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택시〉가 피해자들에게 건네는 말, “죽지 말고 복수하세요” [콘텐츠의 순간들]

모범택시를 타고 다니는 히어로가 억울한 피해자의 의뢰를 받아 복수 대행을 한다. 그야말로 만화 같은 내용인데, 까를로스가 쓰고 크크재진이 그린 19금 웹툰이 원작이다. 드라마 〈모범택시〉 시즌 1이 2021년, 시즌 2가 2023년에 방영되며 시즌제로 인기를 끌어왔다.
‘택시회사에서 복수 대행을 하는 김도기 기사’라는 기본 설정만 공유하고 원작과는 상당히 다르다. 원작 웹툰은 김도기의 개인적 원한 중심으로 자잘한 복수를 대행하는 액션물에 가깝다. 드라마는 무지개 택시회사에 모인 김도기, 장성철, 안고은 등의 과거를 하나둘 드러내면서 사회적 이슈였던 실제 범죄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하여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만화적 설정을 유지하면서도 리얼리티를 강화한 〈모범택시〉는 한국형 시즌제 드라마의 모범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고백하자면 나는 〈모범택시〉 시즌 1이 상당히 애매해 보였다. 아동 성폭행, 지적장애인 착취, 불법 웹하드와 리벤지 포르노, 장기 매매 등 한국 사회를 들끓게 했던 강력 범죄들을 다루면서, 단순한 복수의 쾌감을 넘어 피해자의 고통을 심각하게 들여다보고 위로하려는 태도는 분명 인상적이었다. 수많은 부캐를 탁월하게 창조하는 이제훈, 악역처럼 보이지만 선역인 김의성 그리고 표예진 등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와 조화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반면에 복수극의 설계와 과정이 중구난방이고, 우연과 임기응변에 의존하여 해결되는 상황이 너무 많았다. 조직적으로 ‘복수 대행’을 하는 프로의 복수극이 이렇게 허술하다고? 시즌 2를 보지 않은 이유다.
〈모범택시〉 시즌 3의 방영 소식을 듣고 고민했다. 장단점이 명확한데 이토록 인기가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대중은 여러 결함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장점에 몰두하는 것일까? 결국 시즌 1을 다시 보고, 시즌 2를 정주행하고, 시즌 3을 시작했다. 여전했다. 단점은 너무나 명확한데, 장점도 아주 크고 강력했다. 〈모범택시〉의 성공 요인은 복수극을 치밀하고 섬세하게 만들지는 못해도 인물들 특히 피해자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게 만드는 정서적인 효과였다. 비극과 아픔만으로는 너무 무거워지니까 적절하게 코믹 요소를 넣고, 이제훈의 액션 연기로 서비스 장면을 화끈하게 보여주는 것. 그리고 전체적으로 깔리는 복수의 쾌감. 무엇보다 〈모범택시〉를 보는 내내,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사적인 복수는 정말 잘못일까?
그리스와 로마 시대 초기에는 살인 등 중범죄에 대해 피해자의 가족이 직접 복수하는 관행이 있었다. 공동체나 집단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중국에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지 않으면 아들이라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조선 정조 시절, 아버지가 살해당하자 아들 윤항이 살해범을 찾아가 죽인 사건이 있었다.
근대 이후 형법체계가 확립되면서 국가는 형벌권을 독점한다. 그러나 대중이 국가의 공적 처벌을 언제나 정당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사적인 복수의 충동은 끈질기게 되살아난다. 경찰과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이 강한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권력·자본·사회적 지위가 크게 영향을 끼친다면,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는 점점 약해진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에서 사적 복수에 대한 욕구는 쉽게 사라지기 어렵다.

피해자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공적 처벌은 개인의 고통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한다. 범죄는 국가 질서에 대한 침해로 규정되고, 피해자 개인의 상실과 분노는 법률 언어로 환원된다. 판결이 끝나도 피해자의 시간은 여전히 멈춰 있다. 가해자가 충분히 처벌받지 않았다고 느껴질 때, 피해자는 국가와 법이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라는 믿음을 유지하기 어렵다. 복수는 깨진 개인은 물론 사회의 균열을 억지로라도 메우려는 정당한 행위가 된다.
너무 ‘작은 벌’만 받는 가해자
시즌 1에서 일반인의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으로 입수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회사가 나온다. 내부고발자는 밀려나고 구타당한다. 불법과 폭행을 신고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검사장 출신이 법률고문으로 있다는 것, 즉 전관예우로 수사는 진행되지 않는다. 명백한 증거가 없다면 정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지금 한국에서는 ‘전관예우’를 통해 가해자가 수사받지 않거나, 진행되던 수사가 축소되고 종결하거나, 재판에 넘어가도 무죄로 풀려나거나, 터무니없이 낮은 형량을 받는 사례가 허다하다.
시즌 2에는 대리 수술로 환자가 의식불명이 되는 대형 병원이 나온다. 한두 번이 아니다. 원장은 지방에서 대리 수술을 하다가 발각되어 처벌받았지만 겨우 벌금형 정도였다. 개명한 후 서울에서 더 크게 병원을 열어 같은 ‘범죄’를 반복한다. 범죄를 저지르고 제대로 처벌받지 않으면 범죄는 더 대담해지고 되풀이된다.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거나 너무 작은 벌만 받는 상황에서 피해자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해야 할까.
〈모범택시〉는 각종 폭력의 피해자와 죽은 이의 가족에게 ‘죽지 말고 복수하세요’라며 말을 건넨다. 절대 죽지 말라고, 우리가 도와주겠다고.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죽지 말라는 권유에 방점이 찍힌다. 피해자가 다시 희망을 키우고, 제대로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선 정당한 치유가 필요하다. 개인의 노력에 앞서 공동체의 힘으로 피해자를 삶의 자리에 복원시켜야 한다. 그것이 바로 김도기와 장성철의 무지개운수가 하는 일이다. 시청자들이 〈모범택시〉에서 공감하는 지점 역시 복수 자체가 아니라 복수를 통한 치유다. 그들의 복수 대행은 절망에 빠진 피해자를 회복시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필수적 과정이다.
〈모범택시〉는 사회악을 응징하는 복수 판타지를 즐겁게 소비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개인이나 소수집단의 악과 일탈을 넘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법조인, 의사 등 특권층의 구조적인 사회악을 고발하고 응징한다는 점에서 장르적 쾌감도 확실하다.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복수극의 설계가 보다 정교하고 현실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 정도다. 어쨌건 〈모범택시〉의 운행이 멈추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
김봉석 (대중문화 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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