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들 살 에는 추위에도 '유니폼 출근', 숨겨진 이유 있었다

송주용 2026. 1. 17.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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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갈아입을 곳 없는 항공사 승무원들]
대한항공 등 항공사들, 환복 시설 없어
아시아나, 합병하면서 시설 사라져
겨울에도 경량 패딩, 하이힐 차림 출근
노동자 컨디션이 승객 안전으로 직결
"당연한 권리인 환복 시설, 당장 설치해야"

매년 7,000만 명 이상의 승객이 이용하는 인천국제공항. 이곳을 가기 위해 공항철도를 타면 유니폼을 갖춰 입은 승무원을 쉽게 볼 수 있다. 극한 한파에도 얇은 복장에, 발등이 훤히 드러나는 신발을 신고 출근한다. 화려해 보이는 광경에는 옷 갈아입을 공간조차 보장받지 못한 노동자의 슬픈 현실이 감춰져 있다.


"두꺼운 옷, 부츠 신으면 짐에 못 실어" 한겨울 '유니폼 출근'

14일 항공사 승무원들이 유니폼 위에 입고 온 패딩을 짐에 싣는 모습. 영하권을 넘나드는 강추위가 이어지고 있지만 짐에 넣기 쉬운 경량 패딩을 입고 출근했다. 권수정 아시아나항공 노조위원장 제공

16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승무원들이 춥고, 불편해 보이는 유니폼을 입고 출근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회사가 탈의실 등을 마련하지 않아서다. 저비용항공사(LCC)뿐 아니라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다고 홍보하는 대한항공도 승무원이 집에서 옷을 갖춰 입고 오거나 공항 화장실에서 갈아입는다. 두툼한 외투를 보관할 공간이 없는 탓에 겨울 패딩과 방한 부츠 차림으로 오면 이를 짐 가방에 넣어 항공기에 실어야 하는데, 가방 무게가 제한돼 어렵다. 승무원이 추운 겨울에도 경량 패딩에, 하이힐을 신고 불편하게 걷는 이유다.

그나마 아시아나항공은 개인 라커룸과 옷걸이 등을 제공해왔지만 대한항공과의 통합 과정에서 제공이 중단됐다. 권수정 아시아나항공 노조위원장은 본보 통화에서 "인천공항 1터미널을 이용하던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과 통합하며 2터미널로 이전했는데 이 과정에서 환복시설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회사가 그만큼 승무원의 노동 환경에 관심이 덜하다는 지적이다.

권 위원장은 "간호사는 간호복을 입고 출근하지 않고, 소방관은 방화복을 입고 출근하지 않는다"며 "병원, 소방서, 공장 등 모든 현장에서는 작업복으로 갈아입을 공간과 입고 온 옷을 보관할 사물함을 제공하는 게 사업주의 기본 의무"라고 강조했다.

사측은 승무원의 어려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다. 본보가 환복 시설이 없는 이유를 묻자 대한항공 측은 "원래부터 없었다"고 답했다. 아시아나 측은 "(2터미널의) 공간이 제한돼 필수 시설부터 우선 배정했다"며 "승무원에게 출근 때 유니폼 착용을 강요한 바 없고, 필요하다면 보관 가방을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노조 측은 "환복 시설이 없기에 사실상 강제적으로 승무원복을 입고 출근하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승무원이 출근 때부터 제 컨디션을 잃으면 업무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있다. 이는 승객 안전에도 영향을 미친다. 권 위원장은 "추위에 떨며 출근한 탓에 이미 지쳐버린 승무원이, 비상 상황에서 승객의 안전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겠느냐"며 "조그만 환복시설 설치는 단순한 복지 문제가 아니라 산업안전과 직결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제도 보안이 필요하다고 봤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환복시설 의무 설치는 '위험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에게만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윤지영 직장갑질119 대표는 "회사와 업무를 위해 유니폼 착용이 의무인 노동자를 위해서도 환복시설이 설치돼야 한다"며 "법과 제도에 허점이 있다면 이를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식이 된 '바지 투쟁'…환복 시설 당장 설치하라

권수정 아시아나항공 노조위원장이 바지 유니폼을 입고 있다. 권 위원장은 2014년 치마 유니폼 대신 바지를 입는 '바지 투쟁'을 벌였다. 권수정 위원장 페이스북 갈무리

승무원들의 복장을 둘러싼 '투쟁'의 역사는 길다. 여성 승무원이 바지를 입게 된 것도 2014년 문제 제기를 한 결과였다. 권 위원장은 그해 1월 아시아나항공 여성 승무원 중 처음으로 치마 대신 바지를 입고 비행기에 올랐다. '왜 바지 투쟁을 벌였느냐'는 질문에 그는 "일하기 편하고 안전한 옷이 먼저 아닌가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답했다. 승무원이 승객 안전을 위한 비상 탈출, 보안 활동 등을 하기 위해선 누군가에게 '볼거리'로 여겨졌던 기존 치마 유니폼 대신 활동하기 편한 바지를 입는 게 당연했다는 것이다.

승무원들은 국가인권위원회 제소까지 이어진 3년의 싸움 끝에 바지 유니폼을 입을 수 있게 됐다. 권 위원장은 "또다시 노동자가 짐짝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회사는 즉각 승무원이 옷을 갈아입고 개인 물품을 보관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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