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키부츠' 찰리는 인생 캐릭터…내 삶·연기 모든 걸 "끌어올려~"

유주현 2026. 1. 1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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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 스테이지] 10년 동행 ‘찰리’ 떠나보내는 배우 김호영
망해가는 구두 공장을 떠맡은 청년 찰리가 ‘드랙퀸(여장 남자)’ 롤라의 구두를 만들며 성장하는 이야기. 드랙퀸이 잔뜩 나와 쇼를 하니 마니아 취향 퀴어 뮤지컬인가 싶지만, ‘킹키부츠(이하 킹키)’는 지금 가장 잘 팔리는 대중 뮤지컬이다. 캐스팅에 따른 티켓 파워 격차가 심한 여타 대극장 뮤지컬과 달리 전 캐스팅 매진 행렬이다. 12년간 무려 일곱 시즌이 열렸고, 2024년 10주년 공연에 이어 지난해 곧바로 전국 투어를 돌고 서울에 다시 입성했다. 숨은 공신은 여섯 시즌을 개근한 ‘찰리 장인’ 김호영(42)이다. 특유의 에너지로 긍정의 기운을 내뿜는 ‘본캐’와 다소 거리가 먼 ‘방황하는 청춘’의 상징 찰리를 10년간 다독여온 그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찰리를 떠나보낸다. 데뷔작인 ‘렌트’의 엔젤 역에 이어 두 번째 ‘졸업 선언’이다.

“캐릭터는 나이를 안 먹잖아요. 사회 초년생인 찰리의 풋풋한 느낌을 표현하려니 점점 애를 써야 하더라고요. 같은 역의 후배 신재범·이재환이 저보다 열 살 이상 어리죠. 물론 피부 나이론 손색없지만(웃음), 그들의 날것 같은 에너지를 보면 저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거든요. 그런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게 선배로서 도리겠죠.”

올겨울 최고 인기 뮤지컬 ‘킹키부츠’를 공연 중인 김호영 배우. 10년간 같은 역할을 연기한 ‘찰리 장인’이다. 김정훈 기자
김호영에게 찰리는 유독 애틋한 캐릭터다. 2002년 데뷔 이래 뮤지컬 ‘갬블러’ ‘라카지’ ‘프리실라’, 연극 ‘이(爾)’ ‘거미여인의 키스’ 등에서 여장남자 역을 도맡으며 구축한 독보적인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지극히 평범한 청년에 도전한 것. “제 이미지에 대한 편견이 거의 트라우마였어요. 제작사도 제가 오디션 보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거든요. ‘튀는 애’ 이미지를 극복하려 노력했고 그런 만큼 기대도 컸죠. 배우로서 역할이 확장될 거라 믿었는데 솔직히 생각 만큼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요즘 부쩍 ‘왜 연극 안하냐’는 소리를 듣는 걸 보면 극을 끌고 가는 힘을 인정받는 것 같아서 조금은 목표를 이룬 듯 해요.”

개인 유튜브 채널명이 ‘투머치 김호영’, 홈쇼핑 코너명이 ‘투머치쇼’일 정도니 사실 찰리도 ‘투머치’ 감이 없지 않다. 연극적인 무대 화술이 남다른데, 2막의 하이라이트 ‘소울 오브 어 맨’ 솔로를 부를 때 그 뜨거운 무대 매너에 ‘강제 납득’을 넘어 감동하게 된다.

“킹키가 사실 찰리의 성장 스토리에요. 너무 평범해서 ‘무매력’ 캐릭터지만, 제가 입체적인 찰리의 드라마를 잘 만들어보고 싶어 도전했고 나름 고군분투했죠. 그래서인지 예전엔 관객들이 롤라의 쇼적인 면에 집중했다면, 요즘은 찰리에 공감하는 분도 많아졌어요. 특히 자영업 하시는 분들은 찰리가 ‘왜 이 사태를 나만 걱정해!’라고 외칠 때 자기를 투영하더군요. 우리 모두 각자 힘든 게 있잖아요. 찰리의 성장에 동기화 돼서 눈물 흘리는 분들 보면, 제 10년 노력이 헛되지 않은 거겠죠.”

뮤지컬 ‘킹키부츠’ 공연 모습. [사진 CJ ENM]
10년간 ‘찰리 장인’으로 편견 깨기에 매진했으니 ‘본캐’에 가까운 롤라도 도전해보고 싶지 않을까. “생각해본 적은 있어요. 스페셜하게 롤라를 한다면 전 세계 통틀어 유일무이할텐데. 하지만 배우로서 저의 큰 장점은 자기 객관화를 잘한다는 거예요. 음악적으로 흑인 소울 창법의 롤라는 제 영역이 아니거든요. 그냥 상상만 해봤어요.(웃음)”

몇 해 전 ‘라디오스타’에서 우연히 내뱉은 “끌어올려~”가 유행어가 되면서 ‘핵인싸’ ‘텐션 업’의 아이콘으로 대중적 인기도 누리고 있다. 방송에서의 ‘하이 텐션’과 무대 위 진지한 모습은 사뭇 다르다. “방송과 무대의 간극을 즐겨요. ‘저 사람이 저런 배우였어?’ 놀라워하는 반응이 재밌고요. 예전엔 편견을 깨려고 연습실에서 말도 안 하고 댄디한 옷만 입으며 이미지 메이킹을 했다면, 지금 대중이 내 공연을 보고 싶은 건 내 모습을 알기 때문이죠. ‘끌어올려~’는 평소 쓰는 말은 아니었지만 제 에너지와 잘 맞아서 오래 가는 유행어가 된 것 같아요. 사는 게 즐겁기만 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인지 그 한마디에 힘 받는 분들이 많더군요. 킹키가 가진 에너지와도 잘 맞고요.”

뮤지컬 ‘킹키부츠’ 공연 모습. [사진 CJ ENM]
배우로서 전성기를 함께한 킹키와 잘 이별할 수 있을까. 이번 시즌 첫 공연에선 이상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전국 투어를 고양에서 시작했는데, 첫 대사 뱉을 때 2016년 처음 찰리를 연기했던 날의 기분이 확 들더라고요. 엄청 긴장되고 설레고 이상한 기분이었죠. 제작진들도 같은 걸 느낀 거에요. 저의 마지막 찰리라는 걸 은연중 공유하고 있어서였는지, 마무리 잘하고 싶은 저의 애정이 전해진 것 같아요. 첫공인데 마치 막공날인 것처럼 얼싸안고 울었죠.”

하루하루 찰리를 떠나보내며 김호영은 새로운 도전도 꿈꾼다. 방송인으로도 눈코뜰새 없지만 무대 위 낯선 역할과 부딪치고 싶단다. “뮤지컬은 누가 등 떠밀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1998년 청소년 연극제 때부터 무대에 계속 섰는데, 무대에서의 김호영이 얼마나 자유롭고 당찬지 스스로 알거든요. 이제 새로운 역할에서 재미를 발견하고 싶고, 찰리에게는 참 많이 애썼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뭔가 주어졌을 때 좌충우돌 하면서도 끝까지 노력하며 성장해가는 모습이 제가 만들고자 했던 입체적인 찰리의 모습이었거든요. 그렇게 애썼던 저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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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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