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파워인터뷰 | '마인드 마이너' 송길영] "해고 쓰나미 온다, 치열해진 미래… AI 동료 손잡고 인간 동지 응원하라"

2026년이 밝았다. 새해가 시작되면, 데이터 과학자 송길영과 한 해를 여는 ‘디지털 토정비결’의 시간을 가져왔다. 그동안 송길영은 긴 호흡으로 다음을 준비하는 ‘시대 예보’ 시리즈를 내놓았다. ‘핵 개인의 시대’와 ‘호명 사회’를 거쳐 이번에 출간된 ‘경량 문명의 탄생’ 은 인공지능(AI) 기술 격동의 시대를 담대한 언어로 돌파해 낸다. 송길영은 빠른 추격자가 아니라 빠른 전환자의 시대를 선언했다.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 전쟁과 대량해고의 칼바람이 예보된 가운데, 막 AI와 동거를 시작한 인류는 자세를 낮추고 숨을 고르고 있다. AI 구조화가 거듭되는 상황에서 몸을 가진 인간과 AI 사이의 역학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까. 수많은 통계와 지수로 한 사회의 다음 장면을 제시했던 송길영은 추운 겨울이 오기 전부터 메가폰을 쥐고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진짜, 큰 허리케인이 옵니다. 생업을 가진 모든 이에게 옵니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듯 인간은 AI의 센서가 되어서 감각과 지식을 제공할 운명이라는 말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AI가 인간의 거의 모든 걸 전수할 거라는 송길영의 단정에는 낙관도 비관도 없었다. 인터뷰에서 반복된 메시지는 ‘세상이 바뀌었으니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하라’였다. 다정하게 사람을 만나고 섬세하게 몸 쓰는 직업은 가치를 잃지 않을 거라고 첨언하며. 겨울 아침, 통창으로 햇빛이 부서지는 그의 새 작업실에서, 긴 대화를 나눴다.

경량 문명은 기업의 가치를 어떻게 바꿉니까.
“무거운 문명의 시대엔 만리장성 지으려고 국민 다 끌어다 노역시켰어요. 산출물이 인건비에 비례했죠. 지금은 가벼운 게 경쟁력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은 작은 기업을 선호해요. 10명이 100억원 벌면 10억원씩은 받을 수 있으니까. 큰 기업에 들어가서 n분의 1 받을 이유가 없죠. 투자자도 구성원이 많으면 싫어합니다. 예전엔 시가총액(시총)만 물었어요. 지금은 인당 시총을 물어요. 매출 늘리는 건 최고재무관리자(CFO)가 못 하니 압력받으면 사람 줄이는 걸 택해요.”
두 실직 가장의 이야기가 소셜미디어(SNS)를 뜨겁게 달궜어요.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이병헌과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류승룡. 마지막에 이병헌은 자동화된 공장을 혼자 거닐고, 류승룡은 관계와 직업의 대전환으로 다른 삶을 살지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이 회사를 그만두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점점 상호 관계성이 기능으로 대체돼요. 과거엔 옆집 형이 좀 모자라도 깍두기로 끼워줬어요. 지금은 모두가 육각형이 돼야 해요. 외모도 성격도 자기 관리도 교양도 다 높이도록 사회적 압력이 거세지고 있어요.
예전엔 나의 성취보다 집단의 성취가 우선해서, 잘나든 못나든 좋은 집단에 끼어 있으면 비슷하게 보상이 됐어요. 애덤 스미스의 분업과 막스 베버의 관료제가 믹스된 구조였죠. 그런데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한다’는 핵 개인이 등장하고 갑자기 AI까지 나오면서 가치 체계가 바뀌고 있어요.”

어쨌든 드라마에서 김 부장은 끝까지 버티려 하지요.
“한국인은 스위칭하면서 급여가 깎이는 걸 못 견뎌 해요. 받던 액수 그대로 수평 이동하려고 하면 초이스가 없어요. 삶을 단출하게 해서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야 하는데, 준비가 안 됐어요. 생애 스테이지마다 레이스를 늘려왔으니까. 같은 부장도 반포 아파트 사는 부장, 구축 아파트 사는 부장, 계속 줄 세우면 안 불행해지는 게 더 이상하죠. 그러니까 빨리 그 레이스에서 빠져나와 다른 중력의 우주로 가야 합니다.”
2023년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2025년이 훅 당겨왔다고 했어요. 디지털화가 갑자기 일어났다고요. 그렇게 먼저 온 미래가 우리 멱살을 쥐고 끌고 가는 느낌입니다.
