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억이면 당선, 6억이면 탈락" 옛말 아니다...여전히 성업 중인 공천 시장
김병기·강선우 촉발한 공천 헌금 논란
"개인 일탈" 선 긋지만 실상 '구조 문제'
7000만원에 범죄자 공천 거래까지 도마
'밥값 대신 결제'까지...편법 판치는 선거
더불어민주당 김병기(서울 동작갑)·무소속 강선우(서울 강서갑) 의원이 공천 헌금 의혹의 중심에 섰다. 검은 돈이 지역구 의원과 시의원 자리를 결정짓는 대가로 쓰였다는 의혹이다. 당 지도부는 "개인의 일탈"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현장 목소리는 사뭇 다르다. "빙산의 일각일 뿐, 암묵적 관행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한국일보 취재 결과, 공천 헌금 비리는 과거의 노골적인 돈봉투 전달을 넘어 훨씬 치밀하게 진화해 지역 정치권을 떠돌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도전의 기회인 공천이, 누군가에게는 수천만 원에 팔리는 '상품'이었다. 이런 '위험한 거래'에 누가 왜 참여하는 걸까.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공천 헌금의 실태를 추적했다.

전과 17범 '맞춤형 경선' 뒤엔 7000만 원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당마다 경선 채비에 분주하던 2022년 4월. 국민의힘 경남 사천·남해·하동 지역 당협위원장이던 하영제 당시 의원은 공천관리위원회에 "책임당원 100% 경선을 치러야 한다"는 의견을 강력히 피력했다. 당협위원장이 공천 방식을 제안하는 게 이례적이진 않지만, 이면에는 하 의원이 미리 설계해둔 '은밀한 판'이 있었다.
하 의원은 2022년 1월 지역의 한 식당에서 현금 7,000만 원이 든 쇼핑백을 건네받았다. 경남도의원 예비후보로 출마하려던 K씨의 누나가 준비한 돈이었다. K씨는 두 차례 지방선거에 도전했으나 모두 고배를 마셨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배지를 달게 해달라"는 간절함이 지역 유력 인사를 거쳐 하 의원에게 검은 돈으로 전달된 것이다. 하 의원 요구대로 해당 지역구 공천 방식은 결국 '당원 100% 경선'으로 확정됐다.
하지만 K씨는 경선 무대조차 밟지 못했다. 폭행죄를 포함해 무려 17회의 형사처벌 전력이 발목을 잡았다. 하 의원 역시 K씨의 전과를 알고 있었다. 하 의원은 "전과가 너무 많아 공천이 불가능하다"며 청탁을 거절했으나, '금품'이라는 구체적 제안에 "경선에 참여할 수 있도록 나름 노력하겠다"며 입장을 바꿨다. '당원 100% 경선'은 일반 시민 여론조사로는 승산이 없는 전과자 K씨를 위해 하 의원이 짜낸 고육책이었다. 하 의원은 결국 이 사건 등으로 구속기소돼 징역 1년 6개월과 추징금 1억6,350만 원이 확정되며 의원직을 잃었다.

