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에서 만난 집밥… 마음까지 배부르네[이우석의 푸드로지]
어릴적 먹던 음식과 추억 얽혀
미각에 모양새·소리까지 공존
‘집밥’ 표방한 가정식 식당 늘어
‘풍요 속 결핍’ 현대에 더 각광
맥앤드치즈·뇨키·오반자이…
외국 가정식 메뉴 식당도 인기

연말에는 송년 모임으로, 신년에는 신년 인사로 밖에서 식사하는 일이 잦다. 방어, 과메기, 대게 등 철을 맞은 겨울 먹을거리도 쏟아져 연말에는 이런저런 술자리도 많았다.
외식이 잦을 때일수록 집밥이 그리워진다. 저마다 입맛의 기본인 집밥은 집에서 먹던 음식이지만 반드시 ‘외식의 반대 개념’인 건 아니다. 이제 집밥은 외식에도 진출했다. 당당히 가출한 셈이다. 도심 곳곳에서 집밥을 표방한 식단을 만날 수 있다. 주로 집밥 또는 가정식이란 명칭을 쓴다.
역설적인 이름이지만 ‘집밥(가정식) 전문 식당’도 많다. 주로 밥과 국, 반찬 등 일상식을 내는 형식이다. 특별한 요리가 아니라 찌개와 생선조림 등 익숙, 아니 친숙한 요소가 많다. 집에서처럼 구성도 매일 달라진다. 이를 가정식 백반이라 내세운다.
집밥이란 단순히 밥과 반찬 몇 개 등 식단의 구성을 이르는 말이 아니다. 개인적 입맛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미각적 아카이브(archive)다. 어릴 때부터 먹어 온 음식과 거기에 얽힌 기억과 추억들이 ‘집밥’이란 형이상학적 개념을 구성하고 있다. 미각적 경험에 더해 모양새, 소리와 냄새까지 공존하는 것이 집밥이란 개념이다.

“나는 내가 먹은 것으로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 유사한 말도 많다. 기독교에선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I am what I eat)”라고 했고, 종교를 부정한 독일의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역시 유물론에서 “인간은 먹는 물질로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한술 더 떠 프랑스의 미식가 장 앙텔름 브리야사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고 자신의 저서 ‘미식 예찬’(원제 미각의 생리학)을 통해 말했다.
이런 말의 의미는 한결같다. 인간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몸과 마음이 형성되고 변화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음식을 먹는 행위는 단순한 생존을 위한 수단을 넘어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란 것이다.
집밥은 개인의 인격을 형성하는 기본적 요소다. 이름이야 그저 집밥으로 통일되지만 그 기억은 지문이나 얼굴만큼 다르다. 국적과 인종, 민족, 종교, 수입, 병력, 가족 구성원, 맞벌이 등 생활 환경, 성장 지역 등에 따라 각각 달라진다. 바로 옆집에 살았더라도 서로 다르다. 만약 1000명이 있다면 1000가지의 집밥이 있는 셈이다.
그래서 집밥을 같이 먹는다는 식구(食口)는 혈연 가족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매일 밥을 나누는 사이는 먼 혈연보다 가깝다. 집밥을 나눠 먹는 것은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는 행위다. 단순히 부족한 영양소를 채움이 아니라 서로 공동체로서 함께 의식(ritual)을 갖는 셈이다.
이처럼 소중한 집밥의 매력은 풍요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많은 것이 결핍된 현대 사회에서 다시금 각광받고 있다. 세계 어느 곳의 독특한 요리도, 왕후장상이 먹었다던 진귀한 음식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척척 맛볼 수 있는 세상이 우리 앞에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리 자랑할 것도 없는 제 집밥과 닮은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 음식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다만 자신이 먹던 집밥은 세상 그 어느 식당에서도 재현할 수 없다. 그저 비슷한 느낌을 받고 영혼을 달래기 위해 ‘집밥 잘하는 식당’을 찾는 것일 뿐이다.
