들도 이런 전략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룹 안팎에서는 다른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규제 당국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쓴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현행법상 총수 일가가 20% 이상 지분을 보유한 회사뿐 아니라, 그 회사가 지분 50%를 초과 보유한 손자회사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2022년 말 기준으로 이랜드건설의 매출은 1956억원이었다. 이 중 1430억원(73%)이 이랜드월드와 이랜드리테일, 이랜드파크 등 계열사에서 나왔다. 이랜드건설이 이랜드월드의 자회사일 경우 규제 대상이 된다. 그해 4월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폭탄'을 맞은 이랜드그룹 입장에서는 이랜드건설이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이랜드그룹 관계자는 "최근 이랜드리테일이 보유한 지분 일부를 이랜드파크에 매각했다. 이랜드리테일과 마찬가지로 이랜드파크의 럭셔리 브랜드인 그랜드켄싱턴의 개발 시너지를 위함"이라면서 "현재는 이랜드건설 최대주주가 이랜드월드로 다시 바뀐 상태"라고 말했다.

내부거래율도 많이 낮아졌다. 앞서의 관계자는 "이랜드건설은 최근 HUG의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사업을 따내면서 관계사 공사가 1건으로 줄었다"면서 "향후에도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사업을 이어가면서 내부거래를 줄여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2024년 말 기준으로 이랜드건설의 계열사 의존도는 30%(매출 2320억원-일감 690억원)를 기록했다. 사실상 100%를 기록한 전년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하지만 최근 이랜드리테일이 이랜드파크에 매각한 이랜드건설 지분은 0.33%에 불과하다. "이랜드건설과 시너지를 내기 위함"이라는 그룹 측 해명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오히려 이번 지분 거래로 이랜드월드는 이랜드건설 최대주주(49.84%)에 오르면서도 일감 규제 지분율인 50%를 가까스로 피했다. 이에 따른 계열사 부당이익 제공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부거래도 마찬가지다. 이랜드건설은 2000년대 초 이랜드리테일 계열인 홈에버(옛 한국까르푸)와 뉴코아, 2001 아울렛의 매장 신축공사와 리모델링 공사를 독점하면서 고속 성장했다. 불과 3년 만에 매출이 3배 가까이 증가했다. 2007년에는 순이익이 급격히 커지면서 234억원을 현금으로 이랜드월드에 배당하기도 했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인 박성수 회장에게 이익이 넘어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황원철 당시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장이 2022년 4월 이랜드그룹에 대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결정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랜드그룹 "건설 지분 양도는 전략적 판단"

2008년 불거진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랜드건설은 위기에 빠졌다. 주택 경기가 급격히 가라앉으면서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건설사들이 줄줄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휩싸일 때였다. 이랜드건설 역시 '유탄'을 피해 가지 못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등이 급감했다. 잠시지만 2008년과 2009년에 내부거래율이 20% 아래로 떨어졌다.

하지만 2010년 들어서면서 다시 내부거래가 늘어났다. 시사저널이 이랜드건설이 매출을 공개한 2004년부터 최근까지 감사보고서를 전수조사한 결과, 평균 내부거래율은 65.9%를 기록했다. 잠깐 내부거래가 줄어들었다가 다시 증가하는 행태가 반복됐다. 회사 운영에 필요한 돈도 이랜드리테일과 이랜드공덕 등 계열사에서 빌렸다. 계열사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살아남기 힘든 매출 구조를 띠고 있는 것이다. "외부 일감을 통해 내부거래를 줄여 나갈 계획"이라는 그룹 측 설명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 ⓒ시사저널 사진 자료

■의욕적으로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했지만 실적은 '글쎄'

박성수 회장 '성공신화'에도 찬물 끼얹어

이랜드그룹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되는 부분이 있다. 박성수 회장은 1980년대 이화여대 앞 조그만 보세 옷가게에서 시작해 패션과 유통, 식품, 건설, 레저 등을 아우르는 대기업으로 이랜드그룹을 키웠다. 지난해 5월 공정위 발표 기준으로 이랜드그룹의 자산은 11조6260억원, 매출은 4조6790억원을 기록했다. 재계 순위는 46위다.

박 회장 특유의 공격적인 M&A(기업 인수합병)가 그 배경으로 거론된다. 중저가 패션 브랜드로 성공을 맛본 박 회장은 2000년대 들어 유통업에 진출한다. 법정관리 중이던 뉴코아를 시작으로 해태유통, 한국까르푸, 대구 동아백화점, 서울 그랜드백화점, 엘칸토, 케이스위스, 삼립개발 등을 잇따라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이랜드그룹의 덩치가 급격히 불어났지만 후유증도 적지 않았다. 급등한 부채율이 대표적이다. 최근 몇 년간 그룹 지주회사인 이랜드월드의 부채율은 200% 아래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재무 상황이 불안했던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400%에 육박했다. 신용등급도 현재는 BBB를 유지하고 있지만, 한때 투자부적격 바로 윗단계인 BBB-까지 강등당하기도 했다.

2022년 이랜드그룹이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철퇴를 맞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2010년 이후 진행된 차입금 중심의 무리한 M&A로 이랜드월드의 유동성이 악화됐다"면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계열사인 이랜드리테일이 변칙적인 자금 및 인력 지원을 하다 공정위에 덜미를 잡힌 것"이라고 말했다.

이랜드그룹은 현재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창업자인 박 회장과 여동생 박성경 전 부회장은 오래전 직을 내려놓고 경영 2선으로 후퇴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리틀 박성수'로 불리는 최종양 부회장을 비롯한 전문경영인들이 이랜드월드와 이랜드리테일, 이랜드파크 등 주력 계열사를 이끌고 있다.

주목되는 사실은 비상근 임원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박 회장의 연봉이 전문경영인보다 높다는 점이다. 이랜드월드가 공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박 회장은 현재 그룹 회장 직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담당 업무는 인재육성교육으로 한정된다. 5억원 이상 보수를 받는 임원의 이름과 금액을 사업보고서에 명시해야 함을 감안할 때 2021년까지 연봉도 5억원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듬해 박 회장의 연봉이 7억9800만원으로 급증했다. 지주회사인 이랜드월드 대표이사로 박 회장을 대신해 그룹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최종양 부회장(6억4700만원)보다 20% 이상 높았다.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액수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박 회장은 그룹에서 유일하게 5억원 이상의 급여를 받았다. 이에 따른 논란이 예상된다.

전문경영인 체제 이후 이랜드그룹의 매출이 정체된 점도 눈에 띈다.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이랜드그룹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조6790억원과 217억원을 기록했다. 5년 전과 비교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6.1%, 192.3% 증가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경영이 개선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고점과 비교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룹 매출은 2017년 5조1690억원을 정점으로 감소 추세다. 한때 400억~500억원을 기록했던 영업이익도 역시 고점 대비 반 토막이 났다. 특히 당기순이익과 경상이익은 2024년 적자로 전환됐다. 2010년 중반부터 체질 개선을 위해 추진해온 전문경영인 체제가 아직까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랜드 성공신화를 이끌었던 박 회장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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