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바뀐 디올·구찌·발렌티노…봄이 기다려진다

서정민 2026. 1. 17.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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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브랜드 디자이너 대이동
겨울이 지겨운 패션 매니어들은 벌써부터 럭셔리 브랜드들이 선보일 봄·여름 시즌 의상을 기다린다. 비싼 가격 때문에 선뜻 구매하기는 어렵지만 이들 럭셔리 브랜드들이 내놓는 패션 키워드들이 한 해의 트렌드를 결정짓는 방향키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1~2년 사이 럭셔리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하 CD)들이 대거 자리를 옮겼기에 그 기대감은 더욱 크다. 럭셔리 브랜드일수록 CD의 역할이 중요하고, 때문에 한 명이 자리를 옮기면 업계에선 도미노 현상이 일어난다. 로에베를 떠난 조나단 앤더슨이 디올로, 구찌를 떠난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발렌티노로, 발렌시아가를 떠난 뎀나 바젤리아가 구찌로 이동했다.

CD는 말 그대로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창조하는 중요한 자리다. 과거 톰 포드는 올드한 이미지의 구찌를 젊고 섹시한 이미지의 브랜드로 부활시켰고, 마크 제이콥스는 루이 비통에서 ‘3초 백(3초마다 하나씩 보이는 제품이라는 의미)’ 신화를 창조했다. 크리스토퍼 베일리 역시 나이 든 사람이나 입는다는 버버리 이미지를 젊고 세련된 브랜드로 변화시켰다.

물론 디자이너 한 사람의 역량만으로 브랜드의 흥망성쇠가 갈리진 않는다. 디자이너의 개성은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슬기롭게 재해석했을 때 빛을 발하고, 글로벌한 마케팅 전략·투자와도 손발을 맞춰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뛰어난 CD들이 럭셔리 하우스를 떠나 각자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운영하면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이유기도 하다.

조나단 앤더슨의 디올 맨즈 봄·여름 키 룩과 ‘디올 북 토트 백’. [사진 디올]
지난 7일 디올이 디올 성수 컨셉 스토어에서 2026년 봄·여름 여성복을 소개했다. 이날 행사가 관심을 모은 건 디올의 CD로 부임한 디자이너 조나단 앤더슨의 첫 번째 여성복 컬렉션이 선보이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2013년 로에베에 합류한 앤더슨은 1846년부터 가방을 만들어온 브랜드의 정체성을 ‘공예’와 ‘장인정신’으로 재정의 했고, 도전적인 실험정신과 현대적 시각을 입혀 패션과 문화가 소통하는 브랜드로 입지를 굳혔다. 또한 ‘로에베 재단 공예상’를 만들어 전 세계 아티스트 사이에서 로에베라는 이름이 각인되도록 했다.

그런 그가 지난해 1월 디올로 자리를 옮겼고, 디올 맨즈 컬렉션에 이어 여성 컬렉션까지 차례로 공개했다. 디올 측에 따르면 앤더슨은 그동안 부임했던 CD중 가장 많은 시간을 아카이브 연구에 쏟았다고 한다. 그 결과 브랜드 창립자인 무슈 디올의 헤리티지를 기반으로 특유의 위트가 담긴 디자인들을 창조하면서 디올 여성복에 색다른 활기를 불어넣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레이디 디올을 비롯한 토트백 디자인이다. 앤더슨은 무슈 디올의 자서전 커버 등 8개의 고전 문학 작품 표지를 응용한 ‘디올 북 토트 백’, 리본을 모티프로 한 ‘디올 보우 백’, CD 버클이 돋보이는 ‘디올 노르망디 백’ 등을 선보였다. 또한 무슈 디올이 사랑했던 행운의 상징 ‘네 잎 클로버’를 옷과 구두에 수놓았다. 가장 디올스러우면서도 이전의 디올에서 보지 못했던 시도들이다.

디자이너 뎀나와 ‘구찌: 라 파밀리아’ 컬렉션. [사진 구찌]
한편 구찌는 지난해 9월 새로 부임한 아티스틱 디렉터 뎀나가 ‘구찌: 라 파밀리아’ 캠페인을 공개하면서 새로운 구찌 시대를 시작했다. 뎀나는 우아한 오트 쿠튀르 브랜드인 발렌시아가에 스트리트 패션 무드를 옮겨 놓은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패션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주인공이다. 그가 선보인 ‘구찌: 라 파밀리아’ 컬렉션은 구찌의 아카이브와 비주얼 코드에 자신만의 실험적이고 개성 넘치는 탐구를 덧붙인 디자인으로 오는 2월 데뷔 패션쇼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선보인 발렌티노의 봄·여름 의상. [사진 발렌티노]
이탈리아 럭셔리 메종 발렌티노는 지난 2024년 4월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새로운 CD로 부임하면서 변화된 분위기와 에너지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켈레는 톰 포드가 떠난 후 바닥을 치던 구찌를 특유의 맥시멀리즘(화려하고 장식적이며 과장된)으로 부활시킨 주인공이다. 발렌티노로 옮긴 후에는 과장된 디자인을 적당히 숨기고, 대신 메종을 상징하는 브이(V)로고뿐 아니라 스터드, 1960~80년대에서 영감을 얻은 다양한 패턴과 상징적인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면서 발렌티노의 새 시대를 열고 있다.

이들 특급 디자이너들의 다음 행보가 궁금한 이유는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은 살아 있되 이전 브랜드와는 전혀 달라야 하고, 흥행에도 성공해야 하는 숙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의 감성과 안목이 그렇게 쉽게 바뀌진 않는다. 누가 주어진 숙제를 빨리, 똑똑하게 풀어낼까.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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