집이 아니라 식당에서 사 먹는 집밥, 외식업계에서 집밥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주로 가정에서 해 먹는 일상 ‘메뉴’의 한 종류를 이르는 말이다. 물론 어떤 나라의 ‘가정식(home cooking)’이라 하면 해당 지역의 고유 정서와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정식은 가족이 결여되어 있는 집밥으로서, 취식자로 하여금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로의 메뉴다. 그래서 집밥과 가정식은 얼핏 비슷해 보이겠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선 전혀 다른 음식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가정집’이 아니면서도 집밥을 내세우는 식당 중 시중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가정식 백반집’이다. 백반이야 원래부터 일상식을 표방하던 메뉴라 딱 가정집에서 차리는 상을 낸다. 매일 바뀌는 밥과 국, 여러 반찬을 차려 낸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메뉴를 콕 집어 선택할 수 있는 ‘찌개백반’도 있지만 이럴 땐 ‘가정식’이라 하지 않는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반은 백반보다 뭔가 단계가 하나 더 높은 경지다. 정말 집에서처럼 뭐가 먹고 싶대서 미리 주메뉴를 골라 놓고 해 달라 조를 순 없는 일이니 말이다.
외국의 가정식을 메뉴로 내는 식당도 있다. 해외여행을 가서 현지인 집을 방문했을 때나 먹을 수 있는 메뉴를 파는 식당이다. 한식으로 따지자면 불고기나 냉면집이 아니라 미역국에 생선구이, 반찬과 달걀프라이를 파는 집이다.
미국의 가정식을 파는 식당이 더러 있는데 신기하게도 ‘미국 남부식’을 내세우는 곳이 많다. 여러 지역 중에서도 가장 지역 특성이 확실하달까, 프랑스계 이민자가 많이 살아온 이 지역의 가정식에는 독특한 메뉴가 많다. 연중 기후가 온화한 데다 땅도 비옥하고 해산물도 다양해 우리나라 ‘남도 음식’처럼 푸짐하고 맛있기로 유명하다. 잠발라야, 검보 등 루이지애나주 프랑스계 주민들의 식문화인 케이준 음식이 이들 지역 집에서 만들어 먹는 가정식 메뉴다.
다양한 향신료를 쓰며 전체적으로 많은 양을 푸짐하게 내주는 것이 미국 남부 요리의 특징이다. 특히 우리가 라면 끓이기를 처음 배우는 것처럼 미국인들이 어렸을 적 가장 먼저 습득한다는 요리인 ‘맥앤드치즈’를 가정식으로 즐긴다. 맥앤드치즈는 그저 마카로니를 물에 삶아 치즈에 버무리면 되니 조리도 쉽고 빨리 배를 채울 수 있다.
프랑스 가정식(cuisine bourgeoise·퀴진 부르주아)은 프랑스 중산층 가정의 요리를 이르는 말이다. 프렌치 코스나 파인다이닝에 비해 그리 내세울 것 없이 소박하지만 프랑스 특유의 미각을 자극하는 요소가 많아 맛있기로 소문났다. 주로 비스트로(bistro)라 불리는 식당에서 파는데 값비싸고 어려운 요리가 아니라 닭을 와인에 삶아 내거나(코코뱅), 채소를 자작하게 조려 내는(라타투유) 등 친숙한 메뉴가 많다. 빵과 잼을 곁들여 집에서 먹는 방식이다.

이탈리아에서 가정식을 파는 가게들은 보통 트라토리아(Trattoria)라 부른다. 리스토란테(Ristorante)는 격식 있는 정통 레스토랑, 간단한 음식과 술을 파는 곳은 오스테리아(Osteria)라 한다. 트라토리아는 이들의 중간 정도 포지션인데 이탈리아인들이 집에서 먹는 파스타류와 뇨키, 라사냐 등을 오소부코(Ossobuco) 같은 고기 메뉴와 함께 제공하는 식당이다. 이탈리아에서 로컬 음식을 맛보려면 트라토리아 정도가 제대로 메뉴를 낸다.
일본에는 가정식 식당이란 간판이 많다. ‘집밥’ 마케팅을 일찌감치 시작한 덕이다. 밥에다 미소시루(된장국), 채소볶음, 고기감자 조림 등 정말 집에서 먹는 것처럼 차려 나온다. 일본에선 카레가 대표적 가정식 메뉴라 카레 식당이 한국에 와서 ‘가정식 카레 집’으로 홍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일본 교토(京都)의 일반 가정에서 먹는 집밥 개념은 오반자이(おばんざい)에서 찾을 수 있다. 얼핏 봐도 우리네 백반과 똑 닮았다. 채소 절임, 나물 무침, 두부, 생선 등 반찬 몇 가지와 밥, 국을 준다. 일본인들에게 오반자이에 대해 물어보면 교토 사람들이 먹는 집밥이라 설명한다.
