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봉기 칼럼] 축출의 정치가 부른 자멸-정당해산보다 먼저 온 보수 소멸

최미화 기자 2026. 1. 1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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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붕괴는 외부 공격으로만 시작되지 않아
치명적 파열음은 내부에서 발생
원칙 훼손, 책임 회피, 반대를 징계로 봉쇄하면
정당은 ‘정치 조직’ 아닌 ‘권력 유지 기구’ 변질
신봉기(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당의 붕괴는 외부의 공격으로만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치명적인 파열음은 내부에서 발생한다. 원칙과 절차를 스스로 훼손하고, 책임을 회피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징계로 봉쇄하는 방식이 반복되면 정당은 이미 '정치 조직'이 아니라 '권력 유지 기구'로 변질된다. 최근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모습은 법률가의 시선으로 보아도, 보수 시민의 상식으로 보아도 정상적인 민주정당의 운영 방식과 거리가 멀다.

한동훈 전 당대표에 대한 '제명 의결'은 그러한 인식의 전형적 계기가 되었다. 당무감사위와 중앙윤리위를 동원해 한 사람을 제거하는 방식은 형식상 '당내 자율'이라는 외피를 두를 수 있다. 그러나 실질에서는 정치적 결론이 먼저 정해지고, 절차가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의심을 낳는다. 윤리기구가 '형사사법적 수준의 확정에는 한계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민사적 개연성에 가까운 논리로 제명이라는 최고 수위를 선택했다면, 이는 단순한 절차 논란을 넘어 규범감각의 붕괴로 읽힐 수 있다. 제명은 정당 내부에서 사실상 정치적 사형에 해당한다. 그 처분에는 최소한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준"의 확정과 실질적인 방어권 보장이 전제돼야 한다. 그 기준이 흔들리면, 윤리의 이름을 빌린 권력 행사가 된다.

논란을 더 키운 것은 결정이 내려진 시점이 주는 정치적 함의다. 국가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과 동시에 주요 징계가 발표될 경우, 대중은 그것을 단순한 우연으로만 보지 않는다. 정치란 시간의 예술이고, 권력은 종종 우연의 형식을 빌려 의도를 관철한다. 이런 맥락에서 위기의 책임이 지도부에 향하는 국면에서 내부 축출이 단행되는 방식은 부당결부금지원칙의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 서로 성격이 다른 사안을 인위적으로 연결해 '처벌의 명분'을 강화하거나, 위기의 부담을 특정 인물에게 전가하려는 장치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이 책임정치의 원리를 스스로 거스르면, 결국 책임의 공백만 남는다.

지금 장동혁 체제에서 반복되는 심리적 기제는 '방어적 투사(defensive projection)'로 설명할 수 있다. 당의 신뢰가 흔들린 원인은 무엇인가. 극우화, 윤어게인식 강경노선, 숙청성 징계정치, 침묵을 유도하는 내부 공포가 누적된 결과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지도부는 그 책임을 스스로 감당하기보다, "누군가가 당을 흔들었다"는 서사를 만들어 내부의 특정인을 표적으로 삼는 방식에 의존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견디지 못해 타인에게 전가하는 행태, 그것이 방어적 투사다. 그리고 그 투사가 제도적 장치와 결합하는 단계에 이르면, 정당은 정책경쟁이 아니라 숙청경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숙청의 배경에는 권력자의 불안이 스며 있다. 장동혁 대표가 한동훈 전 대표를 대할 때 드러내는 강한 거부감은 단순한 노선 차이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법적 사고의 정밀함, 대중적 확장성, 이미지의 경쟁력, 위기 국면에서의 존재감 등 여러 비교 항목에서 한동훈이 갖는 상대적 우위가, 현 지도부에게는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로 인식될 수 있다. 경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제거의 대상으로 환원하는 접근은 오히려 불안의 크기를 반영한다. 성과로 정당성을 획득하기보다 축출을 통해 권력을 연장하려는 유혹이 커질수록 정치는 거칠어지고 조직은 좁아진다.

그러나 이 축출은 실리조차 분명하지 않다. 자신을 정치적으로 떠받친 전 대표를 내쫓는 동시에, 당대표 징계로 축출됐던 전전대표를 껴안는 선택은 계산의 합리성을 약화시킨다. 정치는 역설의 연합을 만들 수 있으나, 그 역설에는 최소한의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정치적 자산을 파괴하면서 상처의 기억을 다시 불러오는 방식이 무엇을 남기는지 냉정히 따져야 한다. 더구나 보수 진영의 차기 지도자 구도에서 불리한 국면에 놓였음에도, 당권 장악이라는 조직 논리로 탐욕적 의지를 관철하려는 모습은 '미래의 보수'가 아니라 '당내 권력의 자기목적화'로 비친다.

자멸의 궤적은 당명변경 논란에서도 반복된다. 당원들이 요구하는 것은 간판 교체가 아니라 리더십의 쇄신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럼에도 지도부는 얼굴 변경을 회피한 채 간판 변경을 추진하는 모양새다. 더구나 무응답과 답변 거부가 대량으로 존재하는 구조에서, 찬반 응답자만으로 상대적 다수를 만들어 '민의'로 포장한다면 정당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절차적 정당성은 숫자의 기교가 아니라, 참여의 실질성과 동의의 무게로 확보된다. 민주적 정당성을 요식으로만 갖추려는 태도는 결국 정통성을 스스로 깎아먹는다.

침묵하는 의원들의 태도도 붕괴를 가속한다. 지방선거 공천에서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 입을 닫는 행태가 확산될수록, 그들은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당권의 피고용인처럼 비칠 위험이 커진다. 침묵이 생존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붕괴하는 배에서 침묵은 안전장치가 아니다. 국민은 누가 말했고 누가 숨었는지를 기억한다. '찐장동혁'으로 분류되는 일부를 제외한 다수 현역 의원들의 침묵, 그리고 1.5선 당대표의 안하무인식 독주는 국민의힘 붕괴 시나리오를 진행시키는 동력이 되고 있다.

이 모습은 종말을 앞둔 독재자가 마지막으로 총뿌리를 반대파에게 돌리는 현상과 닮았다. 정권이 아니라 당내 권력이지만, 작동 원리는 유사하다. 권력의 끝자락에서 책임을 인정하는 지도자는 드물다. 대신 반대파를 제거하며 자리를 보전하려는 몸부림이 나타나고, 조직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공포로 무너진다. 보수는 원래 법치와 절제, 책임의 정치에 기대어 존재한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그 기반을 스스로 파괴한다면, 보수의 자동소멸은 과장이 아니다. 희망을 외면하는 극우화는 보수를 결집시키는 것이 아니라 말려 죽인다.

정당은 '절차의 공동체'이며 '책임의 조직'이다. 절차를 무시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선택이 누적될수록, 정당은 스스로 정당성을 잃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숙청이 아니라, 더 깊은 성찰과 포용이다. 당명보다 당의 얼굴이, 간판보다 지도부의 책임이 먼저다. 국민의힘이 스스로를 살리고자 한다면, 방어적 투사라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정치로 착각하는 오류부터 멈춰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역사와 민심이 정당해산보다 먼저 결론을 내릴 것이다.

신봉기(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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