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의 싸움이 바뀌었다…장거리 공대지미사일 시대의 ‘미사일 트럭’ [박수찬의 軍]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항공전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전투기의 기동성보다 사거리가 긴 공대공·공대지 미사일의 성능이 항공작전의 효과를 가늠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잡는 모양새다.
냉전 시절까지만 해도 전투기 조종사는 시각을 통해 표적을 확인하고 공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세계 각국도 공대공·공대지 스탠드 오프 능력을 지닌 전투기를 확보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항공무장의 수준이 전투기 구매나 성능개량에 영향을 미치는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글로벌 전투기 시장 변화에 맞춰 한국도 관련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투기가 미사일 트럭처럼 쓰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항공작전은 적기를 최대한 먼 거리에서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이 중시되어왔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적기를 탐지·추적하면, 공중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었다. 지상 폭격도 마찬가지였다.

센서가 포착한 표적을 공격할 미사일의 사거리가 짧다면, 교전의 주도권을 상실한다. 탐지 조건이 동일해도 먼저 위협받는 처지가 됨으로써 적 미사일 공격에 대한 회피기동, 전자전, 플레어나 채프 사용에 자원을 소모할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AIM-120을 비롯한 중장거리 공대공미사일이 등장, 조종사 시야를 넘어선 거리에서의 공중전이 현대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전투기의 선회율이나 상승율 등에서 열세를 보여도 중장거리 미사일을 통해 실질 교전 거리를 연장한다면 전술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공대공미사일 사거리가 늘어나면, 지상 공격을 위해 적지로 접근해야 하는 전투기는 상당한 위협에 직면한다. 특히 지대공미사일의 성능까지 향상되면서 저공으로 침투해서 폭격을 하는 것은 예전보다 훨씬 위험해졌다.

지난해 벌어진 인도-파키스탄 충돌도 마찬가지였다.
양측은 장거리 방공체계와 더불어 중국산 PL-15E(파키스탄)·미티어(인도) 등의 장거리 공대공미사일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전투기들은 상대방 방공망과 장거리 공대공미사일 위협에서 멀리 떨어진 자국 영역에 머물러야 했다.
자연스레 먼 거리에서 지상 표적을 타격할 수 있는 스칼프를 비롯한 장거리 공대지미사일과 정밀유도폭탄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반면 전투기와 공격헬기가 전선에서 지상군을 공격하는 근접항공지원(CAS)은 재검토 대상이 됐다.

이같은 변화는 크게 두 가지 요소에 영향을 미친다.
우선 신형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만으로도 노후한 전투기의 위력을 크게 높이는 효과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군은 수호이-24 전폭기에 스톰 섀도 미사일을 탑재, 수호이-24의 효용성을 높였다.
북한도 노후한 미그-29 전투기에 신형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을 탑재한 모습을 지난해 5월 공개했다. 지난해 말에는 수호이-25에 독일·스웨덴산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과 유사한 미사일이 장착된 모습이 포착됐다.

전투기가 ‘미사일 트럭’ 역할이 강조되면, 적 방공망을 뚫고 침투해서 임무를 수행하는 스텔스 성능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스텔스 성능을 유지하려면 항공무장을 기체 내부에서 수납해야 하는데, 이는 미사일의 크기와 탑재량 등을 제약하는 요인이 된다.
안전한 공역에서 많은 양의 스탠드 오프 미사일 탑재한 채 오랜 시간 비행하는 능력을 지닌 전투기가 비용 등의 측면에서 효율적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프랑스·중국 등 선점 나서…한국도 서둘러야
실제로 세계 각국에선 F-35A 스텔스기 외에도 장거리 공격력과 더불어 무장탑재량이 높은 4세대 전투기 수요가 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프랑스 라팔과 스웨덴 그리펜이다. 장거리 공대공미사일(미티어)과 공대지미사일(스칼프·타우러스) 외에도 정밀유도폭탄 등을 탑재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프랑스와 우크라이나는 향후 10년에 걸쳐 최대 100대의 라팔 도입 가능성을 포함하는 의향서(LOI)를 맺었다. 구속력 있는 계약은 아니지만, 대규모 라팔 도입을 염두에 둔 중·장기 협력 체계로 거론된다.
이라크도 노후한 F-16을 대체하고자 라팔 14대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인도는 최대 114대 구매를 원하고 있다.
크로아티아와 그리스, 아랍에미리트 등 기존 구매국까지 합치면, 라팔 제작사인 닷소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0년 치 생산분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그리펜도 틈새 시장을 공략하면서 신규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콜롬비아는 노후한 크피르 전투기를 대체하기 위해 그리펜 17대 구매를 결정했다. 태국도 4대를 도입했으며, 향후 최대 12대까지 추가 구매할 가능성도 있다. 페루도 24대를 도입하기로 했다.

영국은 지난해 10월 튀르키예에 유로파이터 20대를 판매하는 계약을 맺었다. 항공무장으론 미티어와 스톰 섀도 등을 장착한다. 튀르키예의 라이벌인 그리스가 라팔을 도입해 미티어와 스칼프를 운용하는 것에 맞대응할 카드를 확보하는 셈이다.
중국·파키스탄이 공동개발한 JF-17도 제3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수출 확대를 꾀하고 있다. 초기에는 저가·저성능 경량 전투기였지만, 최신형인 JF-17 블록Ⅲ는 능동전자주사(AESA) 레이더와 디지털 전투체계, 전자전 시스템 등을 갖췄다.
사거리가 145㎞ 이상으로 알려진 중국산 PL-15E 장거리 공대공미사일, 350㎞ 거리에 있는 지상 표적을 타격하는 파키스탄산 라드(Raad)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탑재한다.
서방 전투기보다 낮은 가격에 장거리 타격력까지 갖추고 있어서 예전보다 관심이 늘어나는 모양새다.

회담에서는 JF-17을 인도네시아에 판매하는 방안이 주로 논의됐다. 규모는 40대가 넘을 수 있다.
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에 JF-17 전투기를 판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는 20억 달러(약 2조9000억원) 규모의 사우디 차관을 JF-17 전투기 구매 계약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리비아 동부 지역을 장악한 리비아국민군(LNA)에도 JF-17 16대를 판매하게 된다.
장거리 타격력을 갖춘 라팔과 그리펜, JF-17의 판매 확대는 한국산 KF-21과 FA-50 수출에 상당한 악재다.
라팔과 그리펜, JF-17은 미티어·타우러스·스칼프·PL-15E를 비롯한 검증된 장거리 항공무장을 운용한다. 이를 통해 먼 거리에서 표적을 정밀타격하는 능력을 실전에서 쓸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하고 있다.

미식별 항공기 대응이나 공중 대테러 등의 치안유지 또는 근접항공지원은 가능하지만, 최근 트렌드인 장거리 정밀타격은 불가능하다. 그리펜과 비교하면,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KF-21은 미티어 장거리 공대공미사일을 탑재하고 있어서 공중전 능력은 검증이 되어 있다.
하지만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국방과학연구소(ADD)와 LIG넥스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개발하는 천룡을 사용할 예정이다.
성능 검증이 되어있지 않은 천룡은 오랜 기간 사용된 이력이나 실전경험을 중시하는 보수적 관점을 지닌 해외의 잠재적 무기 구매자들의 의중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수출 증대 차원에서 KF-21과 FA-50에 검증된 장거리 타격능력을 추가해서 전략적 억제력을 높이고, 수출 경쟁력을 강화해 세계 시장에서 그리펜이나 라팔과 맞서는 방안을 서둘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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