중국의 가정식도 요즘 한국에서 인기다. 워낙 내세울 요리가 많은 중국의 식문화지만 화교나 중국인(대만인 포함)이 집에서 먹던 메뉴가 중국 가정식이란 이름으로 외식업계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토마토달걀볶음이나 감자채볶음, 마파두부, 어향가지 등이 중국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다.

나라를 가리지 않고 가정식 메뉴를 취급하는 식당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어쩌면 우리의 삶이 왠지 공허하기에 결핍을 해소하기 위함이 아닐까. 우리는 매끼 밥을 챙겨 먹었지만, 관계는 굶었는지도 모른다. 새로 한 해를 시작한 지금이야말로 따스한 집밥 한 그릇으로 힘을 얻어야 하는 때다.
놀고먹기연구소장
◇샤이바나= ‘미국 남부 가정식’을 표방한다. 메기 튀김(캣피시 프라이즈)같이 미국 아니고선 보기 힘든 메뉴가 있다. 잠발라야, 에그인헬, 빅보이 칠리 스파게티 등 루이지애나풍 메뉴를 두루 갖췄다. 오리지널 맥앤드치즈는 정말 가정식이다. 체더치즈와 마카로니로만 만들었다. ‘겉바속촉’의 프라이드치킨도 빼놓을 수 없다. 원래 KFC도 미국 남부 요리였다. 서울 중구 태평로1가 84 서울파이낸스센터 B1층.
◇퓨전포차= 상호만 놓고 보면 어찌 여기서 집밥 비슷한 것이라도 먹겠냐마는 직접 지어 주는 뚝배기 밥을 보면 깜짝 놀란다. 갓 지은 밥을 갓김치, 무김치 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집이다. 배추를 넣고 끓여 낸 된장찌개와 멸치볶음, 김, 장아찌 등 밑반찬 면면도 한없이 친근한 가정식의 정수다. 계절 별미를 파는 집이니 요즘 같은 때 삶은 꼬막을 곁들여 먹으면 훨씬 맛있는 ‘부잣집 집밥’이 된다.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2-1.
◇진미= 화교 사회에선 가정식 입맛으로 통하는 요릿집이다. 자춘권(炸春卷), 삼품냉채, 산라탕 등 정통 중화요리도 잘하기로 소문났지만 마파두부와 어향가지 등 화교들의 가정에서 맛볼 수 있는 메뉴가 있다. 다른 곳에선 찾아보기 힘든 중국식 수제비도 판다. 전가복, 동파육, 난자완스, 도미찜, 비파두부 등 손이 많이 가는 주요리는 적어도 하루 전에 미리 주문해야 한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맛로 36.
◇원조 시락국= 나이 지긋한 부산·경남 사람들이 아침마다 먹었다는 것이 바로 시락국이다. 시래깃국을 이르는 방언인데 통영 서호시장에 가면 과연 상인들이 시락국 한 그릇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붕장어 대가리 육수에 된장을 풀고 시래기를 넣은 국 한 그릇이면 하루를 살아갈 충분한 에너지가 생겨난다. 요즘은 관광객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시락국 한 뚝배기와 함께 앞에 늘어놓은 반찬을 맘껏 떠다 먹는 방식이다. 경남 통영시 새터길 12-10.
◇82올리언즈= 분위기만 딱 봐도 미국 남부 소도시 식당 건물이다. 뉴올리언스로 대표되는 남부 가정식 크리올 요리를 판다. 화려한 파프리카 시즈닝 토핑을 얹은 맥앤드치즈, 시푸드 잠발라야, 스테이크 등을 준비했다. 몬테크리스토 샌드위치와 진한 풍미의 라사냐, 홈메이드 뇨키&퐁뒤 등을 시그니처 메뉴로 내세우고 있다. 서울 중구 퇴계로27길 64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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