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치권 극단적 언어… 사법 불신 부추겼다 [심층기획-서부지법 점거 난동 1년 추적기]
최근 25년 ‘구속영장’ 관련 與野 발표문 분석
사법부 결정 정치 이용… 숙의 민주주의 해쳐
지난해 1월19일 새벽, 서울서부지법에 폭도들이 침입해 난동을 부린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배경은 무엇일까.
서부지법 사태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 중 30대 무직 남성이 상당수라는 분석도,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이 주요 원인이었다고 해도 많은 시민이 가담해 막대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촉발한 사태의 근본 원인일 순 없다.

실제 난동 사태 가담자들은 윤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 발부를 정치 보복으로 받아들였다. 윤 전 대통령 구속에 분노했고, 판사를 찾아내겠다며 법원에 난입했다. 영장 발부가 부당했기에 난동 역시 정당하다는 시각도 팽배했다. 한 피고인은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이후 구속 취소가 됐다. 그 사실만으로도 당시 판결이 잘못됐다는 것 아니냐”며 “시위 참가자들이 최소한의 정당성을 확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법은 어느샌가 정치 영역으로 빨려들었다. 그간 정치권은 ‘사법 리스크’를 활용해 상대를 공격하고 방어했다. 입법부는 사법부 공격을 정치적 수사로 활용했다. 25년간 ‘구속영장’을 둘러싼 양당의 태도 변화에서도 이런 경향성은 확인됐다.
언어는 점차 과격해졌다. 14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2001~2025년 낸 성명·논평·보도자료 등 발표문에서 ‘구속영장’이 포함된 1196건에 나타난 감정을 분석한 결과, 정치 격변이 극심한 해에 양당의 구속영장 언급 발표문은 크게 늘었다. ‘박근혜-국정농단’(2017·107건), ‘문재인-조국 사태’(2019·90건), ‘이재명-대장동 개발 비리’(2021·75건), ‘윤석열-비상계엄’(2025·200건)이 주요 기점이었다. 전체 문서에서 확인된 정서 종류에는 ‘화남·분노’, ‘의심·불신’, ‘안타까움·실망’ 등 12개 항목이 나타났다. 이 기간 양당 발표문에선 분노 정서가 점진적으로 증가했다.


“법원의 추경호 의원 구속영장 기각,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사법 폭거입니다.” (2025년 민주당 서면 브리핑)
정치 격변기를 지날 때마다 ‘화남·분노’ 감정이 차지하는 비율은 증가했다. 특히 탄핵과 조기 대선을 거쳐 정권 교체를 경험한 지난해, 양당에서 ‘화남·분노’ 감정 발표문 비중이 가장 높았다.
2025년 민주당 발표문 99건 중 ‘화남·분노’ 감정 발표문은 78.8%(78건)이었다. ‘화남·분노’ 비율이 전년 대비 28.8%포인트 증가했고 다른 정서의 출현이 줄었다. ‘비장함’ 11.1%(11건), ‘불평·불만’ 6.1%(6건), ‘의심·불신’ 3.0%(3건), ‘어이없음’ 1.0%(1건) 순이었다.
국민의힘에서도 발표문 101건 중 ‘화남·분노’ 감정 발표문 비율이 1위(33.7%·34건)를 차지했다. 다만 이외에도 다양한 감정이 드러났다. ‘불평·불만 27.7%(28건), ‘안타까움·실망’ 9.9%(10건), ‘의심·불신’ 8.9% (9건) 등 8개의 감정이었다.


민주당 발표문에선 여당일 때보다 야당일 때 ‘화남·분노’가 더 많이 감지됐다. 민주당 여당 시기(2003·2007·2017~2021년)에는 ‘화남·분노’ 감정이 전체 173건 문서 중에서 31.8%(55건)에 불과했다. ‘화남·분노’와 ‘안타까움·실망’(20.8%·14건), ‘의심·불신’(20.2%·24건)이 연결된 혼합 정서가 나타났다.

구속영장을 언급한 발표문에서 나타난 주제는 상이했다. 주제어 추출은 다량의 문서에서 많이 언급된 단어들과 이들의 연관성을 확률적으로 뽑아 주제를 정하는 ‘토픽 모델링’을 사용했다.
토픽 모델링과 정서 분석을 종합하면 ‘화남·분노’가 급격히 집중된 지난해 민주당 주제어에는 ‘기각’과 ‘증거(인멸)’가 자주 등장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수사 절차 관련 주제어와 이재명 당시 대표에 대한 방탄 프레임이 함께 나타나면서 의제가 분산됐다. 그 결과 감정도 하나로 수렴하기보다는 실망, 불신 등과 혼합적으로 표출됐다.
민주당이 구속영장과 관련해 자주 언급한 단어를 분석하니 ‘기각-증거-처벌과 ‘내란-법원-특검이 주로 함께 나타났다. 민주당은 경호처와 대통령실의 증거인멸 의혹을 제기하는 한편, 윤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에 대한 법원의 영장 기각 결정을 집중적으로 언급했다. 김 교수는 “구속영장이 청구되거나 기각되는 것을 정의 실현의 좌절로 판단해 응징 요구 서사로 강화했다”고 해석했다.

