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꼬막 진미를 맛보고… 남도 사람 인심에 빠지다[박경일기자의 여행]

박경일 전임기자 2026. 1. 1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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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일기자의 여행 - 훈훈한 위로 얻는 벌교 오일장
안부·소식·덕담 나누는 시골 장
사람들의 ‘마음 씀’ 느낄 수 있어
새벽 상인들 모습 에너지 물씬
찬물에 넣느냐 끓는물에 넣느냐
벌교 꼬막 레시피 상인들 논쟁
추억의 뻥튀기, 쌀대신 무 볶아
‘새 모자 어떠냐’ 호떡집 담소
버스 정류장 앉은 할머니들
남편·자식 소재로 이야기꽃
조정래의 ‘태백산맥’ 배경 유명
지금은 소설이 지역색 지켜줘
단순한 문학작품 이상의 의미
보성 벌교의 상설시장은 아케이드 지붕이 있는 실내 시장이지만 4, 9일 장날에는 주차장과 도로 위로 난전이 밀려 나오는 오일장이 된다. 벌교 장날에 이른 새벽부터 좌판에 갯것들을 부려놓은 모습. 이날 부지런한 장꾼들이 장에 나오기 시작한 시간이 새벽 3시 반이었다.

벌교(보성)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 시 한 편 들고서 떠나는 여행

전남 장흥에는 이대흠 시인이 산다. 그는 시인이자, 장흥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캠핑장 관리인이면서 청원경찰이다. 시인과 캠핑장, 청원경찰이란 낯선 조합의 설명은 따로 하기로 하고, 시인의 시(詩) 얘기를 해보자. 이대흠 시인이 2010년 펴낸 시집 ‘귀가 서럽다’에서 시 한 편을 꺼냈다. 시인이 스스로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은 시다.

“기사양반! 저짝으로 쪼깐 돌아서 갑시다 / 어찧게 그런다요 버스가 머 택신지 아요? / 아따 늙은이가 물팍이 애링께 그라제 / 쓰잘데기 없는 소리 하지 마시오 / 저번챀에 기사는 돌아가듬마는…/그 기사가 미쳤는갑소 //노인네가 갈수록 눈이 어둡당께 /저번챀에도 / 내가 / 모셔다드렸는디.”<이대흠 시인의 ‘아름다운 위반’ 전문>

남도의 시골 마을 어디서나 벌어졌을 법한 일이다. 시인은 문학지망생 후배가 장흥의 군내버스 안에서 목격한 사연을, 탄력 있는 리듬과 생생한 사투리의 입말로 옮겨 이 시를 썼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건 ‘할매’의 간청을 이전에도 들어줬고, 또 지금도 들어줄 생각이면서도 겉으로는 짐짓 퉁명스러운 ‘기사양반’이다. 그곳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남도의 정서’란 모르긴 해도, 군내버스 기사의 무뚝뚝한 말씨에 깃들어있는 속정 같은 것이리라.

# 시골 장이 ‘좋은 여행지’인 이유

여행 이야기의 서두에 난데없이 시 한 편을 꺼내 든 건, 이번 목적지가 남도의 오일장이기 때문이다. 시가 그려낸 것처럼 투박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섬세하기도 한 남도 사람들의 ‘마음 씀’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 시골의 오일장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기능이야 도회지의 대형 마트나 백화점과 다를 게 없지만, 시골 오일장에서는 사고파는 것보다 ‘나누는 것’들이 더 많다. 안부와 소식을 나누고, 덕담을 나눈다.

시골 장에 가보면 물건을 사고파는 게 ‘본디 이랬던 일’이라는 게 새삼스레 느껴진다. 제가 산 물건이 자고 나면 문앞에 와 놓이는 ‘새벽 배송’ 속도에 익숙한 대도시에서는 절대로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시골 오일장은 ‘좋은 여행지’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시골 장이 여행자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확장하는 관계의 경험’이다. 오일장에서는 누구나 처음 만난 이들과도 스스럼없이 말을 섞고, 걱정을 하고 안부를 묻는다. 이해득실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다. 오로지 ‘선의의 관계’다. 이런 경험은 도시에서 입은 관계의 상처쯤은 능히 치유하고 남을 만큼 훈훈한 위로가 된다.

