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줄서기 대행, 꿀알바일까 불평등의 상징일까

선정태 2026. 1. 1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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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태 취재2본부장
선정태 취재2본부장

줄을 대신 서주는 아르바이트가 세계 곳곳에 등장한 지도 수년이 지났다. 인기 맛집 앞, 한정판 굿즈 매장, 병원 접수 창구, 행정기관 민원실까지. 몇 년 전에는 또 국내 대형 놀이공원에서는 이른바 '패스트 트랙'을 구매하면 순서를 위해 줄 서지 않고 곧바로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티켓을 판매했다.

돈을 지불하면 인기제품을 남보다 먼저 구입할 수 있고, 남보다 빨리 타고, 시간을 거리에서 허비하지 않는 구조가 일상이 됐다. 줄서기 아르바이트, 테마파크의 우선 탑승권, 유료 패스는 '시간을 돈으로 사는 행위'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이 '대행'은 진입 장벽이 낮고, 단기간 현금을 벌 수 있어 청년·취약계층의 생계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AI시대를 맞아,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문제 삼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줄서기 알바'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측면을 강조하며 효율의 언어로 포장된다. 바쁜 현대인에게 시간은 금이고, 누군가는 그 금을 대신 캐준다.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진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돈을 지불하면 시간을 살 수 있게 되면서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오랜 믿음은 이제 틀린 말이 됐다. 하루 24시간이라는 물리적 조건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현대 사회에서의 시간은 더 이상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이 풍경은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묘한 불편함을 남긴다. 줄을 선다는 행위는 원래 '선착순'이라는 가장 단순한 공정의 약속을 전제로 한다. 더 일찍 오고, 더 오래 기다린 사람이 먼저 기회를 얻는 구조다. 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의 기다림을 타인에게 외주화하는 순간, 이 약속은 균열을 일으킨다.

효율과 공정 사이의 괴리

돈이 있는 사람은 기다리지 않고, 돈이 필요한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팔아 대신 기다리는 대기의 외주화는 기다림이라는 불편을 사회적으로 분담하지 않고 계층을 구분해 재배치하는 행위로도 보인다. 결과적으로 기다림은 가난한 사람의 몫이 되고, 여유는 부유한 사람의 특권이 된다.

'편법'이 아닌 줄서기 알바를 잘못됐다고 비난할 수 없지만,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다는 인식이 당연해질수록 공공서비스와 사회적 기회마저 시장 논리에 잠식될 위험이 커진다.

이미 국가에서는 병원 예약, 행정 민원, 주거 청약 등에서 대기 순서를 돈으로 우회하는 행태를 규제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질서 유지 차원이 아니라, 기회의 접근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공정은 효율보다 느릴 수 있지만, 사회를 버티게 하는 마지막 신뢰이기도 하다.

공정이라는 측면에서 줄은 단순히 사람을 나열한 선이 아니다. 그 사회가 무엇을 공평하다고 믿는지 보여주는 가장 솔직한 장면이다. 오늘 우리가 그 줄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내일의 기회는 더 넓어질 수도, 더 비싸질 수도 있다. 공정은 늘 불편하지만, 그 불편을 감당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더 큰 대가를 치른다.

모두가 바빠진 시대에 기다림을 줄이자는 요구 자체는 정당하다. 그러나 그 해법이 또 다른 불평등을 낳고 있다면, 그 방향과 속도는 다시 점검해야 한다. 공정은 빠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줄서기 알바'라는 불평등을 떠받치는 역할은 경제적 취약 계층이 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시간을 사기 위해,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시간을 판다. 그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분 단위가 아니라, 햇볕 아래에서의 체력, 추위 속에서의 인내, 때로는 무례를 감내하는 감정 노동이다. 공정이 거래의 대상이 되는 순간, 기다림은 상품이 되고 사람은 도구가 된다.

규칙은 있는가

이 지점에서 사회적 공정성과 기회 균등의 원칙이 흔들린다.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는 구조에서는 출발선 자체가 계층별로 달라진다. 놀이기구 탑승이라는 사소한 경험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회 전반으로 확대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병원 예약, 행정 서비스, 교육 기회, 심지어 취업 과정에서도 '프리미엄 패스'가 붙기 시작하면 공공성은 빠르게 잠식된다.

이런 구조가 불평등을 '정상화'되는 사회가 올바른 것인가. 기다림을 돈으로 해결하는 행위가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기다리는 쪽이 아니라 기다리지 않는 쪽을 기준으로 사회를 바라보게 된다. 기다리는 사람은 무능하거나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으로 취급된다.

이를 무제한적으로 거래 가능하게 만들면, 돈의 많고 적음이 삶의 질과 경험의 폭을 결정하는 핵심 기준이 된다. 사회는 점점 더 빠른 사람과 느린 사람, 앞서는 사람과 뒤처지는 사람으로 갈라진다. 시간이 이동, 참여, 생존과 직결되는 자원이 되는 SF에서 나오던 디스토피아가 되버리는 것이다.

줄서기 알바가 확산하는 사회에 물을 수밖에 없다. 기다림이라는 불편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이들과 그 불편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 같은 줄 앞에 서 있지만, 출발선은 이미 다르다. 그래서 물을 수밖에 없다. 과연 기다림은 이제 누구의 몫인가.

공정한 사회는 모두를 동일하게 만드는 사회가 아니다. 최소한 같은 규칙 아래에서 경쟁할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는 구조가 확산할수록, 우리는 같은 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전혀 다른 줄에 서 있게 된다.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어디까지 불평등을 허용할 것인가. 그리고 그 비용은 과연 누가, 얼마나 오래 기다리며 치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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