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능 AI 반도체 패키징 '게임 체인저'로 부상한 유리 기판
전력효율, 처리속도 높일 유리 기판
이르면 2026년 양산... 주도권 다툼
가공 기술 넘어 누가 시장 안착할까
편집자주
우주,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에너지 등 첨단 기술이 정치와 외교를 움직이고 평범한 일상을 바꿔 놓는다. 기술이 패권이 되고 상식이 되는 시대다. 한국일보는 최신 이슈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들의 숨은 의미를 찾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 분석하는 '테크 인사이트(Tech Insight)'를 격주 금요일 연재한다.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며 반도체 칩이 깔리는 '바닥판' 세대교체를 둘러싼 기업들의 각축전이 뜨겁다. AI 고도화 수요에 맞춰 늘어날 고성능 반도체 칩들을 만들 수 있는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핵심 기술로 '유리 기판'을 꼽으며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도체 업계는 유리 기판이 첨단 반도체 성능을 결정하는 패키징 공정의 패러다임을 바꿀 '게임 체인저'로 본다. 국내에선 AI 분야에서 신성장 동력을 찾아온 삼성과 SK, LG그룹 계열사 3사가 모두 뛰어들었다. 세 기업은 2026~2028년 양산 목표를 밝히며 글로벌 패키징 시장 주도권을 쥐려 한다. 일부 기업은 AMD나 브로드컴 같은 미국 테크기업에 이미 시제품을 제공하는 걸로 전해졌다.

플라스틱 기판, 인터포저 기법 모두 한계
반도체 패키지 기판이란 반도체 단자와 기기 몸통 격인 메인보드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전기 신호가 오가는 통로도 새겨진다. 2000년대 초부터 주류가 된 플라스틱 계열(유기) 기판이 지금껏 패키지 공정에 두루 쓰이고 있다. 하지만 이 플라스틱 기판은 고성능 AI 반도체 칩인 그래픽저장장치(GPU)와 그 옆에 붙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쓰이기엔 한계에 봉착했다는 업계 진단을 받고 있다.
플라스틱 기판은 AI 반도체 칩들에서 나오는 열에 약해 틀어질 수 있다는 게 문제로 꼽힌다. 그러면 미세공정이 집약된 고성능 반도체 패키징 성능이 떨어지게 된다. AI 성능을 올리기 위해 기판에 배열하는 반도체 칩은 점점 느는데, 강도가 약한 유기 기판은 면적이 제한되는 한계도 있다. 표면이 거칠어 세밀한 회로를 그리기도 어렵다. 열에 강하고 표면이 매끄러운 실리콘을 기판과 칩 사이에 하나 더 끼우는 방식(인터포저)도 AI 칩 제조에 쓰이지만, 패키지 기판 전체 두께가 늘고 전력 손실이 발생한다. 특히, 단가가 유기 기판의 10배 수준으로 비싸다.
이에 유리가 고성능 칩 배열을 위한 미세공정에 적합한 소재로 부상했다. 유리 소재를 기판 중심부에 넣으면 열에 강하고 강도가 높아져 큰 면적의 바닥판을 만들 수 있다. 강력한 성능의 칩들을 늘린 패키징이 가능하다. 표면이 매끄러워 회로 정밀 가공에 용이하며, 실리콘보다 좋은 전력 효율이 강점으로 꼽힌다. 업계에선 유리 기판 도입으로 칩의 전력 효율이 30% 개선되고, 정보 처리 속도는 40% 이상 빨라질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SK '소자 내장', 삼성 '핵심 재료', LG '강도 향상'
국내에선 SK그룹 계열사 SKC가 먼저 나섰다. SKC는 반도체 장비 업체인 미국 AMAT와 함께 '유리 기판 프로젝트'로 자회사 앱솔릭스를 2021년 설립했다. 2024년 미국 조지아주에 유리 기판 공장을 준공했다. 앱솔릭스는 사실상 유리 기판 제조의 전 공정을 내재화했다고 한다. 유리판 안에 쌀알보다 작은 전기 저장·공급 부품들을 집어넣는 '소자 내장 기술'을 강점으로 든다. 기판 공간이 더 확보돼 더 큰 용량의 고성능 AI 칩을 탑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기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유리 기판의 핵심 재료인 '글라스 코어' 제조를 위해 일본 스미토모화학그룹과 올해 경기 평택시에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유리판에 전기 신호가 오가도록 뚫은 구멍에 구리를 입히는 기술 개발을 위해서 금속 표면처리 약품 전문 국내 기업 '익스톨'과 손잡았다. 지난해 세종사업장에 시제품 생산라인도 구축했다.
지난해 진출을 선언한 LG이노텍도 국내 사업장에 유리 기판 시범생산 라인을 구축했다. 유리 정밀가공업체 유티아이와 유리 강도를 높이는 기술을 공동개발한다고 최근 밝혔다. 2028년 양산을 앞두고 기술을 고도화하는 단계라는 얘기다. 문혁수 LG이노텍 사장은 최근 세계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6'에서 "개발은 마쳤지만 생산성 향상과 검사 기술 등 숙제가 있다"고 했다.

기술 장벽 높아... 수율 안정화 관건
유리 기판이 상용화하면 데이터센터 등에 쓰이는 AI 반도체 수요가 집중될 걸로 전망된다. AI 기반 자율주행차와 우주·항공, 국방, 6G 통신 등에도 두루 쓰일 거란 분석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츠앤마켓츠는 상용화 초기로 점쳐지는 2028년 시장 규모가 84억 달러(11조6,000억 원)에 이를 거라 전망했다.
다만, 초정밀 유리 가공의 진입 장벽을 쉽사리 넘기 어려울 거란 관측도 나온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구멍 수만 개를 뚫고, 운반하는 동안 약해진 유리판의 파손을 막을 소재를 강화해야 하는 등 기술력 뒷받침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유리에 잘 붙지 않는 구리를 입히는 증착 기술 개발도 난제로 꼽힌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내열 측면에서 (유리 기판은) 가야 할 길임은 분명하다"며 "수율(정상품 비율) 안정화가 시장 안착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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