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미국 버몬트주가 독립 공화국이던 시절

최윤필 2026. 1. 1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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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동부 버몬트(Vermont)주가 독립전쟁 중이던 1777년 1월 15일 '버몬트 공화국' 건국을 선포했다.

독립선언 당시 미 연방은 13개 주였고, '뉴햄프셔 그랜트(Grants)'라 불리던 버몬트 지역은 뉴욕과 뉴햄프셔가 서로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던 일종의 분쟁 지역이었다.

버몬트는 1783년 독립전쟁이 끝나고도 약 8년을 의연히 버텼고, 1790년 뉴욕과의 토지 보상문제가 해결되면서 이듬해 3월 미국 14번째 주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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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버몬트 공화국
독립 공화국 시기인 1777~90년 미국 버몬트주의 공화국 문장. 위키피디아

미국 북동부 버몬트(Vermont)주가 독립전쟁 중이던 1777년 1월 15일 ‘버몬트 공화국’ 건국을 선포했다. 주민 대표들은 그해 7월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노예제 폐지와 보통선거권 도입, 공교육 시스템 도입 등을 명시한 헌법을 제정·공포했고, 이후 약 14년간 독자적인 통화와 우편시스템을 운영했다.

독립선언 당시 미 연방은 13개 주였고, ‘뉴햄프셔 그랜트(Grants)’라 불리던 버몬트 지역은 뉴욕과 뉴햄프셔가 서로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던 일종의 분쟁 지역이었다. 뉴욕은 1664년 영국 왕실 칙령을 근거로 허드슨강 동쪽 전체를 뉴욕 땅이라 주장했고, 뉴햄프셔 총독은 근접성 등을 근거로 해당 지역 토지를 다수에 매각하기도 했다. 토지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도 빈번했다. 그 와중에 1764년 영국 왕실(조지3세)이 그 땅을 뉴욕 소유라 선언하자 뉴햄프셔에서 땅을 매입해 논밭을 일군 지주 등은 민병대를 조직해 뉴욕주를 상대로 무력 항쟁에 나서기도 했다.

1776년 13개 식민지 대표기구 즉 ‘대륙회의’에도 버몬트의 자리는 없었다. 그에 대한 반발이 버몬트 독립 선언이었다. 버몬트 지역은 캐나다 주둔 영국군이 남침해올 경우 거의 무방비 상태였고, 세인트로렌스강을 통해 대서양으로 나아가지 않을 경우 경제적으로 고립될 처지였다. 당연히 해상 통제권 역시 영국과 캐나다가 쥐고 있는 상황이었다.

급기야 버몬트는 영국 왕실과 협상, 독립 정부 승인을 조건으로 군사 동맹을 시도했다. 당시 캐나다 총독 프레더릭 홀디맨드(Frederick Haldimand)와 벌인 이른바 ‘홀디맨드 협상’. 실현되지 않은 그 협상 덕에 버몬트는 전시 영국-캐나다군의 공격을 모면했고, 대륙회의에도 유의미한 압박을 가할 수 있었다.
버몬트는 1783년 독립전쟁이 끝나고도 약 8년을 의연히 버텼고, 1790년 뉴욕과의 토지 보상문제가 해결되면서 이듬해 3월 미국 14번째 주로 인정받았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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