“놀랍게도 두 번의 우연이 동시에 겹쳤어요. 젠슨 황이 만든 그래픽처리장치(GPU)는 게임용 그래픽 카드지만, 엄청난 속도의 계산 엔진입니다. 기술이 먼저 준비된 상황에서, 갑자기 코로나19로 디지털 가속화가 시작되면서 데이터와 계산 수요가 폭증한 겁니다. 그렇게 두 가지 사건이 만나면서 AI가 일상으로 순식간에 튀어나왔어요. 어느 날 소행성이 지구에 부딪혀서 환경 변화로 공룡이 멸종한 것처럼, 갑자기 AI가 우리 삶을 바꿔버렸어요. 어떻게 보면 억세게 운이 좋은 거죠. 일단은 노동을 안 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니까요.”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1935년에 니콜라 테슬라가 그랬어요. ‘로마 시대에는 노예가 노동을 대신해 줬기에시민이 우아하게 살았다. 앞으로 100년 이내 AI나 로봇이 나와서 인간의 수고로움을 덜어줄 테니, 그때는 좀 멋진 일을 해보라.’ 1935년에 예언했는데, 90년 만에 정말 AI가 나온 거예요.
그럼, 테슬라 말대로 우리는 우아하게 살 수 있을까요? 음유시인이 되거나 등반가가 되거나. 문제는 그게 인류의 좋은 미래지만 그게 내 미래인지는 모른다는 거죠. 매일 출근해서 동료와 부대끼고 아파트 대출금 갚으며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인류가 멋져질 테니 네 직업은 없애자’ 그러면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그 전환기를 어떻게 먹고살며 삶을 유지할까요? 상황이 그러하니 생업 있는 이라면 무조건 ‘AI와 협업하라’는 겁니다. 춘궁기(春窮期)를 잘 통과하라고요.”
가령 동네에서 작은 식당 하는 노인도 AI와 잘 지내야 하나요.
“그럼요. 옆 식당에서 결제 키오스크 쓰는데 나만 안 쓰면 인건비와 음식값이 올라갑니다. 옆 카페에서 커피 내리는 로봇 쓰는데 나는 안 쓰면 커피값 경쟁에서 밀려요. 그런 일이 사방에서 벌어질 겁니다. 요즘엔 번역가에게 번역 의뢰할 때 클라이언트가 그냥 AI 쓰라고 한답니다. 다만 책임은 당신이 지라고. AI 에이전트가 되라는 거죠.
저출생, 저성장에 원화 가치가 지켜질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 가진 자산으로는 남은 50년을 감당하기 힘들어요. 생산 가능성은 계속 유지돼야 합니다. 그러니 이번엔 꼭 변화해야 해요.”

AI로 생산성이 높아져도 소비자가 구매 여력이 없다면 AI 효율 시스템이 지속 가능할까 싶습니다.
“그건 나중 일입니다. 사회가 해결할 문제예요. 당장 옆에 있는 월마트와 싸워야 하고 주주로부터 매출 압력을 받는데, 안 줄일 수 없어요. 결국 해고는 전방위적으로 닥칩니다. 금융권도 인원 감축한 지 5년이 넘었어요. 아마존도 AI로 사무직 노동을 구조화해 본 후, 3만 명 정도를 줄이겠다고 발표했어요. 내부 문서에는 2030년까지 최대 60만 명 감축을 목표로 자동화 추진 중이라고 돼 있어요. 기업도, 인간도 이기적인 선택을 해요.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는. 여기서 못 줄이면 국경을 넘어가요. 다른 나라 가서 하겠다고. 전환기에 기회를 못 잡으면 순식간에 (패자로) 전락할 수도 있으니까요.”
해체기는 창조적 파괴의 시기이기도 하죠.
“맞아요. IMF(국제통화기금) 위기를 겪으면서 대기업이 안전하지 않다는 걸 다음 세대가 알아버렸잖아요. 그래서 네이버, 다음 같은 기술 스타트업이 나왔죠. 패러다임 시프트가 될 때는 늘 새로운 기회가 생겨요. 내가 반복해서 하는 이야기가, 경량 문명의 시대가 꿈을 펼치기 좋다는 거예요.
성공한 기술 기업에 투자해 온 세쿼이아 캐피털에 따르면, 요즘엔 잘나가는 스타트업은 펀딩을 거부한다고 해요. 5명이 돈 벌고 있으면, 매출이 늘어도 더 키우지 않고 5명이 운영해요. 예전엔 투자받아서 규모 키우고 비싸게 팔고 나갔지만, 지금은 안 팔아요.
‘돈도 벌고 재밌는데 왜 팔아’, 그 태도의 뿌리가 몇백 년 이어온 패밀리 기업이거든요. 골드만삭스, 로스차일드 같은. 내가 시작했고 유지할 수 있고, 무리하게 키우지 않으면 계속할 수 있다. 청년이 지금 이런 꿈을 꾸고 있는 거예요.”
