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센터의 유령 노동자

김철식 2026. 1. 16.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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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식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 김철식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쿠팡이 세간의 화제다. 대규모 정보 유출 사고를 겪고도 제대로 된 사과나 반성 없이 셀프 조사로 문제를 덮으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퇴직금 미지급 문제에 대한 수사 외압 의혹, 잇따른 사망 및 산재 사고와 그에 대한 은폐 의혹도 제기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실제로 쿠팡에서 산재사고가 매우 높은 빈도로 발생해 왔다.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의 '쿠팡 물류센터 및 배달운송 산재 승인 실태 및 개선과제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2-2025) 쿠팡의 4개 계열사(쿠팡풀필먼트서비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쿠팡이츠서비스, ㈜쿠팡)의 산재 신청이 총 3천993건이었고, 그중 91.3%가 실제 산재로 승인된 것으로 나타났다. 쿠팡뿐만 아니라 다른 생활물류서비스 업체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정도의 산업재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높은 산업재해에도 불구하고 물류센터에서 수행되는 노동은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물류센터, 물류터미널, 대리점 등으로 불리는 많은 물류센터에는 수많은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다. 그렇지만 물류센터는 물건을 적재하고 보관하는 창고라는 무인화된 공간의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을 뿐, 그 내부에서 수행되는 노동은 철저히 가려져 있다.

2021년 필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주한 연구용역 '생활물류센터 종사자 노동인권상황 실태조사'에 참여했었다. 조사연구를 통해 물류센터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유발하는 핵심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인들을 제시했다. 중층화된 도급구조, 야간노동, 장시간 노동, 극심한 노동강도. 물론 이러한 요인은 오늘날 많은 업종의 작업장에서 제기되는 것이지만, 물류센터에서는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 물류센터의 일자리는 불안정 노동을 특징으로 하는 청년 알바의 세계에서도 가급적 피해야 하는, 이른바 '막장 알바'로 간주된다. '물류센터는 사람을 갈아 넣어야 일이 되는 곳이다'는 말을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현장관리자들도 공공연하게 하고 있다.

중층적 고용구조와 초단기 불안정 고용

물류센터에서는 제품의 판매업체나 택배업체에 직접 고용된 소수의 노동자와 쿠팡그룹 업체로부터 물류센터 운영을 위탁받은 하도급 물류관리회사가 고용한 노동자, 그리고 인력공급업체를 통해 물류센터에 투입되는 다수의 간접고용노동자가 함께 노동을 수행한다. 제품 판매업체와 택배업체, 1차 하도급 물류관리회사, 1차 혹은 2차 하도급 인력공급업체로 연결되는 충증적인 고용구조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다만 쿠팡 등의 종합판매회사, 그리고 택배업체 중에서 공공기관인 우체국의 경우 자체 물류센터를 운영하면서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직접 고용이 반드시 정규직 고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의 노동자는 일용직이며, 우체국의 경우 공무원보다는 주로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이 물류센터에서 노동을 수행한다.

이렇듯 물류센터에서는 정규직보다는 무기계약직과 일용직, 다단계 하도급 고용 등 다양한 층위와 형식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업무를 수행한다. 중층적이면서도 불안정한 고용구조는 물류센터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노동권 침해를 유발하는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

직접고용, 간접고용을 막론하고 물류센터에는 유독 일용직 노동자들이 많다. 1일 단위로 근로계약이 체결되고 급여가 지급되는 초단기 계약이 매일 반복된다. 이러한 고용방식은 노동자들에게 극도의 불안정성을 안겨준다. 노동자들은 매일 SNS나 앱을 통해 출근 의사를 알리고, 업체로부터 문자로 확정받아야만 일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무단결근 등 근태가 불성실한 노동자에게 경고성으로 일감을 주지 않는, 이른바 '길들이기'를 통해 노동자를 통제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노동자가 일용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물류센터의 노동은 어마어마한 노동강도와 장시간 노동, 심야 노동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일주일 내내 그것을 감내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매일매일 연속으로 근무하지 않고 중간중간에 하루씩 쉴 수 있는 초단기 계약의 일용직을 선호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심각한 수준의 심야, 장시간 노동

물류센터의 업무시간은 배송프로세스에 따라 달라진다. 발송지와 최종 소비자 배송지에 연결된 지역 대리점의 경우 보통 주간에 업무가 진행되는 반면, 허브 및 서브 터미널의 경우 주로 저녁에서 다음날 아침까지 심야시간대에 작업이 진행된다. 이런 터미널들은 주로 도심의 외곽지역에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으며,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다수가 근무하는 작업장들이다.

야간노동은 다시 엄청난 장시간 노동을 동반한다. 물류터미널의 야간노동은 단지 야간에 일정 시간만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꼬박 밤을 새는 밤샘노동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오후 또는 저녁에 시작된 작업은 다음날 아침까지 진행되며 심지어는 정오까지 지속될 때도 있다.

노동자들이 밤을 꼬박 새며 어마어마한 장시간 노동을 수행하는 현실은 마치 1970년대 구로공단, 청계피복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졸음을 참기 위해 각성제를 먹고 일을 하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19세기 영국 맨체스터 지역 산업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에 비견될 만한 것이기도 하다. 노동권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던 200년 전의 '전설적인' 어마어마한 장시간 노동이 21세기 한국의 물류센터에서 버젓이 재현되고 있다.

극한의 노동강도

물류센터의 노동강도는 작업 공정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업무에서 가벼운 제품부터 수십킬로그램에 이르는 무거운 제품들을 수시로 들었다 내렸다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상당히 노동강도가 높다. 제품을 적재하거나 보관된 제품을 선별하는 집품 업무의 경우 적재 장소로 물건을 찾아다녀야 해 업무 중 도보 이동 거리가 엄청나게 길다. 한편, 상하차, 분류 등의 작업은 컨베이어 벨트에 의존한다. 차에 실린 제품을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거나, 반대로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오는 제품을 화물차에 싣는 작업, 그리고 제품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제품을 올리고 내리는 작업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화물차가 들어오는 속도나 컨베이어 벨트의 이동 속도가 높아지면 업무처리 속도가 빨라지고 노동강도가 높아진다.

노동자들 사이에서 '도망간다'는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업무가 워낙 힘들다 보니 견디지 못해 중간에 일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실제로 포기하고 도망가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류센터의 유령 노동을 드러내고 공론화할 필요성

왜 이런 어마어마한 장시간 노동과 심야 노동, 고강도 노동이 관철되고 있는 것일까? '막장 알바'라는 굉장히 부정적인 평판을 낳을 정도로 물류센터의 일자리가 열악하고 좋지 못한 일자리로 방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사람이 일하는 것을 전제하지 않는, 적재공간 중심의 작업배치를 중요 이유의 하나로 본다. 물류센터를 물품의 적재·보관을 중심으로 사고하게 되면, 물류의 효율성과 수익성을 중심으로 작업이 설계되고 공간이 배치되는 반면,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이나 안전에 대한 고려는 부차적인 것이 된다. 물류센터라는, 창고라는 이미지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물류센터 내부에서 벌어지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관심도 부재하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물류센터에 근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류센터의 노동은 창고라는 무인화된 공간의 이미지에 가려진 숨은 노동이 된다. 적재 공간에 필수적이지만 고려되지 않는 유령 노동(ghost work)이 된다.

따라서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노동권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숨겨진 노동을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 필요하다. 유령 노동의 형태로 침해받고 있는 노동권의 현실을 드러내고 공론화하는 작업이 우선적으로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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