언 땅을 뚫고 싹을 낸 봄나물이며 갓 잡아 올린 싱싱한 갯것들이 펄펄 뛰는 시장에서는 날 선 추위와 고된 노동을 이기는 삶의 힘을 생각하게 된다. 엄동의 추위 속에서도 흰 입김을 뿜으며 어둑한 새벽을 여는 상인들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신년 초에 세웠던 다짐의 결기가 느슨해지기 시작할 무렵이라서 그럴까. 겨울 오일장 풍경은 느슨해진 일상에 끼얹는 한 바가지 찬물 같다. 이만하면 오일장을 권하는 이유가 이해됐을 법하니 장으로 떠나보자.

벌교시장의 ‘털보꼬막수산’ 주인장이 꼬막을 자루에 담고 있다. 새꼬막 한 자루에 ‘굵은 놈’은 3만 원, ‘잔 놈’은 2만 원을 받았다.

# 꼬막 레시피와 벌교 사람의 자존심

전남 보성의 벌교 오일장에 간다. 남도 끝의 벌교는 여자만(汝自灣)의 찰진 갯벌이 있고, 갯벌보다 더 진득한 남도의 정서가 스며있는 곳이다. 게다가 벌교에는 지금 속살이 들어찬 달보드레한 맛의 제철 꼬막이 흔전만전하다.

벌교를 대표하는 건 꼬막이다. 꼬막이 많기도 하고, 또 좋기도 하다. 벌교 시장에는 좌판마다 쌓아놓은 꼬막 자루가 지천이다. 그걸로 튼튼한 진지(陣地)를 쌓는다면 함락 불가의 요새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을 정도다.

벌교 사람들의 꼬막 사랑은 유별난 데가 있다. 그걸 눈치채게 된 계기가 있었다. 등산복 차림을 한 외지인이 꼬막 한 자루를 사면서 시작된 사건이다. 알 굵은 꼬막 한 자루를 받아든 외지인 손님. ‘제일 존 놈’을 골라서 내주고 뿌듯해하던 어물전 주인에게 ‘꼬막 잘 삶는 법’을 물었겠다.

‘이러저러하면 된다’는 대답이 이어졌는데, 그걸 듣던 주변 사람들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생선가게 주인이 말을 보태자 쪽파를 다듬던 할매가 나섰고, 방앗간 집 아저씨와 미장원 집 아주머니가 참전했다. 나중에는 장 보러 나온 손님들까지 무차별로 가세했다.

논란은 두어 가지였는데, 끼어든 이들은 사안에 따라 두 패로, 혹은 세 패로 나뉘었다. 첫 번째 논란은‘꼬막을 찬물에 넣느냐, 아니면 끓는 물에 넣느냐’는 것. 팽팽히 맞서던 이들은‘물이 펄펄 끓으면 찬물을 타 꼬막을 넣는’ 타협안으로 합의를 봤다.

다음은‘삶은 꼬막을 바로 꺼내느냐, 잔열에 더 익혀 꺼내느냐’를 놓고 벌어진 대립. 두 패로 나뉜 의견은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 단번에 의견일치를 본 건 딱 한 가지. 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꼬막을 삶을 때 한비짝(한 쪽 방향)으로 저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걸 지켜보면서 알게 된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첫 번째는 벌교 사람들에게 꼬막요리에 관한 한 다들 저마다의 레시피가 있다는 것. 또 하나는 각자의 레시피마다 일종의 자존심 같은 게 스며있어 누구도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벌교에서 먹은 꼬막 맛이 훌륭했던 건 알고 보면 다 이유가 있었다.

벌교 시장에서 가까운 ‘벌교김내과의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 스마트폰을 가진 ‘할매’가 절반이 넘는데도 딱 한 명인 남자 말고는 휴대전화를 꺼내 보지 않았다.

# 떠들썩한 시골 오일장에 들어가다

벌교는 자그마한 소읍이다. 전남을 통틀어 읍 중에서 면적은 가장 넓지만, 인구는 갈수록 줄어서 1만 명 선을 위협받고 있는 처지다.