책에서 부지런한 지능과 거대한 지능을 경공술과 축지법에 빗대어 설명했습니다.
“부지런한 지능은 ‘하기 힘든 일’을 도와주기에 빨리 달리는 ‘경공술’이고, 거대한 지능은 ‘할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하기에 땅을 접어서 달리는 ‘축지법’입니다. 부지런한 지능은 시간을 단축하고, 거대한 지능은 무수한 데이터 속 패턴을 찾아서 우리가 모르던 깨달음을 전해줍니다. 진짜 고민은 그거예요. 오랫동안 천천히 똑똑해진 인간이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AI와 어떻게 일을 나눠야 할까. 인간이 하기 싫은 거 귀찮은 거 다 시킬 수 있지만, 사실 나는 AI에 좀 어려운 일을 시켜야 맞다고 봐요.
일례로 딥마인드 창업자 데미스 허사비스가 노벨 화학상을 받았잖아요. 화학자가 인간 몸의 단백질 구조를 밝히기 위해 50년간 노력해도 잘 안됐는데, 딥마인드 팀 연구로 몇 년 만에 90% 이상 밝혀낸 거예요. 거대한 지능이 단번에 난제를 해결한 거죠.
AI와 잘 협업하기 위해서는 AI에 어려운 일을 시킬 만큼의 끈기와 지혜가 필요해요.
지금 천재는 AI로 멀티를 할 수 있어요. 바둑에서 여러 사람과 동시에 두는 다면기(多面棋)처럼. 그러면 인류는 비약적으로 발전할 거예요. 그럼, 범인(凡人)은 그런 증강된 천재를 보고 절망할까? 아니요. 예를 들어 생명공학 분야에 그런 천재가 왔고 ‘어나더 레벨’이라면, 나는 내가 더 하고 싶었던 일을 찾으면 돼요. 요리한다든가 분재를 한다든가.”
제러미 리프킨이 그러더군요. ‘회복력 시대에 우리의 생태적 자아는 저마다 흩어지는 패턴’이라고. ‘시간의 안무에 맞춰서 적응성의 스텝을 밟으라’고요. AI가 나오기 전엔 ‘대퇴사 시대’의 은유로 읽혔는데, 이제는 ‘대량 해고 시대’의 보법으로 이해됩니다.
“그렇죠. 가르쳐주고 품어주는 따사로운 조직의 시대는 끝났어요. 지금 당장 만나서 3주간 함께 프로젝트하고 헤어지는 패턴입니다. 친절하지 않고 탁월하지 않으면 업계의 풀에서 축출돼요. 블라인드와 평판이 워낙 촘촘해서, 배려와 두려움을 잊으면 자연 도태됩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만난다, 잠시 만난다, 다시 만난다.’ 명령, 억압, 강제로는 관계의 점성이 유지되지 않아요. 지능의 범용화, 협력의 경량화가 어쩔 수 없이 공정하고 예의 바른 개인을 유도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미래에 관해 물어보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모른다고 하세요. 더 좋은 답은 ‘같이 찾아볼까? 배워 볼까?’입니다. 분명한 건 다정하게 사람을 만나고, 섬세하게 몸 쓰는 직업은 AI와 로봇 시대에도 건재할 거예요. 지금 직업이 없어지면 반드시 새 직업이 옵니다.”
최고경영자(CEO)는 Chief Entertainment Officer로 거듭나야 할까요.
“똑똑한 사람은 ‘쫀다’고 ‘쫄지’ 않아요. 더 잘하지도 않죠. 즐겁게 격려해 주는 리더가 최고예요.”
마지막으로 개인의 성장은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까요.
“기술이 좋아져도 인류는 갈 길을 갔습니다. 인상파, 추상미술 이후 현대미술이 더 깊어졌듯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은 의미를 찾으려고 할 거예요. 생존과 자존을 위해 늘 한계 너머 이상과 반대급부를 찾으려 듭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AI 동료와도 잘 지내야 하지만, 인간 동료와도 잘 지내야 해요.
AI와 잘 지내면서도, 동시에 내가 AI가 아니라는 것도 증명해야죠. 요즘엔 인간 동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작업 과정을 라이브로 올리기 시작했어요. 음악 하는 사람도 그 분투의 과정을 다 업로드합니다. 콘서트, 연극, 뮤지컬, 북토크에서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건 퍼포먼스만이 아닙니다. 그 일을 끝내기까지 과정에 동참하고 박수 보내고 싶은 거죠. 라이브와 응원 문화가 인간인 당신의 성장에 함께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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