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건축 세계 <33> 소년의 시간] 원테이크 기법과 건축: 연속된 공간과 시간의 켜

강현석 SGHS 설계회사 소장 2026. 1. 16.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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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 /사진 넷플릭스

2025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4부작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은 평온한 주택가의 아침 정적을 깨는 무장 경찰의 출현으로 시작한다. 소박한 이층집 앞에 집결한 경찰은 현관문을 부수고 집 안으로 들이닥친다. 놀란 부모는 집을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니냐며 소리치지만, 경찰은 아수라장이 된 거실을 가로질러 2층으로 돌진한다. 그렇게 작은 방 침대 위에서 소란에 놀라 떨고 있던 열세 살 소년 제이미는 동급 여학생 케이티의 살해 혐의로 긴급 체포된다.

경찰에게 끌려 내려온 제이미는 숨을 헐떡이며 울먹이고,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며 아버지를 쉼 없이 부른다. 순진하고 연약한 소년의 모습은 ‘우리 아이가 그런 범죄를 저질렀을 리 없다’는 아버지의 외침에 관객이 자연스럽게 공명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사건의 전모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 아버지의 상실감과 함께 상황은 서서히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강현석 - SGHS 설계회사 소장, 코넬대 건축대학원 석사,서울대 건축학과 출강, 전 헤르조그 앤드 드 뫼롱스위스 바젤 사무소 건축가

소년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네 개의 창

각본을 맡은 잭 손과 스티븐 그레이엄은 여느 범죄 드라마처럼 사건의 발생 과정을 재현하는 방식에서 한발 물러선다. 극 중 살인 현장은 흐릿한 CCTV 화면으로만 제시될 뿐이다. 대신 카메라는 이 앳된 소년이 어떻게 돌이킬 수 없는 범죄의 지점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이를 위해 드라마는 네 개의 에피소드를 마련하고, 관객이 각기 다른 ‘창’을 통해 제이미의 세계를 바라보도록 제안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제이미의 체포 과정을 비교적 객관적인 시선으로 따라간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두 번째 에피소드는 소셜미디어(SNS)와 사이버 불링이 동시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명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고립된 방에서 상담 심리사와 단둘이 마주한 제이미가 갑작스럽게 분출하는 폭력성을 통해, 겉모습과 내면 사이의 깊은 간극을 드러낸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사건 직후 제이미 가족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피해자가 아닌, 범죄를 저지른 소년의 가족이 겪는 일상의 균열을 다루는 이 에피소드에서 부모는 폭력적이거나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인물로 그려진다. 드라마는 이를 통해 이 비극이 결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현실임을 환기한다.

동시간성을 강조하는 원테이크 기법

드라마는 각 에피소드를 원테이크 기법으로 촬영하며 공개와 동시에 화제가 됐다. 한 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 전체가 카메라 한 대의 시선으로 끊김 없이 이어지고, 서사는 편집 없는 단 하나의 쇼트로 구성된다. 카메라는 실내와 실외, 차량 내부와 도시의 거리, 땅과 공중을 미끄러지듯 유영하며 시선의 위치와 속도를 끊임없이 전환한다. 등장인물 역시 개인에서 집단으로, 다시 고립된 개인으로 유동하며 재배치된다.

작은 실수 하나도 허용하지 않는 이 방식은 막대한 준비와 정교한 조율을 전제로 한다. 촬영이 시작된 카메라는 여러 스태프의 손을 거쳐 공간과 공간 사이를 넘나들고, 공중의 시선을 확보하기 위해 드론에 장착된 후 다시 손으로 받아 이어진다. 한 쇼트마다 약 3주에 달하는 리허설을 통해 배우와 스태프는 자신의 위치와 동선을 반복적으로 체화했다.