‘절대로 하지 말라’는 당부를 무시하고 가서 주먹 자랑을 했다 한들, 벌교에서 그걸 들을 이가 몇이나 될까 어림잡아 봤을 정도다.

벌교읍 인구가 가장 많았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66년이다. 그때 4만5633명이던 숫자가 60년 만에 4분의 1토막도 더 났다.

1975년 개교한 벌교여고는 그 무렵에 학생이 크게 늘어 금세 18학급으로 불어났다. 한 반 학생이 60명이 넘던 ‘콩나물교실’ 시절의 얘기다.

지금 벌교여고는 한 학년에 반이 하나다. 학년마다 학생은 10명 남짓. 전교생이 28명이니 ‘한 학급’ 수준이다.

인구 감소는 지역 쇠락의 직접적인 지표다. 인구 감소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게 시골 장이다. 벌교 장도 인구 감소의 영향을 피해갈 수 없었다.

예전의 오일장 추억을 묻는 질문에 벌교 사람들은 ‘몰라보게 쪼그라든’ 인구 얘기부터 시작했다.

“지금 이건 장(場)도 아녀. 가찹게(가깝게) 잡아 십수 년 전만 해도 벌교 장이 여간 컸제라. 소전까지 섰을 때는 장이 참말로 재미졌네. 북치고 장구치고, 윷놀이도 허고 엿치기도 허고….”

“소 판 돈 걸고 노름 허다가 멱살잡고 쌈 허고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고 안 했소. 이제는 다 지난 얘기제.”

방앗간 집 주인은 장 분위기가 예전 같잖다며 연신 손사래를 쳤지만, 외지인이 보기에 벌교 장은 아직 위세가 자못 당당해 보였다. 그래도 경기가 좋지 않아 그런지, ‘흥청거린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장마당에 갯것들을 잔뜩 펼친 할매가 이야기를 보탠다.

“가만히 집에 있음 아까와서, 새복(새벽)부텀 나와 앙겄기는 했는디(앉기는 했는데). 요거 쪼까 폰 게(판 것이) 다여. 인구가 줄어서 긍가(그런가), 날이 추워서 긍가. 장에 사람까지 없소야.”

꽝꽝 언 동태며 홍어, 피굴 따위를 펼쳐놓고 앉은 좌판 앞으로 제법 손님이 드는데도, 할매의 말에는 엄살이 좀 섞였다.

밀고 당기는 흥정 끝에 동태 몇 마리를 사가는 손님에게 할매가 옆 좌판을 가리키며 한마디 했다.“고구마 쪼까 사가소. 내 싸게 줄랑께.”

고구마 박스를 펼쳐놓고는 아직 개시조차 하지 못한 옆자리 할매가 영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할매는 나중에 숫제 생선은 놔두고, 고구마 팔기에 나섰다.

“아따매. 어째야 쓰까잉. 이 할매가 고구마 오늘 다 폴아야(팔야야) 쓴디(하는데). 아짐, 고구마 잔(좀) 사시랑께라. 마수 좀 해줏시요잉.”

벌교 장날에 나온 뻥튀기 장수 트럭. 보리를 막 볶아낸 뻥튀기 기계에서 김이 펄펄 난다.

# 장날의 뻥튀기와 호떡

벌교 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건 뻥튀기였다. 이날 벌교 장에 나온 뻥튀기 장수만 셋이나 됐다.

뻥튀기 기계 앞에는 저마다 곡식 따위를 넣은 그릇이며 대야가 사람 대신 길게 줄을 서 순서를 기다렸다.

의아했던 건 뻥튀기 행상이 붐비는데 정작 “뻥이오”를 외치는 소리나 대포 같은 ‘펑’ 소리를 좀처럼 들을 수 없었다는 것.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에 이제는 뻥튀기 기계까지도 진화한 것일까.

“먹을 거가 지천인 시상에 요즘 아그들이 뻥튀기를 묵 간디(먹겠어). 쌀이며 떡을 튀기러 오는 사람이 요즘에는 읎서. 다들 보리나 옥시기(옥수수) 같은 거를 가져와서 뻥튀기 기계로 볶아 달라고 하제. 차로 끓여 묵을라고. 요즘에는 깎아 말린 무시(무)를 갖고 오는 손님이 늘었어. ‘무시 물’이라고도 허고, ‘무시 차’라고도 허등만. 그게 소화에 그렇게 좋담서(좋다면서).”