두 정당은 ‘구속 전 피의자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법 절차를 강한 정서를 동원해 의제화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구속영장 청구와 기각이 ‘사법 신뢰’를 건드리며 의미투쟁을 촉발하고 있다고 봤다. 양당이 사법을 정치적 장으로 끌어들이는 ‘사법의 정치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특히 2025년 분노 중심의 정서가 크게 형성된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분노가) 정치적 운동을 일으키는 자원을 동원한다는 측면에서는 유리하지만, 절차적 숙의 공간을 축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 공정·중립성 믿음 약화로 사태 촉발”
한국인의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낮아지는 추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사법부 신뢰도는 2023년 49.1%에서 2025년 33%로 16.1%포인트 떨어졌다. OECD 평균(2023년 56.9%·2025년 54%)보다도 낮다.

윤준 전 서울고법원장은 재판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믿음이 서서히 약화하는 흐름에서 서부지법 난동 사태가 벌어졌다고 봤다. 그는 “단순 법원 난입 사건으로 보면 안 되고 법원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위기 상황에 와 있단 걸 알고 재판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제2, 3의 서부지법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법부 결정에 대한 정치권의 공격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제언도 했다. “법관이 정치적으로 공격당할 때 법관 스스로 대처할 수 없다”며 “법원행정처장이라든지 대법원장처럼 목소리 낼 수 있는 분들이 직을 걸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국민도 법원이나 법관을 무리하게 공격하면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다”며 “눈치 보지 않고 사법 독립을 제대로 지키려고 하는 것이 사법행정을 맡은 이들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영장전담 부장판사 출신 이언학 변호사는 판사와 법원에 대한 공격이 반복되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판사들이 소신 있는 판단을 주저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여론에 영합하는 판결만 한다면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겠느냐”며 “여론이 호도되고 자판기 판사처럼 되면 법치주의는 무너지고 삼권분립 체제 자체의 근간이 흔들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수자 보호라는 법원 본연의 기능을 다 할 수 있게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 변호사는 “우리 사회가 양극화돼버린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우리 사회가 시정되면 법원도 자연히 시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남정탁·최상수 기자
편집=서혜진·도진희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기현·손성하 기자
<1회>누가 법원을 공격했나
①[단독] 사법의 선을 넘은 ‘커뮤니티 애국심’
https://www.segye.com/newsView/20260112514687
②‘투사’ 된 듯… 유튜브로 재판 후기 공유
https://www.segye.com/newsView/20260112514521
③[단독] 박탈감에 분노한 ‘三·無·男’… 뒤틀린 신념이 도화선 됐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60112514500
④“난동범들 사람처럼 안 보였다”…기록 위해 들어간 피고인들
https://www.segye.com/newsView/20260112514518
<2회>돈이 되는 애국
⑤ [단독] 변호해 준다더니 재판 방치… 공소부인에 형량만 더 늘어
https://www.segye.com/newsView/20260113515476
⑥막말·조롱·고성… ‘재판지연 논란’ 변호사, 법원 멸시 도 넘어
https://www.segye.com/newsView/20260113515380
⑦[단독] 폭력을 애국으로 ‘미화’… “영치금 받아 감방서 빚 다 갚아”
https://www.segye.com/newsView/20260113515375
⑧[단독] ‘영치금 불법모금’ 사랑제일교회·대표 수사
https://www.segye.com/newsView/20260113515379
<3회>폭동의 징후
⑨[단독]정치권 극단적 언어… 사법 불신 부추겼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60114516747
⑩‘텍스트 마이닝’ 통해 정량·정성 분석
https://www.segye.com/newsView/20260114516789
⑪“美 의회 폭동·韓 법원 난동 닮은 꼴… 선동 처벌·극우 연구 필요”
https://www.segye.com/newsView/20260114516788
<4회>남겨진 숙제
⑫[단독]“폭력은 정당화 안 돼… 조건부 구속제 도입을”
https://www.segye.com/newsView/20260115516616
⑬“증거인멸 우려” vs “방어권 보장”… ‘조건부 구속’ 26년째 공전
https://www.segye.com/newsView/20260115516181
소진영·윤준호·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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