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노인에겐 1.5가구가 '생명줄'

허정연 2026. 1. 17.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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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연대’ 1.5가구 시대
혼자 사는 노인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위기 신호를 알아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다.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일상생활 붕괴의 징후가 주변의 누군가에 의해 제때 포착되지 않으면 자칫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고령층에게 ‘고립’은 심리적 외로움을 넘어 언제든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어느 세대보다 절박하게 여겨지기 마련이다.

특히 최근 고령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연결을 담보하는 1.5가구의 존재는 ‘생존’의 문제와도 직결된다는 평가다. 0.5가구엔 혈연이나 법적 가족은 물론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해 공적 돌봄 서비스로 이어줄 수 있는 이웃·지인 등 사회 관계망도 포함될 수 있다. 1.5가구가 2030세대에겐 ‘관계’의 확장을 의미한다면 6070세대에겐 고독사를 막아주는 마지막 ‘안전선’에 가깝다는 얘기다.

손금숙(78)씨는 배우자와 사별한 뒤 수년째 혼자 살고 있다. 자녀들은 모두 다른 도시에 거주한다. 장을 보고 식사를 챙길 만큼 일상은 자립적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늘 불안감으로 남는다. 손씨는 “혼자 있는 건 익숙하지만 가벼운 몸살만 와도 덜컥 겁부터 난다”며 “그때마다 멀리 사는 자식들에게 와달라고 할 수도 없고…”라고 말끝을 흐렸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살아가는 노인들에게 이런 불안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다.

이는 일부 노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1인 가구 비중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70세 이상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1인 가구 비중은 70세 이상이 19.8%로 가장 높았고 29세 이하(17.8%)와 60대(17.6%)가 뒤를 이었다. 특히 여성의 경우 70세 이상(29.0%)과 60대(18.7%)가 연령대별 1인 가구 비율 1·2위를 차지했다. 국가데이터처 관계자는 “예전에 비해 기대수명 자체가 늘어난 데다 남성보다 여성의 기대수명이 높다 보니 배우자와 사별한 뒤 홀로 사는 고령층 여성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인 가구가 2030세대와 6070세대에 집중돼 있다는 건 누구나 생애 어느 지점에서는 혼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청년층과 노년층이 홀로 지내게 되는 배경은 사뭇 다르다. 국가데이터처의 1인 가구 실태 조사에 따르면 39세 이하 청년층의 독립 사유 중 가장 큰 비중은 취업과 학업이었다. 대학 진학과 첫 직장, 이직 등의 과정에서 거주지를 옮기며 비교적 자유롭게 독립한 결과다. 반면 70세 이상 고령층의 경우 가장 흔한 사유는 ‘배우자의 사망’이었다. 청년층이 자발적 선택의 결과로 혼자가 된다면, 고령층은 사별·이혼·별거 등 비자발적 사건을 계기로 1인 가구가 되고 있는 셈이다.

출발선이 다른 만큼 이후 마주하는 양상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1.5가구에 대한 수요도 청년층은 트렌드와 생활 방식의 변화에 기인한다면 고령층은 본래 전통적인 가족이 맡아왔던 돌봄 기능이 약화된 데 따른 최소한의 자구책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서연 전남대 가정교육과 교수는 “공공 돌봄 서비스가 늘긴 했지만 정해진 시간의 방문 서비스나 형식적인 안부 확인만으로는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 등 위기 신호를 적시에 포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10여 년 전 이혼한 뒤 혼자 사는 진명자(68)씨는 평소 지인들과 활발히 왕래하며 스스로 안정적인 노년을 보내고 있다고 여겨 왔다. 그러나 얼마 전 홀로 응급실을 다녀온 뒤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안면 마비가 왔는데 응급 상황이 될 때까지도 몰랐다. 매일 인사하던 경비원이 이상을 느끼고 도와주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수록 이웃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령 1인 가구의 어려움은 주거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이들 중 절반가량(46.2%)은 단독주택에 거주하다 보니 노후화된 거주 환경을 혼자 감내해야 하는 실정이다. 최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집에서 생활하는 노인 단독 가구도 적잖다. 장기공공임대주택 거주 가구의 절반 이상은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로, 이 중 1인 가구 비율도 46.6%에 달한다. 노인 임대주택 관계자는 “일반적인 노후 주택이 그렇듯 겨울이면 창틈으로 찬바람이 스며들고 장마철이면 결로와 누수, 곰팡이가 반복되는 게 일상”이라며 “하지만 홀로 사는 어르신은 직접 집을 수리하기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다른 집으로 옮기기도 힘든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고령층이 마주한 이 같은 현실은 우리 모두의 미래 모습과도 맞닿아 있는 만큼 고령 1인 가구가 1.5가구로 나아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 교수는 “주거·의료·돌봄 정책을 세대별로 나눠서 접근하는 지금의 방식만으론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보다 세분화된 대책을 주문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령 1인 가구에 꼭 필요한 건 위험 신호를 감지해 공적 서비스로 연결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관계”라며 “이웃이나 지인처럼 느슨하지만 지속적인 ‘0.5’를 담보할 수 있는 실질적인 보완책을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허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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