'공천 장사' 유령의 귀환… 더 영악해졌다
김병기 의원과 강선우 의원을 둘러싼 의혹은 공천 헌금이 과거의 유산이 아님을 보여준다. 강 의원의 경우,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경 서울시의원으로부터 현금 1억 원을 받고 단수 공천을 해줬다는 의혹으로 제명됐다. 김 의원 역시 동작구의원 출마 예정자들로부터 3,000만 원을 받았다가 돌려줬다는 탄원서가 공개되면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개인 비리'로 치부하며 선을 긋는 모양새지만 정치권 안팎의 시선은 싸늘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공천 헌금은 정당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 속에서 잔존해온 고질적 관행이기 때문이다.
과거 지방선거 현장은 '7당 6락(7억이면 당선, 6억이면 탈락)'이라는 얘기가 회자될 만큼 무법지대였다. '기초의원 1억, 광역의원 3억, 기초단체장 5억'이라는 이른바 '1-3-5' 시장 가격표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2004년 정치자금법 개정을 통해 음성적 창구였던 '지구당'이 폐지되고 선거공영제가 도입되면서 노골적인 금전 거래는 자취를 감추는 듯했다. 하지만 공천 헌금이라는 유령은 선거 때마다 이름을 바꿔 가며 다시 나타났다. 특히 금품을 챙긴 인사들의 당내 입지가 탄탄할수록 거래는 더욱 수월하고 은밀하게 이뤄졌다.
실제로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공천을 돕고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최근까지 법의 심판을 받았다. 3선 의원 출신인 박순자 전 국민의힘 안산시 당협위원장은 시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지난해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됐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와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 역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서초구의원 출마 예정자들로부터 공천 청탁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지방 구습'이라고?… 서울 한복판 지능적 '줄대기'
김병기·강선우 의원 사태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중앙당의 감시가 엄격한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놀랍다”는 반응이 나온다. 서울은 당원 구성이 다양하고 공천 상징성이 커서 국회의원이 독단적으로 권한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게 통설이지만 현장 목소리는 다르다. 서울 동대문구 소속 한 구의원은 “드러나지 않았을 뿐, ‘공천이 곧 당선’인 우세 지역구에서 '줄대기'는 여야 불문하고 일어나는 일”이라고 귀띔했다.
최근에는 수사기관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줄대기 수법이 더욱 지능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1인당 후원 한도를 맞춘 ‘쪼개기 후원’이다. 현행법상 개인이 국회의원에게 기부할 수 있는 한도는 연간 500만 원. 이를 이용해 가족, 친지, 지인 명의를 빌려 수천만 원을 후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의혹의 중심에 선 김경 시의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고액 후원자 명단에 김 시의원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16년 12월. 후원 대상은 당시 동대문구 지역구 의원이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었다. 이듬해 9월 안 장관은 서울시당위원장에 선출됐고 김 시의원은 2018년 4월 민주당 비례대표 시의원 후보 순번 5번을 받아 시의회에 입성했다.
2022년 동작구청장 후보로 경선을 통해 공천을 받은 C씨 역시 2018~2024년 네 차례에 걸쳐 김병기 의원에게 2,000만 원을 후원했다. 특히 2023년에는 20세였던 아들 명의까지 동원해 후원했다.실제 UPI뉴스가 2020~2022년 국회의원에 대한 연간 300만 원 초과 기부자와 2022년 지방선거 기초·광역의원 후보 출마자 면면을 대조한 결과, 300만 원을 초과해 기부한 지방의회 선거 출마자 72명 중 정당 공천을 받은 이는 66명(91.7%)에 달했다. 고액 후원과 공천 사이에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이 밖에 지역구 사무소 유지비 대납, 여론조사 비용 대납 등 후원 방식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김현아 전 국민의힘 의원(경기 고양정)은 차명 계좌를 통해 당협 운영위원들로부터 운영비를 모금한 혐의로 당원권 정지 징계를 받았다. 돈을 입금한 이들은 대부분 국민의힘 소속 전·현직 경기도의회 의원들과 고양시의회 의원들이었다. 김 전 의원을 고발한 지역 시민단체 P플랫폼 김성호 대표는 "사인의 통장으로 월회비를 받아 예산으로 사용한다는 게 불법이란 인식이 없을 정도로, 당협 운영이 망가져 있었다"고 전했다.
"의원 밥값 대신 결제"... '소영주' 비밀의 정원
정치학자들은 정당의 공천 과정을 '비밀의 정원(The Secret Garden of Politics)'이라 부른다. 공천 규정이 모호하고 추상적이라 심사기구의 자의성이 폭넓게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의성은 곧 지역의 '위원장'인 국회의원 의중과 직결된다. 지역의 당 조직을 총괄하는 위원장은 대개 해당 지역구의 현역 국회의원이 맡는다. 민주당은 '지역위원장', 국민의힘은 '당협위원장'으로 이름만 다를 뿐이다.

현행 국민의힘 당헌 87조 5항은 시도당 공천관리위원회가 후보 추천 방식과 자격 심사 시 관할 당협위원장과 ‘협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명목상으론 직접적인 공천권이 없으나, 실질적으로는 기초의원 후보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징계 권한까지 위원장에게 집중돼 있어 지방의원들은 당협위원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먹이사슬’ 구조에 놓이게 된다. 손주하 국민의힘 서울 중구 의원은 "당협위원장이 중앙당에 지방위원들의 징계를 요청할 경우 이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선거 운동에 필수적인 ‘책임당원 명부’ 접근권이 위원장에게만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부산 지역에 예비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한 인사는 "당원 명부 없이는 선거 운동 자체가 불가능한데, 위원장이 특정 후보에게만 명부를 흘려주거나 브로커를 통해 접근해 오는 걸 보면서 허탈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정치 하향 평준화'… 최종 피해자는 국민
이 같은 갑을 관계는 기괴한 사적 복종으로 이어진다. 김병기 의원 사례처럼 구의회 의장의 업무추진비 카드를 국회의원 배우자가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 역시 이런 현실 속에서 불거졌다. 강서구의회 소속 한 구의원은 "국회의원 호출에 지방의원이 달려가 술값을 대신 결제하는 행태를 숱하게 목격했다"고 전했다. 지역 운영을 위해 쓰여야 할 세금이 국회의원의 '사적 금고'처럼 운용되는 것이다.
다만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의 공생 관계는 이해관계가 어긋나는 순간 파국으로 치닫는다. 지역 사정에 정통한 한 구의원은 이들의 관계가 변질되는 시점을 '총선 이후'로 꼽았다. 그는 "지방선거와 다음 지방선거 사이에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있다"며 "총선 때까지는 국회의원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던 지방의원들이, 총선 종료 후 지방의회 후반기 의장단 구성 등 '자리 배분' 과정에서 자기 지분이 무시당하면 반대파로 돌아선다"고 설명했다. 최근 김병기 의원을 향한 공천 헌금 탄원서가 터져 나온 동작구의회 사태 역시, 의회 내 예산결산특별위원장 자리를 두고 김 의원 측과 일부 구의원들 사이의 '자리싸움'이 폭로전의 기폭제가 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윤왕희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교수는 "기초 단위로 내려갈수록 후보자들이 국회의원의 하수인처럼 기능하는 측면이 강하다"며 "매관매직으로 자리를 산 이들이 지역 의회에서 제대로 된 의정 활동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공천 헌금은) 단순히 개인 비리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지역 정치가 중앙 정당에 종속된 '정치의 하향 평준화'가 낳은 비극"이라고 진단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자리를 사기 위해 지출한 비용은 필연적으로 이권 개입을 통한 '벌충'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지방 행정은 부패의 늪에 빠지게 된다"며 "돈과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은밀한 거래'의 최종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라고 지적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6011508350005878)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황은서 인턴 기자 hes0803@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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