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얼마나’가 아닌 ‘어떻게’를 묻는 시장

김현수 논설위원 2026. 1. 1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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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K 성공한 PEF서 약탈자본으로
기업생존·사회적책임 외면 ‘자충수’
분풀이 규제는 모험자본 위축시켜
투명한 운용관리·이해상충 방지를
[서울경제]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홈플러스 부채를 자본으로 둔갑시키고 보유 자산 가치를 끌어올려 1조 원대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혐의에 대해 법원은 ‘구속할 정도의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한다. 다만 이번 결정이 투자자를 기망하고 약탈적 경영을 했다는 의혹을 해소한 것은 아니다. 남은 판단은 재판의 몫이다.

MBK를 향한 여론은 냉정하다 못해 야박하다. 정치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구속 필요성을 제기했고 시민단체와 노동계 역시 강한 비판과 사법 처리를 촉구했다.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PEF)로 성장하며 신한라이프·코웨이 등 굵직한 투자 성공 신화를 만들어온 MBK는 어쩌다 ‘공공의 적’이 됐을까. 너무 잘나갔기 때문일까, 아니면 탐욕의 끝을 보여줬기 때문일까. MBK 위기의 본질은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한 데 있다. 프로젝트 펀드의 내부수익률(IRR)을 앞세워 기업의 생존과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 결과가 위기를 자초했다. 사모펀드에 무슨 공적 책임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장의 기준은 달라졌다. 과거에는 기업 가치를 얼마나 끌어올렸는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기업을 인수해 성장시키고 다시 매각하는 전 과정이 평가 대상이 되고 있다.

MBK의 혐의는 재판 과정에서 가려질 문제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모펀드 전반에 대한 불신과 규제 압박이 뒤따른다. “사모펀드는 더 이상 좋은 기업을 만들 수 없다”는 금융 당국의 인식이 고개를 들면서 한국 금융시장에서 사모펀드의 입지 자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혁신과 모험자본의 필요 속에서 성장했지만 권위에 도전할 만큼 거대해지자 이를 통제 불가능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억압하려는 기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냉정한 접근이 필요하다. MBK가 곧 사모펀드 전체는 아니다. 지난 20년간 사모펀드는 공공 재원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위험·전략산업에 자금을 공급해왔다. 장기 투자를 통해 연구개발(R&D)과 시설 투자를 확대하고 고용 안정과 산업 경쟁력 강화로 성과를 낸 사례도 적지 않다.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국내 사모펀드 약정액은 2010년 27조 원에서 2024년 154조 원으로 늘었고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사모펀드가 투자한 기업의 연 매출은 12% 증가했고 R&D와 시설 투자도 각각 16%, 10% 늘었다. 수치만 놓고 보면 산업 성장에 기여한 측면도 분명하다. 문제는 자본의 성격이 아니라 자본을 운용하는 방식과 이를 규율하는 제도다. 빠른 투자 결정과 구조조정을 통한 자본 회수를 특징으로 하는 사모펀드의 속도를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는지가 관건이다.

정부와 여당은 ‘제2의 홈플러스 사태’를 막겠다며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중대한 법령을 한 차례라도 위반한 업무집행사원(GP)의 등록을 취소하고 순자산의 200%를 초과하는 차입을 일으킬 경우 그 사유와 관리 방안을 금융 당국에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MBK의 홈플러스 인수 과정에서 문제가 된 차입매수(LBO)를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뒤늦게나마 규제의 빈틈을 메우고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라면 바람직하다. 그러나 분풀이식 규제로 흐를 경우 전체 사모펀드 시장을 위축시키고 국내 운용사와 외국계 운용사 간 역차별을 초래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중복 규제가 아니라 정교한 규제와 시스템이다. 사모펀드가 훨씬 활성화된 미국과 유럽은 이를 억누르기보다 운용 과정의 투명성과 이해 상충 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익성과 결과보다 과정을 검증해 사모펀드의 실패가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먹튀 자본’이라는 불명예를 안은 사모펀드 업계는 추락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차입매수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 경기 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고 이해 상충이 발생할 수 있는 거래에는 투자자 승인 절차를 도입해 편법적 자기거래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 구조조정과 자산 매각 과정에서도 고용과 협력사,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책임 있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제 시장과 투자자들은 사모펀드에 “얼마나 벌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벌었느냐”를 묻고 있다.

김현수 논설위원 hs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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