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친족상도례 폐지, ‘가족’이란 면죄부 끝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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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가장 가까운 울타리지만 어떤 이에게는 가장 가까운 범죄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 법은 오랫동안 '집안 문제'라는 이유로 가족 간 재산 범죄를 형사 처벌에서 예외로 두었다.
가해 가족을 용서한다면 고소하지 않고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면 그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다.
셋째, 노인 대상 재산 착취 범죄에도 법적 대응의 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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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가장 가까운 울타리지만 어떤 이에게는 가장 가까운 범죄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 법은 오랫동안 ‘집안 문제’라는 이유로 가족 간 재산 범죄를 형사 처벌에서 예외로 두었다. 바로 ‘친족상도례’ 때문이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부터 70년 넘게 유지해 온 이 특례 조항은 부모 자녀 등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 친족 사이에 절도나 횡령이 발생해도 형을 면제하도록 규정했다.
가정의 화목을 지키고 국가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취지였지만 현실에서는 침묵을 강요하는 장치로 작동해 왔다. 대표적인 사건이 방송인 박수홍 씨 사례다. 친형 부부가 박 씨의 출연료 등 수십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되는 과정에서 가족 간 재산 범죄를 처벌할 수 없는 친족상도례의 한계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실제로 이 조항 때문에 치매를 앓는 노인이 자녀에게 부동산을 빼앗겨도 수사가 어려웠고 자녀 몰래 통장을 비우는 부모 역시 형사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피해자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었다.
이런 폐단이 계속되자 헌법재판소는 2024년 6월 친족상도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가족 간 재산범죄 피해자 보호가 충분하지 않고 국가의 형벌권 행사도 과도하게 제한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국회는 친족상도례 폐지 내용을 포함한 형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70년 넘게 이어져 온 낡은 특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개정법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친족 간 재산범죄에 더 이상 ‘형 면제’라는 자동 특례가 적용되지 않는다. 피해자의 고소를 전제로 수사와 재판이 가능해진 것이다. 시부모 장인 장모 등 배우자의 직계존속도 고소할 수 있고 자녀가 부모 통장에서 무단 인출한 경우 절도나 횡령으로 문제될 수 있다. 둘째, 모든 친족 간 재산범죄는 친고죄로 일원화됐다. 가족 관계의 특수성은 인정하되 처벌 여부는 피해자가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가해 가족을 용서한다면 고소하지 않고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면 그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다.
실무 변호사로서 이번 개정은 세 가지 의미가 크다. 첫째, 피해자가 더 이상 ‘가족이니까 참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상담 과정에서 “부모인데 고소할 수 있느냐”고 묻던 피해자들에게 현실적인 법적 선택지가 생긴 것이다. 둘째, 가해자 역시 ‘가족이니까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범죄를 저지르기 어려워졌다. 셋째, 노인 대상 재산 착취 범죄에도 법적 대응의 길이 열렸다. 부산 역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지역인 만큼 이러한 변화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다만 주의할 점도 있다. 개정 규정은 2024년 6월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발생한 사건부터 소급 적용된다. 또한 친고죄는 원칙적으로 범인을 안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고소해야 하며 고소를 취하하면 다시 고소하기 어렵다. 감정적으로 고소했다가 취하하면 처벌의 기회를 잃을 수 있으니 고소 여부는 충분한 상담을 거쳐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사 절차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던 시대는 끝났다. 가족을 지키는 길은 예외가 아니라 책임이다. 친족상도례 폐지를 계기로 피해자의 권리가 보호되고, ‘가족’이라는 이름이 더 이상 면죄부가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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