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이란 사태 외면하는 한국의 진보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는 1978년 이슬람 혁명이 한창이던 이란 테헤란 현장을 취재했다. 당시에도 이란 국민은 경제난과 권력층 부패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하고 있었다. 대상이 팔레비 왕정이라는 점만 지금과 달랐다. “왕에게 죽음을!” 푸코는 2700여 명 희생을 감수하고도 ‘이슬람 공화국’을 외치는 모습에 감탄하며 ‘정치적 영성’이 원동력이라고 극찬했다.
반세기 뒤 우리는 그 ‘영성’이 킬링필드, 톈안먼 사태와 비견될 최악의 자국민 학살을 저지르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독일 슈피겔은 “이란은 잘 작동하는 살인 기계”라고 했다. 푸코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표현이다. 푸코는 이슬람 지도자 호메이니를 ‘성인(saint)’에 빗대고, 혁명 과정을 “무장한 통치자와 빈손의 망명자 간 대결”로 미화하기도 했다. 장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도 호메이니를 지지했었다.
현재 ‘무장한 통치자’는 호메이니의 후계자 하메네이로, ‘빈손의 망명자’는 군주제의 마지막 왕세자로 위치가 역전됐다.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구호도 마찬가지다. 1979년 팔레비 왕정 축출 뒤 수립된 ‘이슬람 공화국 헌법’을 보면 호메이니·하메네이가 앉은 최고 지도자는 신을 대리한다. 삼권분립을 초월한 ‘절대 통치권’이 보장된다. 그래서 “빵을 달라”는 시위대를 ‘신의 적’으로 낙인찍고 기관총을 발사할 수 있다.
이란 소식통이 보내온 영상은 푸코 분석의 파탄을 선언하는 듯했다. 테헤란 거리에 말 그대로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당시에도 푸코가 이슬람의 여성 억압 등에 눈을 감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거대한 사탄”이라고 말해줄 호메이니 같은 사람이 그들 입맛에 더 맞았을 것이다. 이 반미(反美) 정서에 오리엔탈리즘적 낭만·동경까지 겹치면 중국·북한마저 ‘대안 체제’로 둔갑한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습에 한국의 이른바 진보 진영은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집단 학살을 멈춰라.” “제국주의적 주권 침해를 중단하라.” 온갖 ‘공동 성명’ ‘긴급 행동’에 참여한 단체가 수십~수백 곳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이란 사태에 ‘민주’ ‘진보’ ‘인권’ 같은 간판을 내건 정당·단체는 침묵하거나 형식적 반응에 그치고 있다. 과거 푸코·사르트르와 다르지 않은, 관념적 반미 때문은 아닐까.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이란에서 광주의 학살이 재현되고 있다”며 “이란 국민이 느낄 두려움·외로움을 잘 안다”고 했다. 진보라면 당연히 내야 할 목소리다. 집권 여당 강령엔 ‘5·18 정신 계승’이 명시돼 있다. 이런 나라의 ‘진보’와 ‘인권’이 고작 ‘선택적 정의’나 ‘반미의 동의어’를 뜻한다면 슬픈 일이다. “우릴 기억해달라”던 1980년 광주를 기리는 진보라면, 2026년 “우리의 목소리가 돼달라”는 이란의 호소에도 성실히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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