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들거리는 촉감… 세밀한 정물화인듯, 죽음 앞둔 어린양… 경건한 종교화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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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석판 위에 어린 양이 제물로 놓여 있다.
네 다리가 묶인 채 죽음을 기다리는 듯하지만, 표정은 체념보다 수긍에 가까워 보인다.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를 사용해 '스페인의 카라바조'라고도 불리는 17세기 바로크 화가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1598∼1664)의 그림 '하느님의 어린 양(Agnus Dei)'이다.
어린 희생양의 그림 역시 인기가 상당했는지,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작품이 적어도 6점 더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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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 눈길
“장르 경계 넘은 대표적 정물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전에 출품된 이 그림은 단순한 구성에 크기(가로세로 52.1X35.6cm)도 자그마하지만 관람객의 시선을 단번에 잡아끄는 힘을 지녔다. 어두운 배경 속 밝은 양의 모습이 마치 연극 무대처럼 강렬한 대비를 이뤘고, 양털은 손을 가져다 대면 부들거리는 촉감이 느껴질 듯 사실적으로 묘사됐다.
수르바란은 이처럼 경건한 아름다움을 담아낸 종교화와 정물화로 널리 이름을 알렸던 화가다. 종교 지도자들과 지역 귀족들이 그를 적극 후원했고,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수르바란의 초상화와 정물화에 대한 수요가 상당했다고 한다. 1630년경엔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의 화가로 임명되기도 했다. 당시 국왕이 수르바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왕의 화가여, 화가들의 왕이로다”라고 말했다는 야사도 전해진다.
어린 희생양의 그림 역시 인기가 상당했는지,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작품이 적어도 6점 더 그려졌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샌디에이고 미술관 소장본은 그중에서도 특히 종교적 색채가 짙은 작품으로 꼽힌다. 그림 속 선반에는 ‘양처럼’을 뜻하는 라틴어 글귀(TANQUAM AGNUS)가 작게 새겨졌고, 양의 머리엔 은은한 후광이 그려져 있다.
샌디에이고 미술관에 따르면 이는 예수를 희생 제물에 비유한 성경 구절과 관련이 깊다. 변형본을 소장한 프라도 미술관 측은 “이 시리즈는 종교화와 정물화가 교차하는 성격을 띤다”며 “장르 간 경계가 얼마나 유동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정물화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고 평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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