시장통에서 튀밥이며 뻥튀기는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그래도 뻥튀기 장수는 차 재료를 볶느라 여전히 분주하니 그것만 해도 다행인 걸까.

“일은 더 늘어난 턱이여. 근디 말이여라, 뻥튀기를 튀기면 ‘와’ 하고 몰려들던 아그들이 읎서. 똘똘해 뵈는 아기에겐 한 줌 쥐여 줌시로(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지. 시방은 그런 게 없응께 별 재미가 읎제.”

벌교 장에서 뻥튀기만큼 인기가 있는 간식이 호떡이다. 벌교 오일장에는 호떡 집이 두 곳이다. 작년에 생겼다는, 아저씨가 파는 번듯한 포장마차 호떡도 있지만, 시장통 한가운데서 앉은뱅이 좌판을 펼친 아주머니가 굽는 호떡이 더 인기다.

벌교 오일장에서만 올해로 20년째. 고흥의 동강장에도 나간다며 호떡 경력이 35년쯤은 된다는 아주머니는, 찹쌀가루 반죽이며 흑설탕 소의 배합을 손수 다 한다고 자랑했지만 장사가 잘 되는 이유는 따로 있는 듯했다. 좌판 앞 목욕탕 의자에 앉은 할매들이 나누는 수다가 호떡 맛을 더해줬다.

# 집에 우두커니 있음… 눈물이 나

호떡을 굽느라 분주한 아주머니 앞에 분홍 털모자를 눌러 쓴 최인자(82) 할매가 다가와서 말했다.

“모자가 못 쓰면 바꿔 돌라 할텡께 봐봐.”이게 대체 무슨 얘길까. 몇 번을 다시 물어 해독해본즉‘가게에서 모자를 샀는데 그게 안 어울리면 바꿔달라고 할 테니까 봐달라’는 얘기였다.

모자 쓴 모습을 봐줄 사람이 없어 장에서 산 모자를 쓰고서 한 동네 아주머니가 하는 호떡집을 찾아온 길이었다.

할매와 호떡집 아주머니 사이에 짧은 문답이 빠르게 오갔다.“별시러?” “아니.” “괜찮여?” “좋아, 색이 이뻐.”

호떡을 먹던 손님들까지 모자 색이 곱다고 칭찬하자 기분 좋아진 할매가 젊은 시절 얘기를 꺼냈다.

“나(내)가 과역장에서 옹기 장수를 했단마씨. 크게 했어. 작게 안 해. 지금도 자석(자식)들에게 돈 돌라고(달라고) 안 하고 그 돈을 농협에 두 반데(두 군데) 두고 이래 쓰고 댕겨.”

자랑은 이어진다.“이래 봐도 젊어서 노래를 겁나게 잘혀서 남자들이 울었어. 오죽 하믄 남자들이 다 울었으까잉.”찹쌀호떡을 쥐고 듣는 고흥 과역 오일장의 ‘노래 잘하던 처녀 옹기장수’의 일대기는 거의 대하소설이다.

자식 얘기로 넘어가자 할매 눈에 금세 눈물이 비쳤다.“큰아들이 작년 봄에 죽어부렀어. 딸 서이(셋), 아들 서이(셋)였는디. 그라서 집에 있기가 싫소. 집에 우두커니 있음 눈물 나와.”

장을 다 본 할매가 분홍모자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정류장에 나와 앉은 할매는, 한 시간도 더 넘게 버스를 기다려야 할 참이다.

양지쪽에 줄줄이 앉아 버스를 기다리던 할매들의 대화 주제는“농기계도 다 팔아 불고, 광주 조대병원 입원 중인 영감을 과연 요양병원으로 보내야 쓸 것인가’다. 그 얘길 꺼낸 할매는 1남 3녀 자식 건사하느라 뼈 빠지게 고생한 남편 얘기 끝에 스스로 답을 냈다.“워쩔껴. 할 수 없제. 나이가 있는디….”

