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탈북녀, 북한 보통사람들 삶 들려주고 싶다”
“공기(분위기)를 읽고 장군님 앞에서 운다”
국경의 감시인은 탈북 브로커 노릇도 했다
광물자원 밀반출, 양귀비 재배와 아편 밀조
북한사람 대다수가 ‘장마당’에서 음식 조달

"나는 탈북녀. 북한 보통사람들 삶 들려주고 싶다"
지난 9일 일본경제신문의 후지타 데쓰야 서울지국장이 쓴 기사의 제목이다 1993년에 입사한 지 30년이 훌쩍 넘은 베테랑 기자로, 2023년부터 서울 지국에서 일하고 있는 후지타 데쓰야 지국장이 만난 '탈북녀'는 약 10년 전 20대 나이에 탈북해 한국에 온 30대 여성이다. '유라'라는 가명을 쓰는 이 여성은 북한에서 살 때 광물자원 밀반출과 마약원료인 양귀비 재배, '장마당' 장사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간 자신의 경험담, 철저한 주민 감시통제와 "목숨 걸고 한국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 얘기 등을 들려 주었다. 그녀는 북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 주류 언론매체들에서 '탈북인'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경우는 드물다. 닛케이 기사를 그대로 옮긴다.
광물자원 밀반출
긴 머리칼을 나부끼는 작은 몸집의 여성, 이름은 유라.(가명 30대) 미소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눈빛과 지성을 느끼게 하는 풍모가 인상적이다. 그녀는 약 10년 전 중국-북한 국경을 흐르는 압록강을 건너 중국 등지를 경유한 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다.
서울 시내에서 유라 씨한테서 탈북 경위와 북한에서의 생활에 대해 들었다.
그녀의 집은 북한 북부지역. 압록강 상류의 강폭이 좋은 지역이었다. 할아버지는 의료 관계자, 아버지는 군 관계자. 북한에서 유라 씨는 현지에서 채굴된 광물자원을 중국에 밀반출하는 일을 했다. 1주에 3, 4차례 북중 국경을 몰래 오갔기 때문에 "언젠가는 단속에 걸려 내가 붙잡힐 것이라 생각했다"는 것이 탈북을 결행한 이유의 하나였다.
국경의 감시인은 탈북 브로커 노릇도
그녀의 집은 산간지대에 있어서 전기 공급이 엄격히 제한되고 있는 지역이었다. 북중 국경 부근에는 안테나가 여럿 있어서 브로커에게 뇌물로 돈을 주면 휴대전화와 중국의 대화 앱 '위쳇(微信)'도 쓸 수 있었다.

중국 국내에서 한국인이나 조선족이 경영하는 회사에서 일하면서 5년 정도 숨어 지냈다. 숨겨 준 한국인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생명의 은인"이다.

"공기를 읽고 장군님 앞에서 운다"
주민들은 김정은 총비서의 연설을 되풀이해서 듣고 때로는 암송하라는 지시도 받는다. 유라 씨는 "공기(주변 분위기)를 읽고 장군님 앞에서 울거나 웃거나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찍혀서 위험했다"고 했다.

북한 대다수 사람들이 '장마당'에서 음식 조달
북한의 야외시장. 주민들 다수가 시장을 통해 식료를 조달한다.
북한은 '장마당'이라 불리는 시장을 합법화해 주민 대다수가 시장을 통해 식료를 조달해 왔다. 최근에는 개인의 곡물거래를 단속하면서 통제를 강화했지만, 여성들은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이 많다.
양귀비 재배와 아편 밀조
그럼에도 곤공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유라 씨는 북한에서 양귀비를 재배한 적도 있다. 양귀비를 커터 칼로 잘라 아편을 만든다. 아편은 양귀비 열매에서 채취한 분비물로 만드는데, 헤로인의 원료가 된다. "마약은 돈이 되니까 북한에서는 (그런 일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했다.
외부세계와 단절된 북한사회에는 이동의 자유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의외로 일정 지역 내에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다만 거주지역이 아닌 경우 구역 바깥으로 이동하는 것은 극도로 제한돼 있다.
예컨대 국경지역에서 평양으로 이동할 때는 반드시 통행 허가증을 받아야 했다. 유라 씨는 평양에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평양에서 국경지대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당국이 이동 허가를 내 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목숨 걸고 한국 드라마 시청
해외로부터의 정보는 모두 차단돼 일본의 납치 피해자 이야기에 대해서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김정은 총비서 어머니라는) 고영희 씨에 대해서도 "들어 본 적 없다. 한국에 온 뒤 비로소 알게 된 이야기밖에 없다"고 했다.
북한에서는 목숨 걸고 한국 드라마를 보는 사람도 있다.
외부와의 정보는 완전히 차단돼 한국 영화나 드라마 등을 시청, 유포한 사람들 처형이 잇따르고 있다. 김정은 씨가 체제유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기색을 엿볼 수 있지만, 목숨 걸고 한국 드라마를 보는 사람도 있다. "들키면 사형인데도, 한국문화에 빠져드는 사람이 많다."
"내 인생 돈받고 팔 순 없다. 듣고 공감해주면 된다"
한국으로 넘어온 많은 탈북자들 중에 생활이 곤궁한 이들도 있어서, 취재 등을 할 때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유라 씨는 "많은 탈북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해서 돈을 벌지만, 나는 돈은 필요없다. 내 인생을 돈받고 팔 순 없다"고 했다.
북한에 남은 볼이 홀쭉하고 야윈 어머니 얼굴사진을 만지면서 유라 씨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세계에서 살아 온 사람들은 서로 많은 의문을 품고 있다. 나는 그냥 북한이라는 나라의 보통 사람들의 삶을 전해줌으로써 그 인생에 서로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게 의미가 있다고 믿고 있다."
sudohaan@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