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돌고 나니] 그분이 답장을 보내와 너무 기뻤다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2026. 1. 15.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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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퉁이 돌고 나니] 그녀가 답장을 보내주자 너무 기뻤다

‘혹시 선생님이 병세가 악화돼 메시지를 받을 수 없게 되셨다면 어찌하나!’ 생일 축하 문자를 보내려다 멈췄다. 선생님은 지난가을 호스피스 병동에서 나와 자택에서 지낸다. 당시 나는 ‘월간조선’ 기사를 보고 선생님께 전화로 문안했다. 선생님은 여전히 아름답고 또렷한 목소리로 내게 “모든 것은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하셨다. 크나큰 위로가 되었다.

그분에게는 평생 따라다니는 이름이 있다. ‘한국인 최초 유럽의 프리마돈나’. 그는 지난 10여 년간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음악 학교를 세우고, 우물 40여 개를 파서 희망을 주었다. 하지만 몇 해 전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 항암 치료는 받지 않고, 여생을 믿음과 평안 중에 지낸다.

선생님은 천주교인이지만 20여 년 전 몇 해에 걸쳐 함께 성경 공부를 했다. 특별히 찬양으로 기쁨을 누렸다. 당시 선생님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은퇴를 앞두고 주님 앞에서 지나온 삶을 정리하고 있었다. 댁에 가보니 기도실을 따로 만들고 수도자로 살고 있었고, 기도 중에 받은 신비로운 은혜 체험을 고백했다.

자동차는 승합차로 바꾸었다. 나눌 물품을 가득 싣고 직접 운전해 고아원, 양로원을 찾아 노래로 그들을 위로했다. 때로는 성당이나 교회에서 찬양했다. 당시 성당에서는 ‘현대 기독교 음악(CCM)’을 가볍게 여겨 잘 부르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부르면 모두 거룩한 감동에 사로잡혔기에 성당도 CCM에 문을 활짝 열었다. 거룩함과 속됨이 따로 있겠는가! 어떤 마음, 어떤 체험과 고백이 작동하느냐가 중요하리라.

아프리카도 오가며 가장 어렵고 힘든 곳을 찾아 기도했다. 그러다 평생 헌신할 곳을 찾고 재산을 모두 정리했다. 말라위에 처음 음악 학교를 열었을 때는 뜻밖의 벽에 부딪혔다. 9시에 모이자 하면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시계도 시간 개념도 없이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사는 세상이었다. 선생님은 그들을 바꾸려 하기보다 그들을 이해하며 기다렸다. 진실한 기도와 사랑이 그렇게 이끈 것이리라!

선생님은 유럽을 다녀오면서 내게 그림을 찍은 사진을 하나 선물한 적이 있다. 베드로와 요한이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는 모습의 작품이었다.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아 금빛 액자에 넣어 지금까지도 서재에 두고 있다.

문득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선생님이 생일 축하 문자를 받을 수 없다 해도 하늘에서 받지 않겠나 생각했다. 부활의 소망이 담긴 그림을 휴대폰으로 촬영해 축하 문자와 함께 보냈다. 너무나 기쁘게도 곧 답신이 왔다. “제 생일을 기억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그 작은 그림을 발견했을 때 제 가슴은 기쁨으로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으로 빛나는 두 남성의 눈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활 소식에 달려가는 그림 속 두 남성과 그 그림을 보고 기쁨으로 터질 것만 같았던 한 여성의 가슴은 이미 부활의 소망으로 죽음을 넘어선 세계로 발을 들여놓은 것은 아닐까! 오늘은 죽음을 이긴 믿음에서 영원의 빛이 비쳐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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