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왕세자 레자 팔레비… ‘이란의 봄’ 몰고 돌아올까[Global Focus]
개방적 분위기였던 팔레비 왕조
반정부 시위 격화되자 美와 회동
왕조재건 아닌 자유·민주화 공언
러시아·튀르키예·오스만 제국
20세기 혁명·쿠데타로 막 내려
스페인 등 몰락 후 복고 사례도

반정부 시위 격화로 이란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이끄는 신정체제 정권이 코너에 몰리면서 1979년 이슬람 혁명 당시 망명한 팔레비 왕조의 복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왕가의 마지막 후계자인 레자 팔레비 왕세자는 최근 각종 서방 매체를 통해 이란 국민에게 시위 참여를 독려하고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중동특사와 비밀 회동을 하는 등 본격적으로 본국 복귀를 노리는 상황이다. 그는 신정체제가 무너질 경우 자신이 직접 이란의 세속화·민주화를 이끌겠다고 공언까지 했다. 팔레비 왕조의 향후 운명에 시선이 집중되면서 과거 이들처럼 혁명으로 무너진 왕조들과 한 번 무너진 후에도 다시 재건에 성공한 왕조들의 역사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개방적이었던 팔레비 왕조…‘마지막 핏줄’ 레자 팔레비 왕세자= 팔레비 왕조는 1925년부터 1979년까지 이란을 다스리던 왕조다. 왕조의 첫 시작은 레자 샤 팔레비가 열었다. 18세기 후반부터 이란을 통치하던 카자르 왕조의 군인이었던 그는 1921년 쿠데타를 일으켜 1925년 왕위에 오르면서 팔레비 왕조의 첫 샤(국왕)로 등극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1년 이란이 연합군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국과 소련이 이란 공격을 감행하자 그는 왕위에서 내려온 뒤 망명했고, 아들이었던 무함마드 레자 팔레비가 왕조의 2대 샤로 왕위를 계승했다. 세속적 이슬람 신도였던 무함마드 레자 팔레비가 이란을 통치할 당시 여성들이 청바지 등 원하는 의상을 입을 수 있을 정도로 사회 분위기가 개방적이었고, 외교적으로는 이스라엘을 정식 국가로 인정할 정도로 서방과 가까웠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은 근본주의 이슬람 신도들과 율법자들의 반발을 불렀고, 결국 이들 율법자 중 한 명이었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전 최고지도자가 1979년 이끈 이슬람 혁명으로 왕조는 막을 내리게 됐다.
무함마드 레자 팔레비가 이슬람 혁명을 피해 망명을 떠났을 당시 그의 아들이었던 레자 팔레비는 불과 17세였다. 그는 혁명 직전 조종사 훈련을 받기 위해 미국 텍사스주에서 유학하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병환이 깊어지자 망명지였던 이집트 카이로로 이동해 가족들과 합류했고, 그곳에서 약 2년 후 아버지의 사망을 지켜봤다. 아버지의 죽음 후 팔레비는 “이란의 합법적 국왕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는 국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헌법 선서와 팔레비 왕조의 3대 샤 즉위를 45년 넘게 미뤄왔다.
혁명 후 팔레비 왕세자는 이란의 왕정주의자들 사이에서 가장 강력한 반정부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슬람 혁명 이전 이란의 개방적 사회 분위기와 진보적 정치 질서를 상징하는 인물로도 자리 잡았다. 혁명으로 이란 사회가 급격하게 폐쇄화하고 정권의 핵무기 개발 등으로 인해 시작된 서방의 경제 제재로 이란 경제가 파탄 나자 일부 국민은 팔레비 왕조 시절에 향수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팔레비 왕세자는 그가 왕조 재건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팔레비 왕조의 3대 샤로 즉위하는 대신 현 신정체제 정권을 우선 전복시키고, 이란 국민이 자유롭게 미래 지도자와 정치 체제를 결정할 수 있는 민주적 절차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시위를 계기로 이란 복귀를 저울질하는 팔레비 왕세자는 이란의 민주화를 약속했다.
◇군사 쿠데타·혁명에 막을 내린 역대 왕조들= 이란의 팔레비 왕조 이외에도 러시아, 라오스, 이집트, 튀르키예, 에티오피아 등을 통치하던 세계 각국의 왕조들은 20세기 초·중반 들어 공산주의 혁명이나 군사 쿠데타로 막을 내렸다. 로마노프 가문은 1613년부터 300년 넘는 시간 동안 러시아 제국을 통치했으나 1917년 러시아를 뒤덮은 공산주의 혁명인 ‘2월 혁명’과 ‘10월 혁명’ 이후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 2세가 가족들과 함께 총살로 생을 마감하며 막을 내렸다. 1707년부터 라오스를 통치한 루앙프라방 왕조는 약 300년 만인 1975년 몰락했다. 루앙프라방 왕조는 19세기 후반부터 서구 열강의 개입과 프랑스 식민지 시대를 지나면서도 명맥을 유지했으나 공산주의 정당인 라오 인민혁명당(파테트라오)과의 25년 내전 끝에 결국 종말을 맞게 됐다.
자신들의 부하였던 군인들이 일으킨 쿠데타로 인해 끝난 왕조들도 많다. 역대 이슬람 국가 중 가장 강력한 군사력과 국력, 영토를 지녔던 오스만제국의 오스만 왕조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스만 왕조는 1299년부터 약 600년간 제국을 다스렸으나 1908년과 1913년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쿠데타로 인해 입헌군주제가 채택되고 급진파 장교들의 일당 독재가 시작됐다. 결국 독일 편에 서서 참여한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영토 대부분을 잃는 등 혼란에 빠졌고, 현 튀르키예의 국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튀르키예 공화국을 건국하면서 왕정은 폐지됐다. 군사 쿠데타가 직접적으로 왕조를 끝낸 것은 아니나, 사실상 왕정 폐지로 가는 역사의 시발점이 됐던 것이다. 이외에도 이집트의 무함마드 알리 왕조와 에티오피아의 솔로몬 왕조가 각각 1952년, 1974년 발생한 군사 쿠데타로 마무리됐다.
◇스페인·캄보디아 등에서는 몰락한 왕조 부활= 반면 일부 왕조는 몰락 후에 다시 왕정이 복고되며 부활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스페인의 부르봉 왕가다. 스페인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내전과 쿠데타 등으로 왕정의 폐지와 복고가 반복됐다. 1931년 총선에서 공화주의자들이 승리하며 왕정이 폐지되고 스페인 제2공화국이 수립됐는데, 이후 벌어진 내전에서 승리한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1947년에 공식적으로 왕정 복고를 선포했다. 다만 왕정 복고 이후에도 프랑코 장군이 섭정으로 독재를 하다 그가 사망한 1975년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즉위해 부르봉 왕조가 다시 이어졌다. 스페인 이외에도 캄보디아의 노로돔 왕가도 쿠데타로 인해 끊겼다가 1993년 노로돔 시아누크 전 국왕이 복귀하며 다시 이어졌다.
‘불가리아의 차르’로 불리던 시메온 2세는 6세 때 왕위에 올랐으나 1년 만인 1944년 발생한 쿠데타로 인해 결국 해외로 망명했는데, 민주화 후 불가리아로 돌아와 2001년 총리로 선출됐다.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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