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단상)AI는 수도권만의 게임이 아니다: 지역제조업의 현장형 AI 도입 로드맵

대구·경북 제조 현장을 다니다 보면 AI는 결국 수도권 대기업 이야기 아니냐는 말을 종종 듣는다. 데이터센터도, 스타트업도, 인재도 서울에 몰려 있는데 지역 기업이 무슨 수로 경쟁하느냐는 하소연이다. 그러나 2026년의 AI 경쟁은 누가 더 화려한 기술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누가 현장에서 더 빨리, 더 꾸준히 성과를 내느냐로 바뀌고 있다. AI는 연구소의 전시품이 아니라 불량을 줄이고 라인을 멈추지 않게 하며 납기를 지키게 하는 도구다.
대구·경북의 강점은 공정과 설비, 그리고 숙련에 있다. 기계가공, 금속, 자동차부품, 섬유, 식품 등 업종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공정 조건이 조금만 흔들려도 품질이 달라지고, 설비가 한 번 멈추면 납기와 비용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이런 산업에서는 경험 많은 작업자가 이 소리가 나면 곧 베어링이 간다, 이 장력에서는 줄무늬 불량이 난다 같은 지식을 갖고 있다. AI는 바로 이런 지식을 데이터로 검증하고, 재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기술이다. 말하자면 대구·경북은 AI를 만들기 좋은 곳이 아니라 AI로 돈을 벌기 좋은 곳일 수 있다.
문제는 방향이다. 많은 기업이 AI를 도입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챗봇이나 보고서 자동 작성 같은 사무 영역에서만 성과를 찾는다. 물론 그것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제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은 여전히 현장 핵심성과지표다. 불량률, 재작업률, 설비고장 시간, 에너지 사용량, 납기 준수율 같은 지표가 기업의 체력을 결정한다. 그래서 현장형 AI의 첫 원칙은 단순하다. AI를 기술이 아니라 핵심성과지표로 정의하라는 것이다. AI를 도입한다가 목표가 아니라 불량을 20% 줄인다, 돌발정지를 10% 줄인다, 검사 시간을 30% 단축한다가 목표여야 한다.
이제 로드맵을 그려보자. 첫 단계는 준비 단계다. 공장 또는 라인별로 핵심 성과지표를 3개만 고른다. 동시에 데이터 지도를 만든다. 어디에 어떤 데이터가 있고, 누가 관리하고, 주기는 어떤지 정리한다. 현장형 AI는 이 준비가 되면 반은 끝난다. 두 번째는 한 문제를 붙잡고 끝까지 가는 방식이다. 여기서 중요한 평가 기준은 정확도 95% 같은 모델 지표가 아니다. 현장에서 행동이 바뀌었는가가 기준이다. AI가 불량 위험을 경보했을 때 누가 확인하고, 어떤 조건을 조정하고, 언제 재검사하며, 결과를 어떻게 기록하는지까지 설계되어야 한다. 세 번째는 파일럿 단계다. 파일럿은 공장 운영에 편입시키는 과정이다. 경고기준을 정하고, 조치 체크리스트를 작업표준에 넣고, 데이터 누락과 시간동기 같은 운영 문제를 안정화 하고, 성과는 반드시 비용으로 환산한다. 네 번째는 확산 단계다. 설비가 교체되거나 소재가 바뀌면 모델도 흔들린다. 모델 버전을 관리하고, 현장 조건이 바뀌면 재학습과 검증이 일어나는 체계가 필요하다.
조직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현장형 AI는 AI 담당자 1명 채용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최소한의 구성은 분명하다. 문제를 정의하고 실행할 현장 오너(반장 또는 공정기술), 라벨과 재발방지 체계를 잡을 품질 담당, 센서·신호·정비 이력을 다룰 설비·보전 담당, 데이터 파이프라인과 모델 배포를 맡을 데이터/IT 역량(내부든 파트너든), 그리고 핵심성과지표와 확산 권한을 쥔 의사결정자가 필요하다. 여기서 핵심은 AI 전문가가 아니라 문제를 끝까지 책임지는 현장 오너다. AI는 현장을 바꾸기 위한 수단이며, 현장을 바꿀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대구·경북 제조업이 AI에서 불리하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인재와 자본의 밀도는 수도권이 앞설 수 있다. 하지만 AI가 성과를 내는 전장은 공정과 설비, 그리고 납기 전쟁이 벌어지는 현장이다. 그리고 그 현장은 대구·경북에 촘촘히 존재한다. AI는 대구·경북 제조업이 다시 한 번 생산성으로 승부할 수 있는 실전 무기다.
신진교(계명대 경영학과 교수, 산학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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