이처럼 집요한 준비 과정을 요구하는 원테이크 기법은 관객을 소년의 시간으로 초대하기 위한 장치다. 드라마는 사건을 편집해 제시하는 대신, 관객이 등장인물과 동일한 시간의 흐름 속에 머물며 함께 호흡하도록 한다. 모든 상황은 연속된 시간으로 관통되고, 관객에게 요구되는 것은 해석이 아닌 지속적인 체험이다. 그 결과 관객은 제이미와 얽힌 시간의 켜(포개어진 물건의 각각의 층) 그리고 그 켜가 통과하는 공간의 흐름 속에 머문 채 끝내 이탈할 수 없게 된다. 이 과정에서 소년의 시간은 마침내 ‘지금, 여기, 당신’으로 치환된다. 원테이크는 SNS, 혐오, 인권, 교육 문제를 마주한 ‘현재’의 민낯을 펼쳐 보이며, 우리의 나약함을 증언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1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 /사진 Architects’ Journal 2·3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 내부. /사진 THE SPACES

다섯 건물의 켜를 갖춘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

이 지점에서 원테이크는 영화의 형식을 넘어,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사유로 확장된다. 우리의 일상적 인식 역시 원테이크 카메라에 가깝다. 탄생과 동시에 작동을 시작한 인식의 카메라는 생의 끝까지 멈추지 않으며, 수면 중에도 어둠이나 꿈을 비출 뿐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선을 통해 도시와 일상의 공간을 감각하고 경험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상의 모든 공간 경험은 이미 원테이크적이다.

그러나 건축에서 서로 다른 공간의 켜가 의도적으로 병렬되고, 그것이 하나의 동선으로 끊김 없이 관통될 때, 이 일상의 원테이크적 경험은 드라마처럼 각별한 감각으로 전환된다. 여기에 시간 개념이 중첩될수록 그 경험은 더욱 농밀해진다. 2015년 영국 남런던에 완공된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는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영국의 카루소 세인트 존 아키텍츠가 설계한 이 갤러리는 세계적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의 방대한 현대미술 컬렉션을 전시하고, 이를 대중에게 무료로 공개하기 위해 조성된 공간이다. 갤러리는 전면 가로와 넓은 철도를 따라 늘어선 세 동의 역사적 건물군을 중심으로, 그 양단을 두 동의 신축 건물이 완결 짓는 형태다. 1913년에 지어진 기존 건물은 당시 급성장하던 극장 및 연극 산업을 위해 무대와 배경을 제작하던 작업장이었다. 건축가는 신축 건물의 입면에서, 하부에 낮은 창이 군집하고 그 위로 높은 벽이 이어지는 기존 작업장의 독특한 비례와 붉은 벽돌의 물성을 계승했다. 이로써 서로 다른 시대에 건립된 다섯 동의 건물은 하나의 덩어리로 응집되면서도, 각기 다른 폭과 지붕 형상, 창의 구성을 유지하며 형식적 차이를 분명히 드러낸다.

일상적 공간의 켜를 관통하는 비일상적 시퀀스

상호 구별되는 갤러리의 외관은 다섯 동을 가로지르는 연속적인 내부 공간을 통해 반전된다. 관람객은 백색 석고보드로 마감된 전시 공간을 따라 이동하며 개별 건물을 횡으로 통과한다. 각 전시실은 기존 산업 공간의 형식을 계승한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형태를 유지하지만, 양단과 중앙에 배치된 세 개의 계단실은 이 흐름을 전환하는 제삼의 공간으로 작동한다. 서로 다른 재료가 응축된 곡선형 계단을 따라 관람객은 완만하게 2층으로 상승하며, 이동 자체를 하나의 체험으로 인식하게 한다.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로서 균질한 백색의 세계는 2층에서 변주된다. 각 동은 톱니형, 경사형, 평지붕 등 상이한 지붕 형식과 이에 대응하는 천창으로 구분되고, 그 차이는 고유의 단면과 채광 조건을 만들어낸다. 관람객은 작품을 감상하는 동시에 공간에서 공간으로 이행하는 감각을 경험하며, 병렬된 공간의 켜를 하나의 동선과 시간 속에서 매끄럽게 관통하게 된다.

원테이크를 닮은 내부의 비일상적 경험은 외부에서 다시 일상으로 회귀한다. 길게 이어진 전시 공간의 횡적 이미지는 인간적인 스케일로 분절되며, 전형적인 런던의 거리 풍경 속에 예술 프로그램을 중첩한다. 이러한 순환적 태도는 동물, 알약 같은 일상적 오브제를 해체하고 집합하며, 죽음이라는 또 다른 일상의 개념을 예술적 체험으로 전환해온 데미안 허스트의 작업 방식과도 닮았다.

소년의 시간과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의 원테이크 시선은 또 한 해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다가올 시간과 공간의 켜를 관통하며, 우리는 우리의 카메라에 어떤 의도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 그 태도에 따라 늘 같은 일상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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