중도방죽 주변의 광활한 습지와 갈대밭. 오후 나절에 해가 비껴들 무렵의 경관이 가장 좋다.

# 태백산맥, 벌교의 시간을 지키다

벌교에서 꼬막만큼, 아니 꼬막보다 더 유명한 것이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이다. 태백산맥은 원고지 1만5700매의 대작이다. 1983년 9월 ‘현대문학’에서 연재를 시작해 1989년 한길사에서 4부 3권이 완간됐다.

소설은 벌교읍을 주 무대로 8·15광복부터 1953년 휴전협정까지를 배경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조명한다. 일부 묘사에 시비가 있었고 이념 논쟁이 벌어진 적도 있지만, 소설이 이룬 문학적 성취는 누구도 의문을 달지 않는다.

벌교 사람들에게 ‘태백산맥’은 문학작품 이상의 의미다. 소설 속의 이야기는 거기서 살아온 사람들이 땅에 찍은 지문이기도 하고, 그들의 상처이자 치유의 이야기여서다.

소설이 재료로 삼은 건 벌교가 건너온 격동의 시간. 땅에 새겨진 역사는 그대로 소설이 됐지만, 이제는 반대로 소설이 땅을 지키는 버팀목 역할을 한다. 소설의 힘이 벌교의 오래된 시간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는 얘기다.

소설은 벌교 사람들에게 제가 살아온 공간의 가치를 새삼 되돌아보게 했다. 소설이 아니었더라면 진작에 버려지고 지워졌을 법한 공간이 벌교 곳곳에 예전 모습 그대로 살아 남아있는 이유다.

벌교에서 가장 이름난 명소 보성여관. 여행자들을 위한 카페로, 숙소로 이용되는 공간이다.

# 책 한 권 들고 시간을 거슬러 가는 길

벌교에 가면 의도하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소설 태백산맥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공간에 대한 감회의 깊이야 다르겠지만, 소설을 읽지 않았어도 벌교를 여행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읍내 모든 곳을 다 빠짐없이 걸어서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벌교는 작다. 골목 곳곳을 죄다 둘러본다 해도 반나절로 넉넉하니 느릿느릿 걸어도 좋다.

벌교 여행의 대표명소는 일제강점기 지은 ‘보성여관’이다. 태백산맥 소설 속에서 ‘남도여관’으로 등장하는데, 국가유산청 소유로 문화유산국민신탁이 관리하며 카페 겸 숙소로 운영하고 있다.

요즘 벌교여행의 최고 명소로 떠오르는 곳은 ‘모리씨 빵가게’다. 버터, 계란, 우유를 넣지 않고 만든 통밀건강 빵이 대표 메뉴인데, 점심시간쯤이면 그날 만든 빵이 다 팔려 나갈 정도로 인기다.

벌교에는 여순사건 참상이 새겨진 ‘소화(昭和)다리’도 있고, 벌교 지명의 기원이 된 ‘홍교(虹橋)’도 있다. 다리가 놓인 벌교천 이쪽저쪽에 태백산맥문학관과 소설 속 무대 ‘현부자네 집’과 ‘김범우 집’이 있다. 벌교 갯벌을 간척한 일본인 지주 ‘나카시마(中島)’의 한자를 우리 식으로 읽어 이름 붙인 ‘중도방죽’도 빼놓을 수 없다. 중도방죽 갈대밭에서는, 이즈음 벌교가 보여주는 가장 근사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 시인과 청원경찰

전남 장흥의 유일한 해수욕장은 안양면의 수문 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 뒤편 야트막한 언덕 위에는 장흥군이 직영하는 ‘블루투어 오토캠핑장’이 있다. 이대흠 시인은 이 캠핑장에서 근무한다. 공무직이나 기간제 공무원이 아닌 시인에게 군 소유 캠핑장 운영을 맡길 수 없어 고심하던 장흥군이 찾은 묘안이, 시인에게 준공무원쯤 되는 ‘청원경찰’ 타이틀을 달아주는 것이었다. 여기까지가 ‘시인과 캠핑장과 청원경찰’이란 낯선 조합에 대한 설명이다.

박경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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